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동시에 난기류에 휩싸였습니다.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의 별세로 모기업인 한진칼의 경영권이 누구에게로 갈 지 불확실한 상황에 놓였고, 아시아나항공은 금호그룹(기업집단 이름은 금호아시아나이지만 이제는 금호그룹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해 보입니다)이 매각을 결정했습니다.


두 그룹은 최근 몇 년 새 끊임없이 뉴스의 중심에 있었죠. 좋지 않은 이슈로 말입니다.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한진그룹 조씨 일가의 갑질 논란과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사태는 자세히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요. 대한항공은 상속세 마련 과정에서 경영권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금호그룹은 형제의 난과 자금난을 겪으며 사실상 그룹이 해체됐다가 박삼구 회장이 무리하게 그룹 재건에 나서면서 스텝이 심하게 꼬여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언론들이 두 그룹을 집중 취재하고 있습니다. 워낙 많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어서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까지 숟가락을 얹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는 합니다. 그러나 공시와 재무제표를 잘 버무리면 기존의 언론들과는 다른 스토리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 금호그룹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은 그 다음에 다시 판단해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재무제표 톺아보기'로 몇 편 쓸까 했습니다. 마침 올해부터 리스회계처리 기준이 바뀌는데, 이게 아시아나항공 재무제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든요. 한정의견을 받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겁니다. 그러다 '기업공시에 숨겨진 이야기'로 급선회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재읽사가 뭔가 비밀스러운 스토리를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언론들에 의해 나올 만한 것들은 거의 다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종합 정리를 한다는 자세로 써 보려 합니다. 하다 보면 몰랐던 것이나 새로운 것이 고구마 줄기처럼 끌려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요.


아시아나항공의 한정의견에 대한 단상


금호그룹이 15일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한 것은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은 피를 흘리지 않고 은행 돈을 빌어 위기를 넘어 보려다,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이 콧방귀를 뀌자, 결국 아시아나항공을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위기는 예전부터 진행형이었습니다만, 매각 결정까지 오도록 방아쇠를 당긴 건 삼일회계법인의 '한정의견'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은 빚으로 연명하던 기업이었습니다. 금융당국을 위시해 채권은행, 신용평가사 등이 사정을 봐준 덕에 그 나마 자금 줄이 끊기지 않고 있었습니다. 삼일회계법인의 한정의견은 그 자금 줄을 싹둑 잘라 버린 것과 같습니다. (삼일회계법인이 아시아나항공을 망하게 했다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금융당국, 채권은행, 신용평가사, 회계법인 그리고 자본시장이 부지불식간에 텔레파시를 나누고 있었을 겁니다. 외부감사인이 처음부터 원칙대로 했다면 아시아나항공은 더 일찍 한정의견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나항공이 한정의견을 받자 언론들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외부감사를 깐깐하게 하는 바람에 유수의 기업조차 한정의견을 받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달을 가리키니 손가락을 보는' 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정의견의 원인을 해당 기업이 아닌 회계법인에서 찾다니요.



언론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외부감사인의 책임을 강화하면서 회계법인들이 감사를 깐깐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게 한정의견의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죠. 기업이 부실하거나 재무제표에 문제가 있으니 한정의견을 받는 것입니다. 올해 엄격하게 적용했다는 것은 지난해까지는 느슨하게 적용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회계법인이 깐깐해야 투자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는데, 그 동안은 투자자가 아닌 기업의 편에 더 가까이 서 있었나 봅니다.


