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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인수 때와 달리 금호산업이 대한통운 인수의 주체로 나서지 않은 것에 대해 당시 금호그룹에서는 금호산업의 지주회사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금호산업이 금호리조트 지분을 대우건설과 아시아나항공에서 매입해 100%를 소유하게 된 것도 설명이 되기는 하죠.


금호산업은 대한통운 인수 직전에 4000억원 가량의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지주회사 조건을 맞추기 위해 부채비율을 200% 아래로 떨어뜨리려는 의도로 금호그룹도 밝혔고 외부에서도 그렇게 읽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대한통운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도 했었죠.


금호산업은 대한통운 인수주체로 나설 수 없는 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재읽사는 금호산업은 애초부터 대한통운 인수 주체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지주회사로서 몸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후 금호산업은 자금조달 능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1400억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1000억원 이상을 이자비용으로 토해내야 할 정도로 차입금이 무게가 무거웠습니다. 손익계산서 상으로는 이익이지만 현금흐름으로 보면 영업은 적자였습니다. 2007년에 698억원, 2008년에 633억원의 영업현금흐름 적자를 기록합니다.


이것도 매입채무를 최대한 늘린 게 그랬습니다. 2007년에 826억원, 2008년 외상값을 무려 2200억원이나 외상구매를 늘리지 않았다면, 영업현금흐름 적자는 각각 1500억원 이상, 3000억원 이상에 달했을 겁니다.



보유 현금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영업현금 적자 만으로도 금고는 텅텅 빌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걸 다시 채우려면 유상증자를 하든 차입을 하든 해야 했습니다. 금호산업은 2007년에는 계열사 주식을 팔아 부족한 현금을 메우고, 2008년에는 유상증자로 채웠습니다.


과도한 차입금이 금호산업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갚아야 할 차입금이 너무 많았습니다. 대우건설 인수에 앞서 2005~2006년 약 1조5000억원 가량 급증한 차입금은 서서히 금호산업을 목을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2008년초 2570억원의 유상증자(원래는 4000억원으로 계획했지만 주가 하락 등으로 증자 규모가 크게 감소)를 했지만, 영업현금 적자를 메우고 만기가 된 차입금을 상환하는데 일부 도움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저 잠시 숨을 돌리는 정도였을 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웬만한 자산은 담보로 잡혀 있어 자산을 활용한 자금조달 여력도 별로 없었습니다. 신용등급은 투자등급 중 가장 낮은 수준(BBB)에 턱걸이를 하고 있어 대규모 차입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앞두고 시장 상황마저 빠르게 경색이 되었으니 기존 채무를 차환하기에도 급급했을 겁니다.


2009년을 맞는 금호산업 자금담당자는 막막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가진 현금은 없지요. 장사에서는 돈을 까먹지요. 담보로 맡길 자산도 별로 없지요. 신용등급이 낮으니 사채 발행도 한계가 있지요…… 그런데 2009년 무려 1조원이 넘는 차입부채가 만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대우건설의 주가는 미끄럼틀을 타듯 죽죽 내려가면서 풋백옵션의 먹구름마저 몰려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면초가지요.



대한통운 인수 주체로 나서려면 최소 20% 정도의 지분을 책임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못해도 1조5000억원 정도는 필요했습니다. 자기 앞가림 하기도 급급한 금호산업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대우건설과 아시아나항공의 조합은 필연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시아나항공과 금호렌터카의 조합으로 대한통운 인수 컨소시엄을 구성하지요. 하지만 금호렌터카는 아시아나항공의 러닝메이트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고, 신용등급(BBB)이 낮았고, 비상장사였습니다. 약 3조원의 외부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는 조합이 아니었습니다.


대안은 대우건설 카드뿐이었을 겁니다. 대우건설에는 9000억원 가량의 현금성 자산이 있었고, 대우센터빌딩을 팔고도 5000억원이 넘는 유형자산이 있어 담보로 활용할 수 있었으며, 계열사 중 가장 높은 신용등급(A)을 지니고 있어서 대규모 차입이 가능했습니다.


걸림돌은 주주들의 반발이었습니다. 대우건설 인수 당시 박삼구 회장은 독립경영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1년도 안돼 대우센터빌딩을 팔아 자사주 소각으로 쓰면서 약속을 깨죠. 대한통운 인수에 대우건설을 활용하게 되면, 대우건설 주가 하락은 불 보듯 뻔한 일. 소액주주는 물론이고 대우건설 주식을 담보로 4조원을 지원한 재무적 투자자들이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실제로 한때 3만3000원까지 올랐던 대우건설 주가는 대한통운 인수에 공식적으로 나서면서 1만원대로 급락하고 말죠.


