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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금호산업에서 떨어져 나온 금호고속은 6년 후인 2018년 금호그룹 지주회사가 됩니다. 박삼구 회장이 그룹 재건을 위해 설립한 금호기업이 금호터미널과 합병해 금호홀딩스가 되고, 금호홀딩스는 지난해 금호고속으로 사명을 바꾸죠.


금호고속은 그 6년 동안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겪게 됩니다. 사모펀드에 팔렸다가 금호터미널의 자회사가 되지만 곧바로 다른 사모펀드에 팔리고, 또 다시 금호터미널에 흡수 합병되었다가 그룹의 지주회사가 되면서 자신이 떨어져 나왔던 금호산업을 품에 안게 되죠. (뭐 이런 평일 아침 막장 드라마 같은 일이 ㅎㅎㅎ)


금호고속의 인생(?) 역정이 기구합니다.



위 그림은 2012년 금호산업에서 물적 분할된 후 2015년 금호터미널에 인수되기 전 금호고속의 행로입니다. 이미 지난 편에서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낸 것은 이 과정이 금호고속의 기업가치 및 박삼구 회장의 금호그룹 재건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 이 모든 거래의 의사결정은 워크아웃 중인 금호그룹 회장에 복귀한 박삼구 회장과 금호산업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공동으로 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기를 해 보면, 금호산업은 장부가 1985억원의 금호고속을 자신이 30%(1500억원), 산업은행이 37% 지분을 가진 KoFC펀드에 3310억원을 받고 매각합니다. KoFC는 KH고속투자(주)라는 장부상 회사(SPC)를 만들어 금호고속을 인수하는데, KH고속투자㈜ 자기자본 1110억원과 인수금융 2200억원을 재원으로 하죠. 그 후 KH고속투자㈜가 금호고속과 합병하면서 인수금융 2200억원 전액이 금호고속의 부채로 바뀝니다. 이로 인해 2012년말 319억원이던 금호고속 차입금이 합병 후인 2013년말에는 2182억원으로 크게 불어납니다.


결과적으로 KoFC는1100억원에 금호고속을 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금호산업은 금호고속을 매각하면서 1325억원(3310억원-1985억원)의 차익을 얻었죠. 금호산업은 2013년말 원금 1500억원인 KoFC펀드 지분을 금호터미널에 1780억원을 받고 매각합니다. 여기서 280억원의 추가 차익을 챙깁니다. 당시 자본잠식에 허덕이던 금호산업에게는 생명수와 다름 없었겠죠.


그러나 금호고속의 지분가치는 크게 하락하게 됩니다. 주인이 바뀌면서 전 주인은 목돈을 챙겼지만 금호고속은 2200억원의 빚만 떠안게 됐으니까요.


2014년 8월부터 채권단-정확히는 KoFC펀드의 주주들-은 금호고속 매각을 추진합니다. 이때도 상황이 참 복잡했습니다. 금호그룹이 '반드시 되찾아오겠다'고 선언을 해서인지, 다른 재벌그룹들은 금호고속에 입질을 하지 않습니다. 10월 실시한 예비입찰에는 몇 개 사모펀드가 제안서를 내지요.


그런데 금호그룹이 조직적인 방해에 나섭니다. 사모펀드들에게 금호고속 구사회 명의로 인수를 포기할 것을 종용하는 편지가 발송되고, 11월 실시된 회계실사를 구사회가 저지하기도 합니다. 금호고속 매각을 최대한 늦추려는 시도였던 모양입니다.


박삼구 회장은 2015년 상반기에 금호산업을 인수하고, 하반기에 금호고속을 인수해 그룹 재건을 완성하려는 구상이었습니다. 금호산업도 2014년에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2015년에 매각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거든요. 그런데, 금호고속이 너무 빨리 매물로 나와버린 거죠. 당시 박 회장 일가는 가진 현금이 별로 없었고, 금호산업 주식 등은 전부 담보로 잡힌 상태였습니다. 금호산업과 금호고속을 함께 인수하려면 1조원이 훌쩍 넘어가는 자금이 필요한데, 박 회장 일가로서는 난감했을 겁니다.


금호고속 기업가치는 하락하고 KoFC펀드는 대박이 납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금호터미널이 금호고속을 인수하게 되는데요. 당시 KoFC펀드의 업무집행사원이던 IBK투자증권과 케이스톤파트너스는 5000억원 정도를 매각 목표가격으로 잡았던 모양입니다. 금호그룹은 4000억원 미만에서 되사오기를 바랬고요.


