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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표그룹의 경영승계와 관련된 중요한 장면을 정리해 보죠. 아마 정도원 회장이 개인회사 대원의 지분을 정대현 사장 등 3남매에게 양도한 2007년이 첫번째일 겁니다. 대원을 정대현 사장에게 넘긴 뒤 내부거래로 단기간에 덩치를 크게 키운 삼표로지스틱스를 대원에 싸게 매각하죠. 정대현 사장으로의 경영승계를 위한 지렛대가 처음 만들어진 장면입니다.


2013년 지주회사 체제는 정대현 사장이 후계자로 전면에 등장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삼표로직스와 합병한 대원을 대원과 신대원으로 인적분할한 뒤 삼표가 대원을 합병함으로써 정대현 사장이 지주회사의 주요 주주로 올라설 수 있었죠. 그런데 당시 정대현 사장에게는 대원 말고도 몇 개의 개인회사가 더 있었습니다. 네비엔, 알엠씨, 삼표건설과 그 개인회사를 통해 거느리고 있던 동양자원, 경한 등입니다.



시장에서는 정대현 사장이 개인회사들을 지주회사 삼표에 현물출자하고 지주회사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승계하는 그림을 예상했습니다. 부분적으로 맞았죠. 반으로 쪼개진 대원을 삼표에 흡수합병시켰으니까요. 하지만 나머지 회사들은 정대현 사장의 개인회사로 남겨 두었습니다.


당시에 개인회사를 전부 현물출자했으면 정대현 사장은 지주회사의 더 많은 지분을 가질 수 있었을 겁니다. 대신 경영승계의 지렛대를 전부 소진하게 되었을 것이고 아버지의 지분을 증여받거나 상속받아야만 경영권을 넘겨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남겨진 개인회사들은 새로운 지렛대로 무럭무럭 성장합니다. 특히 네비엔의 폭풍 성장이 부각됩니다. 네비엔은 철스크랩 수집 및 가공을 하는 환안산업이 전신인데, 2004년에 상호를 바꾸어습니다. 당시 매출이 200억원 미만이었죠. 그러네 2010년에 삼표이앤씨의 철근 및 콘크리트공사업을 합병하고 2014년에는 삼표건설을 합병해 덩치를 크게 키웁니다. 이후 삼표그룹 및 사돈기업인 현대차그룹의 지원아래 성장을 거듭해 2018년에는 매출액 2200억원대의 회사가 됩니다.


에스피네이처는 2019년 탄생합니다. 신대원이 삼표기초소재를 흡수하고(2017년) 남동레미콘, 알엠씨, 당진철도를 합병한 뒤 상호를 에스피네이처로 바꾸죠. 에스피네이처는 경한, 네비엔 등 다른 개인회사들도 나란히 흡수합니다. 정대현 사장 개인회사들의 통합법인이 에스피네이처인 셈입니다.


삼표그룹 3세 승계에 대한 시장의 예상은 여전히 에스피네이처와 ㈜삼표의 합병이었습니다. 하지만 삼표는 예상을 뒤엎고 자회사(삼표산업)가 모회사(삼표)을 흡수하는 역합병을 선택했습니다. 삼표그룹은 아마도 아버지 정도원 회장의 지분 증여나 상속 없이도 정대현 사장이 경영승계를 할 방법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에스피네이처가 급성장을 했다고 해도 지주회사 삼표와 합병으로 정대현 사장이 확보할 수 있는 지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개별재무제표 기준으로는 에스피네이처의 매출액(지난해 6779억원)이 삼표(지난해 1949억원)보다 훨씬 많고 장부상 자산이나 자본의 규모도 엇비슷하지만, 삼표가 지주회사인 특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죠.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는 삼표의 매출액(1조4825억원)과 자산(2조7101억원) 등에 비해 에스피네이처의 외형이 크게 밀립니다. 에스피네이처를 삼표에 흡수시킨다고 해도, 정대현 사장은 여전히 아버지의 지분을 넘겨받아야만 경영승계 작업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부자는 막대한 양도세 또는 상속•증여세를 부담해야 합니다.


걸림돌도 하나 있습니다. 에스피네이처가 2021년에 발행한 789억원 상당의 상환우선주가 그것입니다. 상환기일을 10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이 상환우선주의 전부 또는 일부는 장부상회사(SPC)를 통해 전자단기사채(ABSTB)로 유동화되었습니다. 약정에 따라서는 회사의 중대 변화인 합병으로 인해 조기상환 요건이 발동될 수도 있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삼표의 상환우선주로 바꿔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삼표가 삼표산업을 흡수하는 것과 삼표산업이 삼표를 흡수하는 것에는 경영승계의 관점에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자기주식 때문이죠. 삼표가 합병 주체가 되면 합병 전후 주요 주주인 정도원•정대현 부자와 에스피네이처의 지분율이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삼표가 삼표산업 지분의 거의 다 갖고 있기 때문이죠. 에스피네이처가 1.74%의 삼표산업 주식을 삼표 주식으로 교환받는 정도의 변화밖에 없죠.



삼표산업이 삼표를 흡수하는 역합병의 경우 주주들의 지분율은 거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하고, 48.9%의 지분이 자기주식으로 변합니다. 자기주식은 죽은 주식이므로 명목 지분율과 달리 주주들의 실질 지분율은 삼표가 삼표산업을 흡수하는 때와 같아집니다. 엎치나 메치나 주주들의 실질 지분율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이 부분에 언론들의 오해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기주식은 정대현 사장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합니다. 아버지의 지분을 받지 않더라도 아버지를 제치고 그룹의 총수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통합법인인 삼표산업의 자기주식을 에스피네이처로 이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경영승계를 위해 막대한 세금을 부담할 걱정을 덜어낼 수 있죠. 정대현 사장이 그동안 정성들여 키워 놓은 에스피네이처가 요긴하게 쓰일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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