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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산업이 2012년 8월 금호고속 등을 매각하고 받은 대가는 9465억원(금호고속 3310억원, 서울고속버스터미널 2000억원, 대우건설 4155억원)의 현금 유동성이었습니다.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가 이 거래에 대해 헐값 매각에 대한 의심을 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1조원에 가까운 뭉칫돈의 유입으로 금호산업은 당연히 상당한 재무 개선의 효과를 얻게 됩니다.


금호고속 패키지 매각은 금호산업 워크아웃 작업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아래는 자산 매각 당시 금호산업이 공시한 재무 개선의 폭입니다. 자산총액은 다소 줄지만, 부채가 8000억원 가까이 감소하고 200억원에 미치지 못하던 자기자본이 약 2000억원으로 늘게 됩니다.



금호고속을 포함한 이 패키지 딜은 금호산업이 워크아웃 중 실시한 최대 규모의 자구책이었습니다. 자산 부실을 정리하기 위한 무상감자와 채권단 및 대우건설 재무적 투자자의 출자전환 등, 통상의 워크아웃 절차를 제외하면 약 9500억원 규모의 금호고속 패키지 거래와 같은 해 이루어진 박삼구 부자의 유상증자가 금호산업 정상화 노력의 대표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산 매각이 이것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매도가능유가증권이나 금융상품을 처분해 현금 유동성을 마련하기도 했고, 약 700억원 규모의 해외 자산을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에 팔아 넘기기도 했지요. (아시아나항공이 없었다면, 금호산업의 워크아웃 졸업은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하지만, 금호산업이 과거의 부실을 정리하고 재기의 발판을 만든 첫 번째 계기는 금호고속 패키지 거래라고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은 생각합니다. 그 후에도 자본잠식에 빠지고 대출금 상환을 못해 연체가 발생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지만요.


부실에 빠진 기업이 할 수 있는 자구계획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부실 사업을 정리하고, 인력 감축 등 비용을 절감하고, 자산을 매각하고, 유상 증자를 하는 정도입니다. 앞의 둘은 현금유출을 줄이는 것이고, 뒤의 둘은 현금유동성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그 현금으로 급한 차입금을 갚고, 운영자금으로 쓰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투자를 하는 것이죠. 감자와 출자전환은 자구노력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감자는 새로운 주주를 맞이하기 위한 대청소 같은 것이고요, 출자전환은 채권단이 제공하는 생명연장의 선물 같은 것이죠.


금호고속 매각이 정상화의 기틀이었습니다.


금호산업이 2014년 워크아웃에서 졸업하기는 하지만, 회사의 실적이 확실하게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감자와 출자전환 등을 거치며 재무지표가 좋아지기는 했습니다. 너무 많았던 차입금이 크게 줄고 2014년에는 자본잠식에서도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하기는 좀 곤란합니다.


회사가 살아났다고 하려면 매출이 늘고 이익이 늘고, 실제로 현금흐름이 창출되어야 합니다. 기업의 혈액이라고 부르는 현금흐름이 원활해야 산소호흡기를 떼도 숨이 넘어가지 않지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금호산업은 좀 애매합니다.


영업이익이 2013년 이후 연속 흑자를 기록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차입금의 대규모 상환과 출자전환으로 이자지급에 대한 부담도 크게 줄지요. 분명히 지표상 부채 상환 능력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영업활동으로는 여전히 돈을 벌지 못하는 회사였습니다. 2010년 이후 한해 건너 현금흐름이 적자를 기록합니다. 워크아웃에서 졸업한 2014년에도 2000억원에 가까운 현금흐름 적자를 냈지요. 이자지급 부담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상 현금흐름이 적자였던 것은 운전자본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습니다. 공사미수금 등 매출채권의 회수는 더딘 반면에 매입채무는 몇 년째 큰 폭으로 줄고 있었습니다. 외상값을 받지는 못하고, 외상 빚은 꼬박 꼬박 갚아야 했던 겁니다.



금호산업의 재무구조 개선은 자산 매각 등의 자구책과 채권단의 출자전환 덕분이죠. 아래 그림은 금호산업의 워크아웃 기간 중 투자현금흐름 중에서 종속/관계기업 지분과 기타 자산의 증감을 요약한 것입니다. 투자현금흐름의 전부라고 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위기 기업의 자구노력은 투자현금흐름에 그 흔적이 남게 되지요.



