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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인 웅진에너지가 외부감사인인 한영회계법인의 의견거절로 상장폐지 위기에 처하면서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마침 과거 그룹의 주축이던 코웨이를 외부의 재무적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인수절차를 끝낸 직후라 더욱 말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코웨이를 사느라 지게 된 빚(한국투자에서 인수금융으로 1조1000억원, 스틱인베스트먼트에서 전환사채로 5000억원을 조달)을 갚기 위해 웅진에너지를 버린다는 것이지요. 웅진에너지의 주주 입장에서는 기가 찰 일입니다.
그런데 입장이 곤란하기는 웅진그룹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웅진그룹은 코웨이 인수를 할 때부터 그룹을 웅진-씽크빅-코웨이의 편대로 재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혀 왔습니다. 북센, 플레이도시를 비롯해 웅진에너지까지 대부분의 다른 계열사들은 매각하겠다고 선언한 게 이미 지난해 10월입니다.
웅진에너지가 매각이 가능한 상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웃돈 주고 살 만한 작자가 나서기는 어려웠을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웅진그룹이 손을 뗄 생각은 분명히 있었던 걸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매각을 운운한 것도 그렇거니와 최근 자본잠식을 해소하겠다고 90% 감자를 결정한 것을 봐도 말입니다.
웅진에너지는 한영회계법인에게서 의견거절을 받기 이전에 이미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며 90% 감자를 결정했습니다. 재무제표가 대폭 수정되고 의견거절을 받지 않았다면 감자를 90%까지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유상증자라든지 영구채 발행 등을 통해서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는 수순이었을 겁니다. '누구의' 돈으로 할 것인지는 별개 문제이지만요. 그런데 한영회계법인이 의견거절을 때리면서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
한영회계법인은 웅진에너지의 회생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나 봅니다.
의견거절을 받아 상장폐지 위기까지 처한 건 당연히 장사를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만, 한때 웅진그룹의 미래로 불리던 웅진에너지가 도대체 어떤 상태이길래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한번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회계법인이 의견거절을 내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감사를 위해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가 적정하게 작성된 건지 아닌지를 도저히 판단할 수 없을 때' 입니다. 감사증거를 부분적으로 얻지 못할 때는 감사범위 제한에 의한 '한정의견'을 내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의견을 거절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계속기업의 가정'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입니다. 기업이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것은 앞으로도 망하지 않고 영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가정이 전제되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야 유형자산 등을 취득원가로 기록하면서 매년 일정액씩 감가상각을 하는 행위가 의미를 갖게 되니까요. 곧 망할 기업이라면 모든 자산을 청산가치로 평가해야 마땅하겠지요. (감사인이 피감사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할 때도 의견거절 사유가 됩니다만, 이 경우에는 애초에 감사를 맡으면 안되지요.)
위에 한영회계법인이 감사보고서에서 기재한 문장은 두 번째 경우입니다. 한 마디로 웅진에너지의 실적이나 자산이 너무 부실해서 향후 존속 여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당기손손실이 1000억원이 넘고 유동자산보다 유동부채가 훨씬 많다고 하는 건 회사가 부실하다는 근거로 제시한 것입니다.
기업이 상장을 하는 이유는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것이고, 회계법인이 감사의견을 주는 것은 투자자들이 기업에게 투자를 할 때 재무제표를 믿을 만 한지를 검증해 주는 것입니다. 의견거절은 '이 기업의 재무제표를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니, 사실상 기업에게 레드 카드(퇴장명령)를 꺼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기업이 부실하다고 다 의견거절을 때리지는 않지요. 웅진에너지 말고도 상장기업 중에 적자에, 자본잠식에,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은 넘쳐 납니다. 어떤 판단들이 쌓이고 쌓여 의견거절에 이르는 지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만, 부실이 정도가 매우 심각하고 회사가 계획하는 자구노력으로는 회복 가능성이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는 돼야 외부감사인도 의견거절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하나가 더 있지요. 괜히 측은지심이 발동하거나 기업과 쿵 짝이 돼서 적정의견을 줬다가 자기 발등을 찍게 될까 봐 걱정될 때는 보다 의견거절이 쉽게 나오겠지요? 감독당국이 감사인의 책임을 강화하면서 회계법인들이 까칠해 진 측면이 분명히 있기는 있을 겁니다.
