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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지난 2020년과 2021년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내렸습니다. 투자규모가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와중에 대규모 영업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죠. LG와 소송에서 패하면서 약 2조원의 합의금 부담이 생긴 것도 이유가 됐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은 실적이 개선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대규모 투자의 지속으로 유의미한 정도의 차입금 감축이 당분간 어렵다고 봤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IPO와 SK루브리컨츠 지분이 일부 매각을 추진했습니다. SKIET의 신주와 구주매출로 약 2조2400억원(SK이노베이션으로 1조3476억원, SKIET로 8903억원)이 유입되었죠. SK루브리컨츠 지분(40%)을 IMM프라이빗에퀴티의 손자회사격인 SPC 에코솔루션홀딩스에 매각해 1조937억원을 받았고요.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시큰둥했습니다. 배터리와 소재부문에 연평균 3~4조원의 투자가 지속되고 있고 LG그룹에 2조원의 합의금을 지급해야 하는 걸 감안하면, 총 3조3000억원가량의 자산매각으로 얻을 재무구조 개선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죠.



국내 신용평가사 3곳 중 마지막으로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내린(2021.4) 곳이 한국기업평가인데요.그 후 두 번의 결산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동안 SK이노베이션(연결)의 차입금은 10조원 이상 늘었습니다. 모회사의 차입금은 조금 늘었을 뿐입니다. 차입은 대부분 자회사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차입금 증가는 주로 지난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회사채나 금융권 장기차입이 아니라 1년 미만의 단기차입으로 조달이 이루어졌습니다. 거의 전부 올해 차환 또는 상환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한국기업평가는 SK이노베이션의 재무상황이 더 악화되면 신용등급을 추가 하향조치할 기준을 제시했는데요. 순차입금/EBITDA 4배, 차입금의존도 40% 초과였습니다. 2020년 4월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 때 한국기업평가는 SK이노베이션의 순차입금/EBITDA가 향후 3년간 4.0배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고 차입금의존도 역시 40%를 웃돌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지난해 EBITDA증가로 순차입금/EBITD는 다행히 4배 아래에 머물러 있지만, 차입금의존도는 40.4%로 높아졌습니다. 신용등급 추가 하향의 퍼즐이 절반쯤 맞추어진 셈입니다.


신용평가사가 EBITDA를 중시하는 것은 수익창출능력이 좋으면 차입금이 좀 많아도 어렵지 않게 갚아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업이익이 아니라 EBITDA로 보는 것은 수익창출이 현금창출로 이어져야 의미있는 상환능력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그런데 SK이노베이션의 경우 현금창출능력의 추정치와 결과값(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2021년 이후 완전히 딴판입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의 EBITDA는 6조원에 육박하지만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4000억원에 불과하죠. 매출채권과 재고자산 급증으로 수익이 현금화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매출채권은 회수하면 되고 재고자산은 판매하면 되죠. 올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내년에는 기대해도 될까요? 낙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연결 차입금이 증가하고 EBITDA와 달리 현금흐름 유입이 안되는 이유가 바로 SK온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년간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거의 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회사를 포함한 연결기준차입금은 약 12조원이 증가했죠. 그런데 SK온을 제외한 다른 주요 자회사의 차입금 증가액을 모두 합해도 2조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연결 기준 차입금 증가가 사실상 SK온의 대규모 투자에 필요한 재원마련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SK온은 2021년 10월 1일 분할 설립되었습니다. 최초 분할 공시는 3월말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했는데 당시 SK인베이션에서 이관받는 차입금이 2조8000억원이었습니다. 2021년말 차입금은 4조5400억원이고 지난해 말 차입금이 10조8000억원에 이릅니다. 2021년 1분기를 제외하고도 8조원 이상 증가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 연결차입금의 67%에 달합니다. 전액 국내외 금융기관에서 차입했거나 회사채 등을 발행한 외부 차입금입니다.


SK온의 대규모 차입은 물론 설비투자를 위한 것이지만 운영자금 조달도 적지 않습니다. 아직 영업활동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난해 EBITDA는 (-)6700억원 정도인데, 운전자본에 1조5600억원가량이 잠겨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2조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자본적지출에 4조9000억원을 썼죠. 거의 7조원에 달하는 현금부족이 생긴 겁니다.


SK온 연결법인은 지난해만 6조1000억원가량을 외부차입했습니다. 설비투자 자금 외에 운영자금으로 소진한 보유 현금을 채운 셈입니다. SK온은 설립 당시 3조원이 넘는 현금성 자산을 갖고 출범했습니다. 2021년 10~12월 3개월 만에 거의 절반을 썼죠. 외부차입 등으로 지난해 말 3조5000억원대로 늘려 놓았습니다.



SK온의 차입금의존도는 지난해말 무려 50.8%에 달합니다. 그리고 전체 차입금 중 53%가 올해 만기도래하는 단기성 차입금이죠. 올해 내내 차입금 상환이나 차환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3조원대로 늘려 놓은 현금 중 일부가 상환자금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올해 역시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최소한 2025년까지는 매년 3~4조원의 투자자금이 필요할 것이거든요.


SK 온의 흑자전환 시기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관점과 보수적인 관점이 엇갈리고 있지만 현금흐름이 플러스로 돌아서는 시기는 흑자전환 보다 늦을 것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생산설비가 중국 유럽 미국 등으로 분산되어 있는 데다가 각각의 설비가 완성차업체들과 별개의 합작투자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상가동 시기까지는 운전자본 부담이 유의미하게 줄어들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올해 역시 대규모 자금조달이 불가피한 SK온인데요. 지난해말 SK이노베이션(2조원)과 재무적투자자(8243억원)이 참여한 유상증자, 올해 3월 재무적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3757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같은 자본확충 외에도 대규모 차입과 프리 IPO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SK온의 재무부담은 직접적으로 SK이노베이션의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SK이노베이션의 차입금/EBITDA나 차입금의존도가 당분간 SK온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입니다. 게다가 모회사로서 SK온의 증자에 참여하거나 지급보증 형태의 지원에 나서야 하는 부담도 큽니다. SK온은 아직 자체 신용으로는 외부 조달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올해 신용평가사들이 SK그룹의 신용등급에 대해 정기평가를 할 때 당장 하향 액션을 취하지는 않겠지만, 언제든 향후 등급의 방향성에 대해 우려 섞인 코멘트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흑자전환 시기가 늦어질 것으로 보이거나, 운전자본 및 차입부담이 줄어들지 않을 경우에는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이 3년 만에 다시 기로에 선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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