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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은 주택 또는 상가 등을 지어 미래에 발생할 분양수익을 기초로 금융기관 등에서 자금을 차입하는 금융기법입니다. 통상 사업주체인 시행사가 PF대출을 받는데, 국내 시행사의 경우 대부분 영세하기 때문에 시공사가 신용보강을 제공하게 됩니다. 신용보강의 형태는 과거에 연대보증이나 채무인수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자금보충, 책임보강 등 그 형태가 다양합니다.


PF대출의 상환재원이 근본적으로 분양수익이기 때문에 분양성과가 좋으면 차환 또는 상환의 리스크가 크게 낮아지지만, 사업이 지연되거나 분양성과가 낮으면 시행사가 부도위험에 직면하게 되고 건설사가 보증채무를 떠안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 우발채무는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지만, 프로젝트가 완공되고 수분양자들에게 완성된 주택을 넘겨줄 때까지 사실상 건설사의 차입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PF우발채무가 현실화되더라도 미착공사업장이나 분양률이 매우 저조한 일부 사업장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해 건설사들이 대처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택가격 급락으로 주택수요가 실종되고, 레고랜드 사태와 같은 신용사건으로 자금시장이 경색되면, PF사업장에 자금공급이 끊기고 분양실패가 속출하면서 입지가 좋든 나쁘든 모든 사업장의 PF차입금이 현실화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결국 PF우발채무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선, 분양성과가 좋은 사업장의 비중이 높아야 하고 건설사가 재무적으로 탄탄해야 합니다. PF차입금을 충분히 떠안을 수 있는 자본력과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재무능력이 우수했던 대형 건설사들은 견뎌냈지만 부동산 호황국면에서 사업을 크게 확장했던 중견 건설사들이 상당 수 부도를 피하지 못했죠.


2008년 당시와 달리 지금은 대형 건설사와 일부 중견 건설사에 리스크가 집중될 것 같습니다. 대형 건설사들이 2017년 이후 주택경기 초호황 시기에 국내 주택사업에 거의 올인하다시피 했거든요. 특히 사업 초기로 착공 이전에 있는 사업장(이하 미착공)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아예 분양 단계까지 가지 못하거나 분양을 하더라도 실패할 위험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분양이 완료된 사업장이면 분양대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고 대출을 상환하면 되기 때문에 우발채무가 현실화되더라도 주택을 완공 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분양 전 단계이거나 분양률이 낮으면 사업비와 용지비 등에 들어간 PF차입금은 고스란히 건설사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문제가 발생한 둔촌주공아파트 재개발사업은 PF우발채무가 어떻게 현실화되고, 차환 리스크가 어떻게 여러 건설사로 전파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단군이래 최대 재건축사업이라고 불리었던 이 사업은 사업비를 금융기관에서 차입한 것이 아니라 유동화 전자단기사채(이하 ABSTB)를 발행해 조달했습니다. 이를 위해 주관 증권사에 의해 ABSTB를 발행할 4개의 특수목적회사(SPC)가 설립되었고, 차주가 되는 재개발조합에는 시공사인 현대건설, 롯데건설, 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이 연대보증을 섰습니다.


그런데 강원도가 보증을 선 레고랜드 ABCP가 부도처리되면서 둔촌주공 PF의 ABCP 역시 차환발행에 실패해 시공사들이 상환을 해 주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죠.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만기 하루 전인 지난 27이 정부가 나서서 채권시장안정펀드와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ABCP를 인수하도록 해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둔촌주공 재개발은 사업비가 약 3조2000억원 정도였습니다. 지분이 가장 많은 현대건설이 9042억원, HDC현대산업개발이 8073억원, 대우건설과 롯데건설이 각각 7589억원을 수주했죠. 그런데 공사기간 연장과 일반분양가 문제로 시공사와 재개발조합간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올해 4월15일 이후 공사가 중단되었고 10월초 공사 재개에 양측이 합의했다고 합니다. 이에 10월 21일 기존의 7000억원에 1250억원을 더해 ABSTB 발행을 시도했지만, 자금시장 경색으로 투자자를 구하지 못하게 된 것이죠.


채권시장안정펀드의 도움으로 ABCP 차환발행에 성공하면서 주관사 중 SK증권과 BNK투자증권이 이탈했고 그 자리를 KB증권이 채웠습니다. 이탈한 증권사들이 설립한 SPC 2곳도 새로 설립된 곳으로 대체되었죠(스타인클라우드, 오메가트러스트).


가까스로 차환한 터라 발행액을 늘리지는 못했습니다. 총 7231억원 규모로 발행되었는데, 원금 7000억원에 발생이자를 포함한 금액일 것입니다. 시공사의 신용수준이 달라, 어떤 시공사의 보증을 받는지에 따라 ABSTB의 신용등급도 다릅니다. 현대건설과 롯데건설의 보증을 받은 건 A1등급이고 HDC현대산업개발과 대우건설이 보증을 선 것은 A2등급이죠.


새로 발행된 ABCP의 만기는 모두 내년 1월 19일로 같습니다. 날짜가 이렇게 정해진 이유는 그 때가 바로 일반분양이 이루어지는 시점이기 때문이죠. 둔촌주공 재개발은 지하3층, 지상 35층의 아파트 85개동, 약 1만2000세대를 신축하는 사업인데, 이 중 약 4700가구가 일반분양 대상이라고 합니다.


둔촌주공 ABCP를 채권시장안정펀드가 나서서 차환해 주는 게 적절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정부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이 나서서 조성한 펀드로 막힌 돈줄을 풀어 줄 가장 급한 곳이 국내 최고의 건설사들인가요. 대형 건설사들은 그 동안의 부동산경기 초호황으로 곳간이 넘칩니다. 최근 보도로 롯데건설의 현금은 9000억원에 이른다 하고, 6월말 기준으로 현대건설의 현금은 3조원이 넘습니다. 대우건설 역시 1조원 이상의 현금을 쥐고 있고, HDC현대산업개발은 약 6300억원 가량의 현금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둔촌주공 정도의 우발채무 부담은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죠.


부동산PF 문제에서 수도권은 그나마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대구, 경상도 등 분양률이 저조하고 미착공 사업장이 몰려 있는 곳이죠. 자금경색이 지속되면 이 지역에 있는 공사현장들이 일제히 멈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그로 인해 ABCP의 동시다발적인 차환실패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정말로 건설사들이 연쇄적으로 유동성부족에 빠질 수도 있죠. 채권시장안정펀드가 화수분은 아니니 가장 필요할 때 가장 필요한 곳에 써야 하는 것 아닐까 싶네요.


둔촌주공재개발사업은 이제 걱정을 놓아도 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반분양이 내년 1월 예정대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하고, 분양률이 잘 나와 분양대금이 순조롭게 유입되면 ABCP도 상환하고 건설사들이 공사대금을 받을 수도 있겠죠. 행여 분양에서 참패한다면, ABSTB 상환은 물론 시공사에 대한 공사비 지급도 어려울 지 모릅니다.


둔촌주공재개발의 진행률은 건설사마다 다르지만 대략 35~40% 사이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도급계약이라면 3조2000억원의 사업비 중 약 1조원 정도의 공사대금을 받았어야 하지만, 재개발사업의 특성상 일반분양이 이루어져야 공사대금을 청구할 수 있죠. 시공사들은 공사비를 사용했지만 아직 공사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내년 1월 분양률이 매우 저조할 경우 건설사들은 다시 ABSTB에 대한 상환의무를 떠안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공사를 지속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그 때도 채권시장안정펀드를 다시 동원해 ABSTB를 재발행하게 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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