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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임박한 지난해 12월초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태영건설의 정기 신용평가를 하면서 과도한 채무부담(PF우발채무 포함) 때문에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신용등급 하향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등급전망만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꾸는 최소한의 조치만 했죠. 계열사 매각 등을 통해 자금지원을 하겠다는 태영그룹의 입장과 향후 유입될 공사대금 등을 감안할 때 만기도래하는 PF채무와 자체 금융채무의 상환이나 만기연장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한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태영건설은 PF채무의 만기연장과 차환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죠.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합니다. 자체 채무와 PF우발채무에 대한 금융권의 강제적인 채무조정이 없이는 견디기 어렵다고 인정한 셈입니다.


신용평가사들의 조치는 상당히 유감입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건설사 PF채무가 유동성위험이 얼마나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지 경험한 게 한두번도 아닌데, 너무 느긋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워크아웃 신청 전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은 A-인데요. BBB+까지 한 단계만 더 떨어뜨렸어도 태영건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로도 사업철수와 자산매각 등으로 보다 빠르게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에는 위기 상황에서 태영그룹이 자금지원 등을 통해 구원투수로 나서줄 것이란 믿음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런 지원가능성을 빼면 BBB+였던 것죠. 최근 2년 동안 태영그룹은 이렇다할 지원을 태영건설에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초 티와이홀딩스가 4,000억원을 대여했지만, 글로벌 사모펀드 KKR에서 빌려온 걸 그대로 태영건설에 빌려준 것이었죠. 티와이홀딩스는 거쳐가는 정거장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연말 유동성위기가 고조되자 추가 지원 없이 바로 워크아웃을 신청했습니다.  사실상 발을 뺀 것이죠. 그룹의 지원 아래 채무상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용평가사들의 믿음이 빗나갔습니다.


워크아웃이 결정되기 전부터 감독당국과 금융권은 태영그룹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태영그룹이 내놓은 자구안에 대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남(채권단)이 뼈를 깎는 노력'이라며 오너일가의 티와이홀딩스 지분을 활용해 태영건설의 채무를 갚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태영건설을 살리고 싶으면 경영실패의 책임이 있는 오너의 뼈를 깎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입니다.


워크아웃 신청 전날 티와이홀딩스는 물류터미널 회사인 태영인더스티리 지분(40%)을 매각했습니다. 윤석민 회장(32.34%)와 자녀 윤재연씨(27.66%)의 지분도 함께 KKR이 투자한 중앙탱크터미널홀딩스㈜로 초 2400억원에 팔렸습니다. 같은 날 태영인더스트리는 중앙탱크터미널홀딩스를 대상으로 60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그 자금으로 티와이홀딩스가 보유한 평택싸이로 지분(37.5%)를 매입했습니다.



티와이홀딩스는 태영인더스티리 매각대금 1549억원(세후 기준)을 전액 태영건설 지원에 투입했다고 주장합니다.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중 회사분 960억원과 평택싸이로 매각대금(600억원) 중 양도소득세를 공제한 금액(1133억원)과 윤석민 회장의 지분매각 대금 중 양도소득세를 공제한 금액(416억원)으로 추정됩니다.


티와이홀딩스는 워크아웃 신청 다음 날 1133억원을 태영건설에 대여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400억원은 지난해말 태영건설 협력업체 공사대금 지급에 사용했고, 890억원은 티와이홀딩스에 청구된 태영건설 연대채무 중 리테일 채권 상환에 쓰였습니다. 나머지 259억언은 태영건설 사업장의 운영자금 등에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태영그룹이) 계열주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티와이홀딩스의 연대보증 채무 해소를 최우선시했다"며 워크아웃의 기본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1,549억원 중 890억원을 티와이홀딩스에 청구된 태영건설 연대채무 상환에 사용한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890억원이 사용된 곳은 태영건설의 개인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던 채권 상환입니다. 시각에 따라서는 태영건설에 대한 자금지원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대보증을 선 티와이홀딩스의 채무이기도 하죠.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모든 금융채무에 대해 지급이 유예되죠. 은행으로 구성된 채권단이 생각하는 워크아웃의 기본원칙은 개인투자자를 포함한 모든 채권자가 참여하는 공동의 채무조정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윤석민 회장의 자금 416억원은 티와이홀딩스에 대한 자본확충에 쓰였습니다. 티와이홀딩스가 자본으로 인정되는 416억원짜리 영구채를 발행하고, 윤석민 회장이 인수했죠. 채권단과는 윤 회장이 직접 태영건설에 투입하기로 했는데, 티와이홀딩스를 거쳐 지원한 것이죠. 이렇게 하면 티와이홀딩스는 그 만큼 자본이 늘어나게 되고, 티와이홀딩스는 나중에 윤 회장에게 영구채를 상환할 수 있습니다. 윤 회장에게는 아무런 손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태영그룹이 내세운 자구안은 ▲(태영건설) 보유 부동산/투자주식 담보제공 및 매각 ▲강도 높은 구조조정(감원, 비용절감, 재무구조 개선) ▲PF사업 재구조화 및 추진사업 조기안정화, 그리고 ▲티와이홀딩스의 계열사 에코비트, 블루원, 평택싸이로의 담보제공 및 매각이 골자입니다.


시장에서 '혹시?'하며 기대했던 SBS 매각은 하지 않는다고 이미 입장을 표명했고, 자구안에는 오너 일가가 경영책임을 지는 대목이 보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채권단이 의심하는 것처럼 태영건설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로 보내더라도 티와이홀딩스와 SBS를 지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금융감독원과 채권단의 요구대로 오너 일가가 티와이홀딩스 보유 지분을 양보하면, 사실상 태영그룹에 대한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SBS를 팔지 않겠다는 입장마저도 의미가 없어지죠. 티와이홀딩스와 SBS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오너 일가의 입장인 셈이죠.


오너 일가가 티와이홀딩스 지분을 포기하면, 채권단 동의 75% 이상이 필요한 워크아웃 절차에 힘이 실리게 되고, 워크아웃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SBS와 태영건설이 핵심인 그룹의 본체가 유지됩니다.  결국 오너를 살리느냐, 기업을 살리느냐를 놓고 채권단과 오너일가의 샅바싸움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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