M&A시장에서 매물 기업의 기업가치를 어림잡을 때 에비타 멀티플(EBITDA Multiple)이라는 걸 주로 활용합니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에 동종기업에 적용되는 평균 배수(multiple)를 곱해 기업가치(EV)를 산정하는 간편법입니다. 그렇게 기업가치(EV)가 산정되면 차입금을 빼고 현금과 비영업용자산의 공정가치를 더해 지분가치가 나옵니다.



2014년 금호고속의 영업이익이 570억원 정도 됩니다. 감가상각비와 무형자산 상각비 200억원을 합해 에비타가 770억원 가량 되었죠. 당시 유사기업인 동양고속의 에비타 멀티플이 6~7배 정도였으니 이를 금호고속에 그대로 적용하면 기업가치(EV)는 4500억원에서 5500억원 사이에서 형성될 만 했습니다.


그런데 KoFC펀드에서 넘겨받은 차입금 2200억원이 있었죠. 이를 빼면 최대 3300억원, 여기에 현금성자산 70억원과 매도가능금융자산 100억원, 관계기업인 금호리조트 지분(장부가 770억원) 등을 더하면 지분가치는 약 4300억원까지 볼 수 있습니다. 채권단이 받고 싶어하는 5000억원은 좀 무리가 있는 가격이었죠.


만약 금호산업에서 분할만 되고 KoFC펀드에 팔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기는 하지만, 인수차입금 2200억원을 떠안지 않았을 것이고, 매년 100억원이 넘는 이자비용도 나가지 않았을 테니 지분가치는 7000억원까지도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금호터미널은 금호고속을 3794억원에 사옵니다. 계약한 금액(4150억원)에서 할인을 받은 모양입니다. 결국 채권단은 목표가격보다 싸게 팔았고, 금호그룹은 원하는 가격 범위에서 샀습니다.


판 쪽이나 산 쪽이나 모두 아쉬울 게 없습니다. KoFC펀드는 3310억원에 금호고속을 사왔지만 2200억원을 금호고속에 넘겼으니 1110억원에 사서 3000억원 가까이 남긴 장사를 한 겁니다.


금호터미널은 KoFC펀드 지분 30%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분은 후순위 지분이었어요. 선순위 투자자들이 원리금을 회수한 후에 남은 걸 가져가는 구조였죠. 금호고속이 비싸게 팔릴수록 금호터미널의 몫이 커지게 됩니다.


실제로 KoFC펀드가 금호고속과 서울고속터미널을 성공적으로 매각한 후 남은 건 대우건설 지분 12%였는데, 이게 온전히 금호터미널의 몫이 됩니다. 당시 대우건설 지분 12%의 가치가 약 3000억원 정도였습니다. 1780억원을 주고 산 KoFC 지분이 3000억원이 된 셈이니 실제로는 금호고속을 사는데 2500억원 정도를 쓴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롯데-신세계 싸움에 박삼구회장이 득을 봅니다.


금호고속 인수대가는 금호터미널 자기자본의 2배에 가깝습니다. 금호터미널은 그걸 현찰로 지불했을 거잖아요.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을까요? 여기에 아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바로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의 백화점 부지 전쟁 이야기입니다.


금호터미널의 주요 자산은 광주종합터미널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대주주(52.08%)인 광주신세계 백화점이 입주해 있었죠. 신세계는 지방에 여러 분점이 있었지만 오로지 광주신세계만 별도 법인이고 상장회사이기는 했지만, 정 부회장의 개인회사 성격이 강했습니다. 세간에는 정 부회장이 광주신세계를 활용해 그룹을 승계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죠. 정 부회장은 41억6600만원을 광주신세계에 출자했는데,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수천억 원으로 불렸습니다. (돈 벌기 참 쉽네요),


그런데 2012년에 신세계백화점이 입주해 있던 인천터미널 부지의 주인이 롯데그룹으로 바뀌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인천시가 이 부지를 입찰에 부쳐 신세계와 롯데가 인수에 나섰는데, 롯데에 팔아버린 겁니다. 그 다음은 뻔한 거잖아요. 롯데가 임대차계약을 연장해 줄리 만무하죠. 실제로 인천점의 임대는 지난해말로 끝나서 올해부터 신세계 인천점은 롯데백화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죠.


이에 놀란 정용진 부회장이 부랴부랴 광주신세계 부지의 주인인 금호터미널과 임대차계약을 다시 맺습니다. 보증금 270억원에 매년 매출의 1.6%(약 80억원)를 주던 대신 보증금을 5270억원으로 올리고 임대차 기간을 2033년까지 확 늘립니다.