이것이 웅진에너지가 제시한 자구계획입니다. 올해 만기 도래하는 차입금을 연장하고, 원재료 구매자금 결제를 늦추고, 구조조정을 통해 원가절감을 하겠다…… 무엇 하나 임팩트 있는 게 없기는 합니다. 외부감사인이 곧 망할까 봐 걱정할 정도이면 이미 유동성 부족이 심각하다는 얘긴데, 그냥 열심히 하겠다는 대답으로 안심을 시킬 수 있겠습니까?
웅진에너지는 자본잠식을 50% 미만에서 막으려고 했습니다.
한영회계법인은 웅진에너지가 존속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감사의견을 액면 그대로 해석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곧 망하겠구나' 싶었을 겁니다. 웅진에너지가 처음 발표한 결산자료와 한영회계법인이 감사를 한 후 제출한 결산자료를 한번 비교해 보면 한영회계법인의 그런 판단이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웅진에너지가 지난 2월에 이사회에서 의결한 결산자료입니다. 외부감사를 받기 전이죠. 회사는 563억원의 영업손실에 703억원의 당기순손실로 지난해를 결산합니다. 이 경우 자본잠식 비율은 지난해 말 14.4%에서 올해 말 47.4%로 확대됩니다.
그래도 자본잠식은 50% 미만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회사의 결산이 외부감사인의 도장을 받게 되면 웅진에너지는 자본금의 52.6%가 아직 남아 있는 기업이 됩니다. 자본잠식이 50% 이상 진행되면 관리종목이 되고, 2년 이상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상장폐지 대상이 됩니다. 자본금의 50% 이상이 살아 있으니 관리종목에 지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관리종목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주식시장에서 유상증자를 하거나 전환사채 등을 발행하거나 등의 자금조달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관리종목이 된다고 아예 자금조달의 문이 닫히는 건 아니지만 천지차이지요.
그런데 한영회계법인이 찬물을 끼얹습니다. 감사를 받고 난 후 영업손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당기손손실은 1110억원을 훌쩍 넘깁니다. 회사가 최초 결산했을 때보다 400억원 이상 많습니다. 이제 대부분 자본금을 다 까먹고 1545억원 중 26.7%인 412억원만 남습니다. 자본잠식이 70% 이상 진행됐습니다. 회사가 원했던 50% 미만의 자본잠식 비율은 물 건너 가고 말았습니다.
한영회계법인은 자산의 사용가치가 장부가를 밑돈다고 보았습니다.
한영회계법인이 손실을 더 쌓도록 지적한 곳은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인 모양입니다. 그 전에는 손을 대지 않았던 부분인데, 유형자산에서 무려 420억원을 손상차손으로 떨어냅니다.
유형자산은 토지, 건물, 구축물, 기계장치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서비스기업은 좀 경우가 다르지만 제조기업에게는 어떤 의미로 회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유형자산을 '사용'해서 뭔가를 만들어 파는 게 그 회사의 사업이니까요. 더구나 웅진에너지는 약간의 현금과 매출채권 및 재고자산 외에는 유형자산이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돈이 될 만한 다른 자산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유형자산이 한영회계법인과 논의(?) 후 약 20% 가량 손상 판정을 받는 겁니다. 건물에서 대략 200억원, 기계장치에서 대략 220억원이 깎입니다. 토지를 제외한 모든 유형자산에서 손상을 인식합니다. 무형자산도 소액이지만 손상차손이 발생합니다.
손상차손은 자산의 회수가능액이 장부가액을 밑돌 때 인식합니다. 회계에는 '보수주의'라는 철학이 있는데, 간단히 말해 자산과 수익은 낮게, 비용과 부채는 크게 인식하라는 겁니다. 투자자에게 회사의 상태를 부풀려 보이지 못하도록 한 겁니다.
이 때 회수가액은 사용가치와 순공정가치 중 큰 금액을 말합니다. 사용가치는 그 자산으로 벌어들일 미래의 현금흐름을 적절한 할인율로 할인한 현재가치를 말하고 순공정가치는 그 자산을 내다 팔았을 때 받을 수 있는 가격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영회계법인은 웅진에너지의 설비가 앞으로 장부가액만큼의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도 없고, 시장에 내다 팔아도 장부가액만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겁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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