감사의견은 '독립적인' 외부 감사인이 기업의 재무제표에 대해 감사보고서를 통해 표명하는 의견입니다. 투자자들 보라고 써 주는 것이죠. 재무제표가 기업의 실질을 제대로 반영하도록 잘 작성이 되었으면 적정의견을 줍니다. 기업의 부실 여부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한정의견을 받은 것이 기업의 본질적 가치와는 무관하다는 금호그룹의 입장은 원론적으로 틀리지 않습니다. 한정의견은 (1)감사범위에 제한을 받거나 (2)재무제표가 부적정하게 작성되었거나 (3)계속기업의 가정을 유지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있을 때 줍니다. 이 중 직접적으로 부실과 관련된 것은 세 번째 경우뿐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이 원론이 잘 들어맞지 않습니다. 감사범위에 제한을 받는다는 것은 감사인이 충분한 감사증거를 받지 못했다는 건데, 기업이 완강히 숨기려는 무언가가 있다는 겁니다. 켕기는 게 있는 것이죠. 재무제표가 잘못 작성되면 감사인이 감사의견을 주기 전에 기업에 수정을 권고합니다. 그런데도 수정을 하지 않으면 한정의견, 그 정도가 심각하면 부적정의견이 나갑니다. 감사인의 지적을 받고도 일단 버텨 본 겁니다. 물론 회계기준의 적용에 대한 단순한 의견차이일 수 있지만, 대부분은 부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계속기업의 불확실성 때문에 한정의견을 받았다면, 부실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몇 년간 적자를 지속했거나 자본금이 잠식 상태일 겁니다. 보유 현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데, 당장 갚아야 할 빚이 많아서 유동성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반납정비충당부채로 드러난 아시아나항공의 민낯


아시아나항공은 감사범위의 제한의 사유로 한정의견을 받았습니다. 한정의견의 이유 중 마일리지 충당금 추가 반영과 관계사 주식의 공정가치 문제는 그리 중대해 보이지 않습니다. 핵심은 '반납정비 충당금'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월에 잠정실적을 공시한 바 있습니다. 감사를 받기 전에 작성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한정의견을 받은 감사보고서와 함께 3월22일 수정된 실적을 공시합니다. 3월26일에는 삼일회계법인의 의견을 수용해 다시 정정한 재무제표와 함께 '적정의견'을 받은 감사보고서를 제출합니다.



수정이 반복되면서 실적은 더욱 악화된 것으로 나옵니다. 최종 당기 순손실은 2월에 공시한 잠정실적보다 2000억원 이상 확대됩니다. 영업이익이 잠정치보다 1500억원 감소하고 영업 외 손실이 600억원 가량 증가합니다.



재무상태도 더욱 악화됩니다. 잠정치에 비해 부채는 500억원 가량이 증가합니다. 자본은 3000억원 가량이 감소합니다. 부채비율은 505%에서 649%로 껑충 뜁니다.


최종 조율이 끝날 때까지 아시아나항공과 삼일회계법인 사이에는 팽팽한 힘겨루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이 삼일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양으로 정리가 되기는 했습니다만, 회사가 전적으로 수용한 것인지, 일정한 선에서 양측이 타협을 한 것인지는 당사자들만이 아는 것입니다.


항공사의 재무제표에는 복구충당부채와 반납정비충당부채라는 생소한 계정 이름이 있습니다. 어느 회사는 둘 다 있지만, 하나만 있는 회사도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복구충당부채는 있지만 그 동안 반납정비충당부채는 인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복구충당부채는 리스로 사용하고 있는 항공기 등의 자산을 설치할 때, 나중에 그 자산을 해체, 제거하고 원상복구 하는데 드는 비용을 추정해, 그 현재가치만큼을 부채로 쌓는 겁니다. 아래 표를 보시면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지난해 말 현재 복구충당부채가 944억원이고 매년 80억원 이상 증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충당부채만큼을 리스항공기 자산의 원가에 보태주고 있습니다.



삼일회계법인이 지적한 반납정비충당부채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운용리스로 사용하는 항공기에 대해 항공사는 정비의무가 있습니다. 리스 기간 동안 정비를 잘 해가며 쓰고 온전한 상태로 항공기를 반납해야 합니다. 당연히 리스 기간 동안 정비 비용이 지출되는데, 향후 예상되는 정비비를 추정해 충당부채로 인식하는 것이 반납정비충당부채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이나 항공기를 리스로 쓰는 비중이 높습니다. 그런데 대한항공은 금융리스를 활용하고 아시아나항공은 운용리스를 주로 이용합니다. 금융리스는 사실상 항공기를 구입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으로 보지만, 운용리스는 빌려 쓰는 것으로 보는 것이 지난해까지의 회계기준이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차이가 없어집니다)



반납을 전제로 정비비를 충당부채로 쌓아야 하는 게 운용리스라면 상식적으로 더 많은 충당부채를 쌓아야 하는 쪽은 아시아나항공일 것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6월말 현재 82기의 항공기 중 50기를 운용리스로 쓰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163기 중 28기만을 운용리스로 사용합니다.