금호터미널은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게 아니라 돈 벼락을 맞은 셈이죠. 박삼구 회장에게는 천운이 따른 셈이고요. 금호터미널은 이 돈이 있어서 금호고속을 현금 주고 살 수 있었죠.



애써 산 금호고속을 3개월 만에 칸서스사모펀드에 되팝니다


그런데 금호고속을 인수하고 불과 석달 만인 2015년 9월 25일 금호터미널이 금호고속을 팔겠다고 발표합니다. 추석 연휴 직전이었고요. 채권단이 금호산업을 박삼구 회장에게 팔기로 결정한 직후였습니다. 아니, 눈물을 머금고 팔았다가 별 짓(?) 다해서 인수한 모태기업을 석달 만에 다시 팔다니요?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그래서 이런 기사가 뜹니다. 금호산업 인수를 위한 준비 작업이라는 겁니다. 당시 금호산업 채권단은 박삼구 회장에게 인수자금 마련에 금호 계열사들을 동원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금호터미널이 금호고속을 매각한 돈으로 금호산업 지분에 참여하게 되면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금호터미널-금호산업'의 순환출자 고리가 생겨 버리죠. 금호고속을 활용하기는 해야겠는데, 이렇게는 안 되는 거죠.



박삼구 회장이 생각해 낸 게 금호고속 지분을 파킹해 놓고 우회전략을 쓰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금호고속을 제3자에게 매각한 다음에 제3자가 인수한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금호산업 인수자금을 융통하는 겁니다. 금호고속은 나중에 금호터미널이 팔았던 돈으로 다시 사오면 되는 거죠.


이때 금호고속을 매각한 대상은 김영재 회장이 이끄는 칸서스자산운용의 한 사모펀드(칸서스KHB사모펀드)이었습니다. 칸서스는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때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했고 김영재회장은 박삼구 회장과 광주일고 선후배 지간입니다.


칸서스KHB사모펀드는 이미 한달 전인 8월에 금호고속 인수를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박삼구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가 결정되기 전이죠.


칸서스케이에이치비의 금호고속 인수, 금호터미널이 뒷돈을 댑니다.


금호고속을 칸서스에 팔자 파킹 아니냐, 금호산업 인수를 위해 우회전략을 쓰는 것 아니냐 등 언론들이 떠들었지만 사실은 박삼구 회장이 대놓고 속임수를 쓴 겁니다. 눈에 훤히 보이는 속임수였죠. 그 당시 언론들이 왜 이걸 주목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산업은행은 왜 이걸 용납했는지도 역시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칸서스KHB㈜는 1200억원의 자본과 2740억원의 차입금으로 금호고속을 인수했습니다. 농협은행과 NH투자증권이 이끄는 대주단에는 산업은행의 자회사인 산은캐피탈도 100억원을 참여했습니다.



1200억원의 자본금은 500억원의 보통주 자본금과 700억원의 우선주 자본금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5% 우선 배당과 내부수익률(IRR) 9%에 해당하는 잔여재산 분배권, 그리고 6개월 후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풋옵션까지 주어진 우선주였죠. 이름만 주식이지 고금리 차입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금호터미널은 칸서스KHB㈜의 차입금에 담보를 제공합니다. 칸서스가 못 갚으면 자신의 담보를 처분해서 회수하라는 건데, 파는 쪽이 사는 쪽의 빚에 담보를 잡혀 준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죠.



여기에 더해 금호터미널은 칸서스KHB사모펀드에 500억원(20%)을 출자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금호고속 인수자금을 댄 겁니다. 한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칸서스KHB가 2016년에 열후주 70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하는데 이걸 금호터미널이 인수합니다. 이쯤 되면 칸서스KHB의 자기자본은 대부분 금호터미널에서 나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결국 금호터미널은 금호고속을 자기가 팔고 사모펀드라는 대리인을 내세워 자기가 산 셈입니다. 그 바람에 금호고속은 또 고생을 합니다. 사모펀드가 거액의 차입금을 썼으니 원리금을 상환할 돈이 필요하잖아요. 금호고속이 배당금으로 그 원리금 이자 상환 재원을 만들어 줍니다.


2016년에 칸서스KHB(주)는 원리금 상환과 중간배당으로 960억원을 지출합니다. 그 중 700억원은 금호터미널이 열후주를 사 준 것이고, 139억원은 금호고속의 배당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