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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기계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김성진씨에게 슈퍼개미라는 수식어가 붙은 건 2004년 한국금속공업에 경영참여 목적으로 주식을 매입한 후 상당한 시세차익을 넘긴 일이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입니다. 당시 보도와 공시를 보니 대놓고 자기 이름을 걸고 노골적으로 타깃 회사의 주식을 매집한 후 기존 경영진에 싸움을 걸었더군요. 투자조합이나 이름 뿐인 껍데기 회사를 내세워 차입 등으로 자금을 모집한 후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는 요즘 유행하는(?) 무자본 M&A하고는 결이 다릅니다.
한국금속공업 외에도 오양수산, 신일산업, 고려산업, 한국폴리우레탄 C&우방 등 상장사에 투자한 큰 손이고 특히 2006년엔 관리종목인 충남방적(현 SG글로벌)의 공개매수를 선언하면서 인수에 뛰어들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분, 국내 가장 오래된 건설사 중 하나인 극동건설이 법정관리에 있을 때 다른 개인투자자들과 힘을 합해 회사 회생에 앞장 선 이력도 있습니다. 김성진씨는 당시 극동건설 지분 17.8%를 보유한 최대주주였습니다. 극동건설은 법정관리 후 2003년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가 1,700억원에 인수해 2007년 웅진그룹에 6,600억원에 매각하죠. 무리한 극동건설 인수는 웅진그룹 해체의 원인이 됩니다.
김성진씨가 시세차익을 노리고 투자를 한 경우도 물론 있지만, 경영참여를 선언한 사례에서는 나름 주주의 권리로 경영진의 잘못을 바로잡거나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한국금속의 경우엔 정관을 어기고 관계회사에 담보를 제공하고 부적격자를 상근감사로 선임했다며 의결권이라는 물리력으로 감사인을 교체하겠다고 했고요. 극동건설에 대해서는 영업실적이 양호하고 자산가치가 높다며 주주의 자격으로 법원에 정리계획안 변경신청을 냈었죠. 충남방적에 공개매수를 시도했을 때도 역시 기업가치 극대화와 지배구조 투명성 확립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언론에서는 그를 부실 기업을 인수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로 묘사하고 있지만, 본인 스스로는 행동주의 투자(activist Investor)를 표방하는 것 같습니다.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김성진씨는 삼성메디슨의 상장을 요구하는 삼성메디슨 주주연대를 이끌고 있기도 합니다. 삼성메디슨은 1985년 이민화씨 등 카이스트 출신 연구원들이 설립한 의료기기 업체로 1996년 코스피에 상장했는데, 한글과컴퓨터 등 여러 벤처기업을 인수하는 등 무리하게 몸집을 불리다가 2002년 부도를 냈죠. 2010년 삼성전자가 인수해 68.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부도 전 연 매출 2,000억원 정도였는데, 삼성전자에 인수된 후 크게 늘어 지난해 3,973억원을 기록했고 올해 4,000억원 돌파가 예상됩니다. 부도로 완전 자본잠식에 빠졌지만 지금은 부채비율 30%인 무차입기업으로 바뀌었죠.
삼성메디슨 주주연대는 강원도 홍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부도 위기에 몰렸을 당시 홍천 군민과 기관 및 사회단체, 춘천상공회의소 등에서 메디슨 1구좌 갖기 운동을 벌여 3,000여명의 소액주주들이 참여했다고 해요. 삼성메디슨이 정상화되었지만, 상장폐지가 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주주들은 투자금이 묶인 꼴이 되었죠. 삼성전자에 인수된 후 이 지역에 대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지역과 멀어지자 배신감도 들었던 모양이고요. 그래서 소액주주들이 모임을 만들어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삼성메디슨의 기업공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삼성메디슨 주주연대의 인터넷 카페에 2019년말 올라온 글을 보면, 김성진씨는 자신의 회사인 ㈜원옥에서 삼성메디슨 주주연대 모임을 열고 주주들의 위임장을 받고 있습니다. 원옥은 경기도 용인에 있다가 2019년 말에 경기도 청평으로 이전했군요. 원래 회사 창고로 사용하던 모텔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어쩐지 구글에서 원옥 주소를 검색하면 모텔 건물이 뜨더라고요.
하지만 김성진씨가 투자했던 기업이나 김성진씨의 투자 후 행보를 보면 행동주의 투자자보다는 벌처 투자자로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극동건설과 충남방적은 법정관리에 있던 회사이고 한국폴리우레탄, 고려산업, C&우방 등은 부실했습니다. 시가총액이 크지 않았고 지배구조가 느슨했죠. 경영권에 대한 외부의 공격에 취약한 회사들이었죠. 충남방적이나 한국폴리우레탄 등은 실적이 부진하지만 자산가치는 인정을 받는 기업들이었습니다.
한국금속에 투자할 때 성진씨와 원옥 등의 일행은 일방적으로 주식을 사기만 한 게 아니었습니다. 2003년 4월 처음 취득신고를 한 이래 2004년 7월 지분을 처분할 때까지 260번에 걸쳐 장내 매수가 이루어졌고, 86번의 장내 매도를 했습니다.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통해 경영진을 교체하겠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시로 주식을 사고 팔아 차익실현을 시도했던 셈입니다.
김성진씨는 처음에는 상장주식 매매를 보유목적으로 신고했지만 두 달 후 의결권 확보로, 다시 한달 후 주주총회 개최 요청에 대한 의결권 확보로 보유목적을 바꿉니다. 하지만 2004년 5월31일 주주총회에서 이사 및 감사 해임 건과 새로운 이사 및 사의 선임 건이 모두 부결되면서 의결권 대결에서 패하기 전부터 이미 대부분 보유 물량 처분에 나섭니다.
김성진씨 일행은 총 22억원을 들여 한국금속공업 주식을 매입했고 보유 물량을 처분해 49억원을 회수했습니다. 약 27억원 정도의 차익을 얻은 셈이군요. 김성진씨가 매입한 주식은 총 68만4000여 주에 달했지만, 주주총회 후 한달이 지난 2004년 6월말에는 김성진씨가 보유한 6만2454주를 제외한 전부가 처분되었습니다.
한국금속공업은 이후 최대주주인 류창목씨 일가가 지분을 장외매도한 것을 시작으로 수 차례 최대주주가 바뀌고 상호 역시 한국금속공업→디지털월드㈜→조인에너지로 변경되지만 2009년 재무제표에 대한 외부감사인의 의견거절과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 됩니다. 김성진씨가 주주총회에서 승리해 한국금속공업의 경영권을 확보했으면 달라졌을까요?
한국금속공업은 화천기계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화천기계가 화천기공의 공작기계를 독점 판매하는 것과 비슷하게 한국금속공업은 특수관계에 있는 회사인 ㈜한금의 판매회사였습니다. 2002년 12월 31일 양사는 사업부 양수도계약을 체결했는데, 한국금속공업의 제조부문을 한금이 가져가고, 한금의 판매부문을 한국금속공업이 양수합니다. 2003년부터는 한금이 제품제조를 전담하게 되었고 생산된 모든 제품을 한국금속공업에 판매하게 있었죠.
이 유사성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제품 제조를 전담하는 회사나 판매를 전담하는 회사나 완전한 회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한금과 한국금속공업의 관계는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관계와 같습니다. 김성진씨의 18년 전 공격 대상인 한국금속공업과 올해 화천기계의 이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니면 김성진씨가 발견한 공략 포인트가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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