금호산업의 자산 매각은 대부분 2012년에 집중적으로 발생합니다. 자산 매각으로 약 9400억원의 현금유입이 이루어지죠. 네, 바로 금호고속,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대우건설 지분의 매각입니다. 다른 자산 중에도 팔거나 산 것이 있어서 금액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2012년에 종속 및 관계기업 지분을 사느라고 1546억원의 현금을 지출합니다. 그 중 대부분인 1500억원은 코에프씨 사모펀드에 후순위로 출자한 30%의 지분, 그것입니다.



위 그림은 같은 기간에 금호산업의 차입금과 납입자본의 변화입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차입금 상환이 2012년에 일어납니다. 금호고속 등의 패키지 거래로 유입된 현금으로 약 7800억원의 차입금을 순상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약 2200억원의 유상증자가 이루어졌죠. 금호산업이 박삼구 회장 부자를 대상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 것입니다. 금호산업은 워크아웃 기간 중 수 차례의 유상증자를 합니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 부자의 2200억원을 제외하면 실제 신규 자금이 유입되는 증자는 없습니다. 다른 것은 모두 차입금을 자본으로 바꾸는 출자전환 유상증자였습니다.


채권단은 실권을 목표로 3000억원 유상증자를 결정합니다.


2200억원짜리 유상증자는 금호그룹을 박 회장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필요했던 포석이었을 거라고 재읽사가 언급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는 곱씹어 볼 만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박삼구 부자를 대주주로 다시 입성시키기 위해 채권단이 한판의 쇼를 벌입니다. 금호산업은 3월21일 이사회에서 3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합니다. 신주의 발행가액은 7580원. 당시 주가는 이미 7000원대 초반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사회는 3월21일 열렸지만, 실제로 유상증자가 결정된 것은 2월 22일 제10차 채권금융기관 협의회에서 였습니다. 이날 채권단은 금호산업에 1200억원의 긴급자금 지원과 257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에 합의하는데, 출자전환 가격이 주당 7580원이었습니다.


채권단은 이와 함께 3000억원의 유상증자를 추가로 실시하고, 주주배정과 일반공모에서 실권이 생기면, 그 실권주를 박삼구 부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로 전환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박삼구 부자가 실권주에 대해 증자에 참여한다면서 그 규모를 미리 2200억원으로 확정해 놓습니다. 최소한 2200억원 이상을 실권하기로 미리 계획한 겁니다.


유상증자의 결정은 채권단이 아니라 이사회가 해야죠. 그래서 채권단의 결정대로 3월 21일 이사회가 열리고, 5월에 실시된 청약과 납입에서 시나리오대로 우리사주조합과 채권단이 불참하면서 3000억원 중 594억원의 청약과 납입만 이루어집니다.



금호그룹 재건이 아니라 담보차입 상환입니다.


3000억 유상증자가 계획대로 불발되고 금호산업 이사회는 다시 이사회를 열어 실권주를 박삼구 회장 부자에게 배정하는 유상증자를 결의합니다. 박 회장 부자가 14% 지분을 가진 사실상의 지배주주로 복귀하고 금호산업과 그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 그 자회사인 금호터미널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순간입니다.



박 회장 부자는 유상증자로 인한 주식 보유상황을 공시하면서 자신을 금호산업의 '사실상의 지배주주'로 표기합니다. 경영권 지분은 채권단이 들고 있지만, 실제 경영권은 자신이 갖고 있음을 밝힌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박 회장 부자가 금호그룹을 회복한 건 2012년 유상증자 이후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2015년 금호산업 지분 인수, 2016년 금호터미널 인수, 2017년 금호고속 재인수는 금호그룹 재건이 아니라 채권단의 자금회수 또는 엑시트 과정이라고 보는 게 보다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읽사가 자꾸 금호고속의 코에프씨 사모펀드 매각은 형식상은 진성 매각이나 내용상으로는 담보차입 거래의 성격을 띠고 있고, 금호고속을 칸서스KHB 사모펀드로 매각한 것은 실제로 담보차입거래였다고 강조하는 겁니다. 금호터미널을 아시아나항공에서 사온 것은 그 차입금 상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고요. 금호고속을 사 온 것은 차입금 상환 그 자체였던 것이죠.


금호그룹은 이걸 두고 박삼구 회장 가족이 죽어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재를 털었다고 홍보하고, 언론들은 박삼구 회장의 통 큰 결단으로 치켜 세웁니다. 2200억원으로 금호산업은 물론, 알짜 회사인 금호터미널과 그룹 내 최고 기업인 아시아나항공의 자산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자리를 얻었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