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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제표를 통해 기업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의심이 많습니다. 미심쩍은 게 있으면 꼭 확인을 하고 나서야 믿어 줍니다. 대신 무조건 불신하지도 않습니다.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에 나온 숫자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습니다. 그런데 웅진그룹의 경영진에 대해서는 감히 '믿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인들은 억울하겠지요. 그 간의 행적이 그러니 어쩔 수 없습니다.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이하 재읽사)이 전편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웅진에너지가 무상감자를 한 후에는 유상증자를 추진하게 될 텐데, 그 대상은 주로 전환사채 보유자인 채권자들의 출자전환일 것이라고요.


무상감자도 출자전환도 어쩌면 오로지 웅진그룹 만의 의사일 수 있습니다. 다른 주주나 채권자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한 것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주식이 강제로 소각 당하는데 좋아라 할 주주는 없죠. 회사가 부실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는 게 대부분입니다.


일부 채권자에게 미리 동의를 받았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출자전환을 흔쾌히 승낙한 채권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전환가액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사채를 주식과 교환해야 할 게 뻔한데다 출자전환을 한다고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보장이 전혀 없는데 말입니다.


무상감자 결정은 요행을 바란 꼼수였을 지도 모릅니다.


웅진에너지 이사회는 2월 14일에 회사가 작성한 재무제표(2018년 결산 실적)을 승인합니다. 외부감사인의 감사를 받기 전의 재무제표입니다. 이 재무제표로는 웅진에너지의 2018년말 현재 자본잠식 비율(48%)이 50%를 넘지 않습니다. 전편에서 말씀 드린 바 있지만 의도적으로 50%가 넘지 않도록 맞추었을 겁니다.


자본잠식 비율이 50%를 넘어가게 되면 관리종목에 지정될 수 있습니다. 2년 연속 50% 이상 자본잠식이면 상장폐지 대상이 됩니다. 빼도 박도 못하고 '부실기업'이라는 낙인이 공식적으로 찍히게 됩니다. 유상증자나 채권 발행 같은 자금조달이 훨씬 어려워지고, 이사회가 외부의 이해관계자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달 뒤인 3월 14일 웅진에너지 이사회는 90% 무상감자를 결정합니다. 한영회계법인에게서 감사의견을 받기 전입니다. 3월 29일 주주총회를 열어 통과를 시킬 생각이었습니다. 자본잠식률이 50% 미만인 재무제표도 주총 승인을 받고 싶었겠죠.


웅진에너지는 한영회계법인이 '적정의견'을 주기를 희망했겠지요. 적정의견은 어렵더라도 한정의견 정도에서 타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지 모릅니다. 최근 규제가 완화되기는 했지만, 유가증권 시장의 경우 외부감사인에게 부적정의견이나 의견거절을 받으면 즉시 상장폐지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한정의견을 받으면 1년이라는 시간을 벌게 되지요. 지난 달에 규정이 바뀌어서 부정적의견이나 의견거절을 받아도 1년의 시간이 주어지게 됐지만요.


웅진그룹은 웅진에너지의 자본잠식을 50% 이내로 막고, 적정의견(최소한 한정의견)을 받은 후, 자신들의 주도 하에 감자-출자전환을 하고자 했을 겁니다. 최후의 종착역은 물론 매각이었고요. 어쨌든 웅진에너지의 희망사항으로 끝나고 말았죠. 한영회계법인도 감사인의 책임이 강화되는 바람에 남의 사정을 봐 줄 입장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웅진에너지 이사회는 주주총회에서 90% 감자 안이 통과할 것이라고 믿었을까요? 무상감자는 주주총회의 특별결의 사항입니다. 전체 의결권의 3분의 1, 출석한 주주의 3분의 2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무상감자는 주주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인데, 순순히 도장을 찍어줄 리 없잖아요. 더구나 웅진에너지가 선택한 감자 방법이 액면가를 낮추는 방식이 아니라 주식 수를 10분의 1로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적인 충격이 훨씬 크게 나타납니다.


답은 '믿었다' 입니다. 웅진에너지 이사회는 다른 주주나 채권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감자를 강행할 수 있었습니다. 무상감자는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이지만, 웅진에너지의 경우는 다릅니다. 감자의 목적이 결손 보전이거든요.


