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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엘에너지 지분을 공개매각하고 스튜디오산타클로스의 최대주주가 바뀌면 온성준•온영두 형제는 무대에서 내려오는 걸까요?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에스엘에너지와 다른 계열사들간 지분관계가 공식적으로 사라지고, 에스엘에너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두 형제의 투자활동이 끊기게 되는 것까지만 확실할 뿐이죠. 엘에스에너지를 팔았고, 스튜디오산타클로스, 이브이첨단소재 등 다른 계열사에 대한 지분이 없다고 해서 두 형제의 영향력이 더 이상 없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에스엘에너지 매각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단지 지분을 매각하다고 완전한 정리가 되는 건 아닙니다. 에스엘에너지와 그 계열사들을 통해 이루어진 수많은 거래가 있고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온성준씨는 자본시장에 상당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 에스엘에너지를 인수하고 정리할 때까지 깊게 관여된 인물로 루멘스의 유태경 대표와 우성코퍼레이션의 손오동•신채림 부부가 있습니다.
온성준 형제는 아마도 최소한 1년 또는 2년전부터 질서정연한 퇴각을 준비했을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코스닥 상장사 루멘스의 본사와 공장을 매입한 것이고요. 에스엘에너지는 루멘스 부동산을 지난 2021년 8월 417억원에 매입하기로 결정하는데요. 에스엘에너지는 당시는 에스엘홀딩스가 에스엘에너지 최대주자가 된 지 9개월가량 지났을 때였고, 에스엘에너지는 거액을 들여 부동산을 매입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2021년 에스엘에너지(당시 세미콘라이트)는 4년 연속 영업손실에, 6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 중이었습니다. 지난해말 상장폐지요건이 완화되면서 4년 연속 영업손실이어도 관리종목에 지정되지는 않지만, 회사가 심각한 부실에 빠졌다는 것까지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영업활동에서 현금을 창출하기는커녕 까먹고 있었고, 반복되는 차입(전환사채 발행 포함)과 증자에도 불구하고 현금유동성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죠.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기업이 뜬금없이 대규모 부동산 투자에 나선 셈입니다.
그해 에스엘에너지는 결손 보전을 위해 90% 무상감자를 실시했고, 유동성 확보를 위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지분 전량 매각을 추진(비록 철회되었지만)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에스엘에너지는 제때 잔금을 치르지 못했고, 지난해 초 413억원 규모의 대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지만, 실제 납입된 자본은 138억원에 불과했죠.
에스엘에너지는 왜 이렇게까지 무리를 해가며 루멘스의 부동산을 매입한 것일까요? 이때까지 에스엘에너지 소유의 본사건물과 공장이 없었습니다. 본사와 공장 모두 지난 2009년부터 무려 14년 동안 루멘스에 세들어 있었습니다. 당시 루멘스와 에스엘에너지의 전신인 세미콘라이트의 최대주주와 대표이사가 같은 사람이었거든요. 바로 유태경 루멘스 대표입니다.
루멘스 유태경 대표는 2009년 세미콘라이트를 인수해 2015년 코스닥시장에 상장시킨 뒤 이듬해인 2016년 지케이티팜에게 160억원을 받고 경영권 지분을 양도합니다. 하지만 루멘스 소유분 5.01%는 팔지 않습니다. 이때부터 뭔가 조짐이 이상했습니다. 지케이티팜은 설립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자본금 1700만원짜리 회사였고, 인수자금이 자기자금이라고 보고했지만 한달 만에 거짓이었음이 탄로났죠.