아래는 대한항공의 2018년 감사보고서에서 발췌한 것인데, 지난해 리스항공기 정비충당부채로 전입한 금액이 무려 500억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대한항공의 충당부채에는 복구충당부채가 없습니다. 정비충당부채로 일괄해서 처리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대한항공의 정비충당부채가 오로지 운용리스 항공기에 대한 미래의 정비비 추정액이라고 한다면, 아시아나항공이 쌓았어야 하는 정비충당부채는 수천억 원에 달할 수 있습니다. 대한항공이 28기에 대해 매년 500억원 이상의 정비비를 충당부채에 가산하고 있으니 50기를 운용리스로 쓰는 아시아나항공은 매년 반납정비충당부채를 1000억원 가까이 적립해야 한다고 산술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대한항공이 금융리스 항공기에 대해서도 정비충당부채를 쌓고 있는 것이라면 산술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의 반납정비충당부채는 500억원의 절반 가량 되겠구나 어림짐작할 수 있을 테고요.


그런데 아시아나항공은 충당부채를 적립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처리한 겁니다. 아마도 정비비가 발생할 때마다 그 만큼만 매년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삼일회계법인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고요.


◇아시아나항공의 정비충당부채가 제주항공보다도 적다?


이번엔 제주항공의 사례를 볼까요? 제주항공은 지난해 6월말 현재 34기의 항공기를 운용리스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직접 소유하거나 금융리스로 쓰는 항공기가 없었습니다.


제주항공은 2018년말 현재 임차기정비충당부채 잔액이 1398억원에 달합니다. 지난해 추가로 늘어난 게 400억원이나 됩니다. 정비충당부채를 쌓아야 하는 시점은 항공기를 새로 리스할 때입니다. 운용리스로 신규 도입하는 항공기가 많아야 정비충당부채 적립액이 늘어납니다. 그러니 운용리스 항공기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아시아나항공의 충당부채 적립의무가 더 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숫자는 비교를 해 보지 않았습니다만, 아시아나항공은 항공기를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있었습니다. 제주항공보다 덜 늘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주항공을 통해 또 하나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복구충당부채는 항공사에 별로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벨 기사에서 인용한 아래 표를 보시면 2016년 말 636억원이던 정비충당부채는 9개월 후 230억원 증가했습니다. 반면 복구충당부채는 2억원도 채 늘지 않았죠.



아시아나항공이 삼일회계법인에서 적정의견을 받아 다시 올린 재무제표를 보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정비충당부채가 수천억 원을 되지 않을까 했던 재읽사의 추리는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이 정비충당부채를 과소 계상했다고 보고한 금액은 424억원입니다. 모든 운용리스 항공기에 대해 그 동안 정비충당부채를 쌓은 적이 없으니 지금까지 발생한 정비비를 제외하고 향후 발생할 정비비 전부를 충당부채로 쌓을 거라는 예상이 아무래도 틀렸나 봅니다.


새로 리스한 항공기에 대해서만 정비충당부채를 적립한 걸까?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28기를 쓰는 대한항공이 매년 500억원 이상을 적립하고, 34기를 쓰는 제주항공이 1년에 400억원 이상 충당부채를 늘려가는데, 50기가 운용리스 항공기인 아시아나항공의 충당부채가 424억원이라니……


이렇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보다 상세한 설명을 주석에 달아줘야 하는데 달랑 표 하나가 전부라니, 참 우리나라 기업의 재무제표는 불친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