결손을 보전하기 위한 무상감자는 보통결의로 할 수 있습니다. 보통결의는 전체 의결권의 4분의 1, 출석한 주주의 과반이 동의하면 통과됩니다. 그런데 아래 표를 한 번 보십시오. 지주회사인 ㈜웅진과 윤석금 회장의 두 아들 지분을 더하면 27%가 넘습니다. 전체 의결권의 4분의 1 정족수를 충족하지요. 다른 주주들을 애써 설득할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만에 하나 주주들의 출석률이 너무 높으면 감자 안이 통과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출석률이 60%가 넘고 그 중 절반 이상이 감자에 반대하면 이사회의 계획이 물거품이 됩니다. 웅진그룹 입장에서는 주총 출석률이 낮은 게 좋지요.



웅진에너지는 3월29일을 주주총회일로 결정했습니다. 이날은 주주총회 집중(예상)일입니다. 상장사협의회가 '이 날만은 피해서 주총을 하라'고 권유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 동안은 주총 집중일을 적극 피해 왔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웅진에너지가 올해는 딱 그날로 주총일을 잡습니다. 회계법인의 외부감사 일정 상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댑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이기는 합니다. 원래 일정대로는 웅진에너지는 3월21일 한영회계법인에서 감사보고서를 받았어야 합니다. 이날 감사보고서를 받으면 주주총회는 집중일에 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재무제표 결산을 끝내는 날도, 감사보고서를 받는 날도, 주주총회를 여는 날도 결국은 회사가 정하는 겁니다. 웅진에너지 이사회의 결산 승인은 다른 상장사에 비해 좀 늦습니다.


상법상 자본감소를 할 경우에는 채권자보호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채권자들은 사채권자집회를 열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손보전이 목적인 경우에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결손을 자본금으로 메우겠다는 것이니 채권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결손 보전 나름이지요. 웅진에너지는 좀 경우가 다릅니다. 웅진그룹은 웅진에너지를 팔아버릴 작정이었으니까요. 애초부터 감자 후에 채권자들에게 출자전환을 요구할 생각이었다면 채권자의 권리에 중대한 변화가 생긴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재읽사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리즈를 쓰는 동안 한 언론사에서 기사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지난 회에 한 편을 추가하지 않았으면 재읽사가 한발 빨랐을 텐데 아깝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웅진에너지는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 대상 간담회를 열어 회사채 투자자들에게 10% 상환, 3년 후 40~50% 상환, 그리고 나머지 40~50%에 대해서는 출자전환을 제안했습니다.


재읽사는 웅진에너지가 감사의견 거절을 받기 이전부터 이런 계획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견거절 이후 계획이 다소 수정이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큰 틀은 비슷할 겁니다.


반 강제적인 채무 탕감은 처음이 아닙니다.



2013년에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웅진에너지는 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 자금조달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해 제7회 전환사채를 발행한 것이 유일합니다. 4~6회 전환사채는 올해와 내년 만기가 도래하지만, 만기 도래가 처음이 아닙니다. 저 채권들은 모두 2011년에 처음 발행된 것들입니다. 바로 미국의 썬파워가 웅진에너지 지분을 전부 팔고 떠나던 즈음입니다.


그 이후 실적 부진에 시름하던 웅진에너지는 2016년에 기존 사채권자들에게 10%의 원금상환과 함께 나머지는 출자전환과 전환사채로의 차환을 요구합니다. 올해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판박이입니다. 그렇게 해서 4회와 5회 전환사채가 발행됩니다.


6회 전환사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11년에 발행했던 변동금리부사채(FRN)를 전환사채로 재발행한 것입니다. 당시에 산업은행, 멀티에셋자산운용, 조은저축은행 등의 기관이 전환사채 차환에 동의해 줍니다.



750억원 가량의 신주인수권부사채도 남아 있습니다만, 이것 역시 역사가 깊습니다. 2011년에 개인 등을 대상으로 공모 발행된 1200억원 짜리로 만기가 이미 한참 지난 것입니다. 그 동안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상환을 해서 지금의 규모가 된 겁니다. 지난해 최악의 실적 추락을 겪으면서도 대규모 상환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재무제표에도, 공시에도, 뉴스에도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자금의 여유가 전혀 없었을 텐데 무려 1150억원어치나 상환을 했습니다. 약속된 상환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발적인 상환은 분명 아니었을 겁니다.



기존의 채권자들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출자전환을 당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이미 출자전환해 받은 주식들은 거의 휴지가 될 판인데 말입니다.