지케이티팜은 유태경 대표 지분 외에 다른 주주들의 지분을 장외에서 매입해 총 19.53%의 지분을 182억원에 확보했는데요. 황당하게도 그 중 5.4%에 상당하는 주식이 특정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인출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인수한지 한달도 안돼 3.3%의 지분을 장외매도합니다. 지케이티팜 뒤에 다른 인수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그리고 얼마 뒤인 2016년 8월 지케이팜은 보유주식 전부를 담보로 맡기고 갤럭시아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105억5000만원을 차입하는데요. 투자수익금을 대여자에게 반환한다는 조건이었죠. 그것도 고작 한달 만에요. 지케이티팜은 세미콘라이트 경영권 지분으로 단기투자를 하려고 했었나 봅니다.
지케이티팜이 담보로 맡긴 주식은 정확히 한달 후 투자계약 위반으로 담보권이 실행되어 전량 장외매도되고, 갤럭시인베스트먼트가 8.25%의 지분을 확보해 새로운 최대주주가 됩니다. 갤럭시인베스트먼트는 온다엔터테인먼트가 100% 지분(자본금 20억원)을 보유하고 있었고 대표이사는 바로 세미콘라이트의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온성준씨 형제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한 조호걸씨입니다.
조호걸씨는 1주일만에 80억원 규모의 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세미콘라이트의 대주주 자리를 에스엘코리아라는 투자조합에 넘겨줍니다. 에스엘코리아의 출자자는 4인이었는데, 최대 출자자는 ㈜플린스, ㈜에스아이리소스, 온다엔터테인먼트(후 텔루스) 그리고 제이스테판(현 에이루트)였습니다. 당시 제이스테판 대표이사가 배임 등으로 구속된 적이 있는 이준민 현 카나리오바이오엠 고문입니다.
온다엔터테인먼트는 다비치1호 투자조합이 2015년말에 인수한 뒤 조호걸씨가 대표이사에 올랐고, 다시 이화투자조합으로 최대주주가 바뀌는데요. 이화투자조합의 출자자는 제이스테판, 에이치엘비파워, 케이비즈윈, 위드윈스포츠, 위드인메디칼 등이었습니다. 케이비즈윈은 조호걸씨가 대표이사였고 에이치엘비파워는 위드윈인베스트먼트가 대주주였죠. 결국 온다엔터테인먼트와 에스엘코리아는 투자자가 겹치는 특수관계였죠. 또 갤럭시인베스트먼트와 함께 지케이티팜에 자금을 대여했던 곳은 다빈치1호투자조합인데, 에스엘코리아는 다빈치2호투자조합이 이름을 바꾼 곳이었습니다.
지케이티팜이 세미콘라이트 경영권을 인수한 뒤 세미콘라이트 대표이사에 오른 사람이 김영진씨인데요. 에스엘코리아의 4인의 출자자 중 하나인 ㈜플린스를 설립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김영진씨는 최대주주가 에스엘코리아로 바뀐 뒤에도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다가 자신이 최대주주(50%)인 자본금 1억원짜리 에스엠씨홀딩스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세미콘라이트의 새주인이 됩니다. 또 지케이티팜의 공동 출자자인 권순구씨는 세미콘라이트의 사내이사로 선임되는데, 역시 최대주주가 에스엘코리아로 바뀐 뒤에도 자리를 보전합니다.
제이스테판과 세미콘라이트는 뉴화청국제여행사(유)와 함께 NHT컨소시엄을 설립해 카지노업체 마제스타에 투자했죠. 마제스타는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법 위반, 분식회계, 준민 제이스테판 대표의 배임 및 횡령 등으로 투자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죠.
결론적으로 루멘스와 유태경 대표에게서 경영권을 인수한 지케이티팜, 지케이티팜에 자금을 공급해 준 온다엔터테인먼트, 온다엔터테인먼트에 출자한 제이스테판, 케이비즈원, 플린스 그리고 여기에 관련된 인물들이 모두 이해관계를 함께 했던 셈입니다.