대한통운은 현금 지갑으로 이용될 운명이었습니다.


박삼구 회장이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한통운 인수에 반대했던 재무적 투자자들이 오히려 인수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태도를 바꿉니다. 아마도 대한통운 인수가 유상신주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니, 대부분 인수자금은 대한통운 내부에 유보될 것이고, 그 돈을 계열사 간 거래로 빼 쓰면 박삼구회장과 재무적 투자자들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을 누릴 수 있을 거라는 논리를 내세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금호산업을 위해서는 최선의 대안이었을 겁니다. 대우건설과 아시아나항공이 대규모 자금을 외부에서 차입해 대한통운 지분을 사게 되면,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금호산업은 대한통운에 쌓인 그 현금의 일부를 자산 매각 등을 통해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니까요.


실제로 금호산업은 대한통운이 인수한 해인 2008년에 한국복합물류 지분을 대한통운에 1205억원에 매각하는데, 장부가액보다 753억원을 더 받고 판 겁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금호렌터카 지분 100%(2552억원), 아시아나항공과 대우건설에서 사온 금호리조트 지분 50%(827억원 그리고 금호터미널 지분 100%(2191억원)을 대한통운에 넘겨, 이것 만으로 5600억원 가량의 현찰을 챙기게 됩니다. (지난 편에 썼던 그림을 재활용합니다)



2008년에 서브 프라임 사태가 금융시장에 닥쳐 오지 않았다면, 그로 인해 대우건설 주가가 급락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대우건설 풋백 옵션 리스크가 현실화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금호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넘길 수 있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한통운 인수 이후 금호그룹은 유동성위기에 빠집니다.


대한통운을 인수한지 얼마 안되어 금호그룹은 유동성 확보를 위한 대책을 발표(2008.7.31)하게 됩니다. 금호산업은 계열사 주식 등을 팔아 1조1500억원을, 아시아나항공은 계열사 주식 포함 비핵심자산을 매각해 1조5000억원을 마련하겠다고 시장에 공표합니다. 금호생명(현 KDB생명)지분이 공식적으로 시장에 매물로 나옵니다.



대한통운 유상감자도 유동성 확보 계획에 추가되지요. 이걸로 아시아나항공과 대우건설이 약 1조5000억원 정도의 현금을 나누어 갖게 되고요. 두 회사가 대한통운 인수에 들인 돈의 약 45% 정도 됩니다.


대우건설 풋백옵션 문제는 새로운 재무적 투자자들을 구해 넘길 계획이었습니다. 기존 재무적 투자자가 갖고 있는 39%의 지분과 금호그룹 계열사가 보유하던 약 4%의 지분을 새로운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2만3000원에 넘겨 출혈을 최소화하려고 했지요.


이런 계획을 짜던 2008년 8~10월 대우건설 주가는 이미 1만2000원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풋백옵션 행사가격(3만3000원~3만4000원)과 새로운 투자자를 모시는 가격의 차이를 금호그룹이 부담하는 동시에, 시장에서 사면 1만2000원짜리 주식을 2만3000원에 매입하는 것에 대한 보상까지 마련해 주어야 가능한 계획이었죠.



금호그룹의 자구안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위 표는 한국기업평가가 2008년 10월에 내놓은 자료(스페셜리포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M&A에 대한 점검')에서 인용한 것인데, 대우건설 재무적 투자자의 풋옵션이 100% 행사된다고 가정하고, 풋옵션 행사 시점의 주가가 당시의 주가 수준을 유지만 한다면, 금호그룹의 자산 매각이 장부가 수준에서만 이루어져도 풋옵션 문제를 해결하고 1조5590억원의 잉여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되었습니다.


하지만 운은 더 이상 따르지 않았습니다. 금호그룹의 자산 매각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대우건설 지분을 인수할 새로운 투자자는 확보되지 않았으며, 금호그룹은 다른 대안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가정은 그저 가정일 뿐입니다.


결론은 결국 2009년말의 워크아웃 신청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급박한 상황이 금호그룹에게 중요한 운명의 한 페이지이긴 합니다만, 이번 시리즈의 메인 스토리는 아니니 이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