어쩌면 더욱 억울한 것은 제7회 전환사채 투자자들입니다. 지난해 공모로 발행된 이 전환사채는 주로 개인들이 받아간 것입니다. 아주저축은행과 유진저축은행이 인수한 것 말고는 대부분 증권사 창구를 통해 개인들에게 팔려나갔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역시 2011~12년을 연상시킵니다. 당시 대규모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한 후 웅진에너지는 고정거래처 서너 곳에서 계약 해지를 당합니다. 태양광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거래처들도 사정이 나빴던 겁니다. 그리고 미국 썬파워가 지분을 전부 팔아 치우지요. 주주는 물론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사들인 투자자들은 멘붕에 빠졌을 겁니다.



지난해는 어땠나요. 2017년에 흑자전환에 성공해 연초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이런 저런 언론에서 웅진에너지에 대한 낙관적인 기사들을 써 줍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의 느낌이었지요.


그러나 곧바로 태양광 시장은 급속 냉각되고 맙니다. 게다가 국내 파트너로 1년 전에 100억원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8%의 지분을 가져갔던(그래서 주가를 급등시켰던) 한화케미칼이 보호예수 기간이 끝나자 마자 보유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떠납니다. 마치 2012년의 썬파워를 보는 듯 합니다.



웅진에너지를 비싸게 팔 욕심은 없었을 겁니다.


웅진그룹이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 경영권을 매각할 꿈을 꾸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서는 웅진에너지를 비싸게 팔아 코웨이 인수를 위해 빌린 차입금을 갚는데 쓰려고 했다는데...... 그건 지나친 해석입니다.



웅진에너지는 2011년 이후 좋아진 적이 없습니다. 지난해 흑자전환을 하기는 했지만 회복이라고 말하기는 좀 쑥스러운 수준입니다. 5년간 약 4000억원의 적자를 낸 후에 고작 14억원의 이익을 남겼을 뿐입니다. 말 그대로 새 발의 피지요.



웅진에너지가 자본잠식에 들어간 건 2016년 4분기부터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태양광 시장이 회복기에 접어든 시점부터 자본이 잠식됩니다. 2017년 흑자전환은 자본잠식의 정도를 전혀 완화시키지 못합니다.


윤석금회장이 코웨이를 인수한 뒤 웅진에너지도 팔겠다고 했지만 좋은 가격을 제시할 매수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국내 유력 후보로 꼽힐 뻔 했던 한화케미칼은 1년 간의 동거 후에 떠났고, 국내 1위 폴리실리콘 업체인 OCI와는 사업상 교류가 없습니다. OCI는 폴리실리콘 외에 태양광 관련 사업을 철수한 지 오랩니다.


재무적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웅진에너지 매수는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질적인 공급과잉 산업에 속한 기업을, 게다가 치킨게임의 끝이 보이지도 않고, 그 게임에서 살아 남을지도 불확실한 만년 적자 기업을 인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행여 모르죠. 웅진에너지가 채무재조정을 통해서 채권자들의 차입금을 거의 탕감 받고, 기존 주주의 지분은 감자를 해서 없다시피 만들면 누군가가 무혈 입성할 생각을 할 지도요.


계열사 매각으로 코웨이 매입자금을 상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웅진그룹이 웅진에너지 등 다른 계열사를 팔아 코웨이 매입자금을 상환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웅진그룹에는 팔아서 돈 될 만한 계열사가 별로 없습니다. 웅진식품과 웅진케미칼은 이미 처분했고, 웅진씽크빅은 팔 리가 없지요.


현재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웅진에너지, 웅진플레이도시, 북센의 공통점은 바로 결손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골프장인 렉스필드컨트리클럽도 마찬가지로 결손 상황입니다. 갖고 있으면 계속 돈이 들어가는 '구멍'인 셈입니다.


코웨이 매입자금 상환을 위해 다른 계열사를 판다는 말 보다는 돌아온 귀한 아들(코웨이)에게 집중하기 위해 못난 자식들을 내친다는 말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자연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 인격을 부여 받은 기업도 그렇습니다. 그 기업의 키맨(key man)이 바뀌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웅진그룹의 키맨은 모태인 웅진씽크빅이 설립되었을 때뿐만 아니라, 웅진씽크빅, 웅진코웨이, 웅진에너지 등을 주식시장에 상장한 이후에도, 2013년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후에도, 눈물을 머금고 팔았던 코웨이를 되사는 데 성공한 지금도 여전히 '회장 윤석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