온성준씨가 자신이 실질 주주인 퓨전을 통해 세미콘라이트를 인수한 게 2019년 6월입니다. 에스엠씨홀딩스, 케이비즈원 그리고 조호걸씨에게 197억원의 인수대가를 지불하죠. 퓨전이 상장폐지되면서 에스엘홀딩스컴퍼니로 최대주주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실질 최대주주는 온성준씨였습니다. 사명은 에스엘바이오닉스(2021년), 에스엘에너지(2023년)로 바뀌었고요.
유태경 대표가 개인보유 지분을 매각한 후에도 루멘스는 세입자인 에스엘에너지 지분을 지난 2016년까지 보유했습니다. 경영권 지분 매각 후 7년동안 에스엘에너지는 루멘스의 관계기업이었죠. 그리고 지난해 루멘스에게 가장 중요한 유형자산인 본사와 공장의 부지와 건물을 에스엘에너지에게 매각하기로 한 겁니다.
유태경 루멘스 대표가 에스엘에너지를 기흥구로 이전까지 시키면서 루멘스 공장을 임차해 쓰게 한 것은 두 회사의 업종이 겹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루멘스는 LED와 LED모듈 등을 제조하는 LED전문업체이고 에스엘에너지는 LED칩 전문업체였습니다. 에스엘에너지와 루멘스는 수직계열의 관계에 있었던 셈이었죠. 제조라인을 나누어 쓸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루멘스가 본사와 공장을 매각하면서 이제 거꾸러 에스엘에너지에 세들어 살게 되었습니다. 두 회사의 입장이 뒤바뀐 것입니다. 대신 루멘스는 현금 417억원의 유동성이 생겼죠. 루멘스가 유형자산을 매각한 배경에는 심각한 부진에 빠진 사업이 있을 겁니다.
루멘스의 자산규모(연결기준)는 2018년까지 3000억원대였지만 올해 6월말 현재 1443억원으로 절반 미만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2016년 4000억원이 넘었던 매출은 지난해 1663억원으로 역시 절반 미만입니다. 2019년부터 4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최근 2년 영업흑자를 냈지만 각각 8억원과 12억원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습니다.
루멘스는 지난해 매입채무를 순상환하는 데 331억원의 거금을 썼습니다. 매출채권은 146억원을 순회수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에는 재고를 크게 줄였습니다. 재고자산과 외상매출을 줄여 운전자본 부담을 완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거꾸로 생각하면 더 이상 외형확대를 위한 외상매출과 생산량 증가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을지도 모릅니다. 원재료 등을 외상으로 사올만한 교섭력이 약화됐을 수도 있고 말이죠.
순차입금은 현금이 차입금보다 많은 마이너스 상태인데, 심각한 사업위기에 처한 기업이 사실상 무차입이라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더 이상 금융기관이나 시장을 통한 차입능력이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루멘스는 이제 현금과 금융상품(545억원)이 전체 자산(1443억원)의 3분의 1이 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유형자산의 장부가액이 117억원인데 대부분 해외에 있는 생산시설입니다. 나머지 자산은 대부분 매출채권(251억원)과 재고자산(365억원)입니다. 경쟁력이 크게 훼손된 LED사업 자체가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달초 루멘스의 최대주주인 장부상회사 루멘스홀딩스의 최대주주가 바뀌었습니다. 유경재씨가 자신의 지분을 루멘스 대표이사인 이경재씨에게 넘긴 겁니다. 루멘스에서 유경재씨가 엑시트를 한 셈이죠. 유경재씨만의 엑시트일지, 루멘스가 LED사업에서 탈출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루멘스의 LED공장을 인수한 에스엘에너지는 지난 4월 LED사업의 영업중단을 결정했습니다. 대신 우선코퍼레이션에서 인수한 우성인더스트리의 에너지사업부를 주력사업으로 삼기로 했죠. 우성인더스트리는 전라도 여수에 생산시설이 있습니다. 기흥에 있는 LED공장이 에너지사업에 활용하지 않는다면 순전히 임대용 공장이 되는 셈입니다. 누구를 위한 공장 매입이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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