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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이하 자본시장법)시행령 제176조의 5는 주권 상장법인이 다른 법인과 합병할 때 합병가액을 최근 1개월간 평균종가, 최근 1주일간 평균종가, 최근일 종가를 산술평균한 가격을 기준(이하 기준주가)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기산일은 합병을 위한 이사회결의일과 합병계약을 체결한 날 중 빠른 날입니다. 산술평균 가격에서 30%범위에서 할인하거나 할증할 수 있지만, 계열사간 합병의 경우에는 할인 또는 할증 가능 범위가 10%로 축소됩니다. 평균종가라 함은 매일의 종가를 거래량으로 가중평균해 구한 가격을 의미합니다.
아직 이사회의 합병결의가 있거나 합병계약이 체결된 것이 아니니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격을 산출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최근 3개월동안 주가는 9만9600원에서 12만6000원 사이에서 움직였죠. 그런데 현 주가는 SK이노베이션 장부상 주당 순자산(3월말 현재 23만6545원)에 비해도 크게 낮은 수준이죠. PBR이 0.5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자본시장법 176조의 5는 예외조항이 있습니다.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할 경우 상장사의 기준주가가 자산가치에 미달하는 경우 자산가치로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산가치가 장부상 순자산가치를 말하는지, 순자산의 공정가치를 말하는지는 규정에 없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장부가격으로 다른 회사와 합병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 순자산의 공정가치를 의미하는 것이 보는 것이 옳아 보입니다. 그러나 순자산의 공정가치를 매길 수 없으니 장부상 순자산과 비교한 것입니다.
이 글은 기업가치를 계산하기 위한 게 아니라 합병비율의 논리와 그안에 숨겨진 이슈를 점검하기 위해 작성되었을 뿐입니다. 불행히도 SK이노베이션의 순자산 공정가치를 알 방법은 현재로서 없고, 우리가 현 시점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격은 3월말 현재 장부상 주당순자산(BPS)인 23만6545원뿐인데요. 그런데 주가가 이보다 훨씬 낮잖아요. BPS가 합병가액이 되어도 SK이노베이션 주주는 엄청난 특혜를 받는 셈입니다. 주당 순자산의 공정가치가 BPS보다 크다면 이득의 크기는 더 커지겠죠.
기준주가가 자산가치에 미달할 경우 자산가치로 할 수 있다는 것이지, 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원칙은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지만 회사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SK이노베이션의 주가가 그동안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전보다 낮은 지금의 주가가 공정한 가격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시장을 부인하는 것이죠.
합병가액이 SK이노베이션 주주에게 유리한 자산가치로 결정된다면, 손해는 SK이엔에스 주주가 봅니다. 그런데 SK이엔에스의 주주는 사실상 100% 지분을 들고 있는 지주회사 SK㈜입니다. 어떤 식으로 손해를 볼까요? 합병을 하게 되면 SK㈜의 지분율이 현재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지분율보다 높아지는데, 그 상승 폭이 줄어듭니다. 이미 SK이노베이션 지분 34.5%를 보유하고 있는 SK㈜에게 지분율 상승폭 감소가 합병을 무산시킬만큼 중요할까요? 다른 주주들의 합병 동의를 최대한 이끌어 내야 하는 SK㈜는 자신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강하게 내세울 입장이 되지 못합니다.
자본시장법 176조의 5는 또 비상장사의 합병가액을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산술평균한 가액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소위 본질가치법이라고 부르는 방법인데, 자산가치를 1, 수익가치를 1.5로 가중평균합니다. 가령 주당 순자산이 100이고, 주당 수익가치도 200이면, 합병가액은 160이 되는 식입니다.
비상장사의 합병가액을 본질가치법으로 정할 때는 상대가치를 비교해 공시해야 합니다. 상대가치란 비상장사와 비슷한 업종을 영위하는 다른 상장법인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고, PER, PBR, EBITDA멀티플 등으로 표현되죠. 이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건 시가총액을 EBITDA로 나눈 EBITDA멀티플입니다. 상대가치법을 통해 합병가액을 산출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비교해 공시하라고 한 것은 아마도 비상장사의 합병가액이 지나치게 부풀려지거나 축소되어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비상장사의 자산가치는 장부가치가 아닌 공정가치를 의미합니다. 애석하게도 회사 자신이거나, 회사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외부평가기관이 아니면 알 수 없죠. 수익가치도 손익계산서에 나오는 영업이익이나 당기순이익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주당순이익(EPS) 따위로는 수익가치를 구할 수 없습니다. 향후 회사가 창출하게 될 잉여현금흐름을 구하고, 그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를 계산하면, 그게 수익가치가 되죠. 수익가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가정과 전제가 필요합니다. 가정과 전제 중 한두개만 바꾸어도 수익가치가 크게 달라질 수 있죠. 가정과 전제가 합당한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은 늘 논란을 몰고 다닙니다.
그래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의 잉여현금흐름과 그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만드는 할인율이라는 건데요. 그 할인율의 기준을 금리가 잡고 있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할인율이 높아지고, 금리가 내리면 할인율도 낮아집니다. 또 할인율이 높아지면 잉여현금흐름의 현재가치(즉, 기업가치)가 작아지고, 할인율이 낮아지면 기업가치가 커집니다.
SK이엔에스의 순자산 공정가치와 수익가치를 현재로서 알 수 없으니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건 역시 장부상 순자산과 장부에서 산출할 수 있는 잉여현금흐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벌써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과연 순자산과 잉여현금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SK이엔에스는 주력 사업들을 많은 자회사를 통해 영위합니다. 대부분 100% 자회사입니다. 순자산과 잉이현금흐름을 별도 재무제표가 아닌 연결재무제표에서 뽑아내야 마땅합니다. 올해 3월말 현재 SK이엔에스의 연결 재무제표상 순자산은 7조3880억원입니다. 그중 SK이엔에스 주주의 몫이 아닌 비지배지분을 차감하면 6조7902억원이 됩니다.
이 장부상 순자산이 SK이엔에스의 순자산 공정가치와 같다고 가정해 보죠. 6조7902억원의 순자산이 모두 보통주주의 몫이라면 주당 순자산은 6조7902억원을 발행주식 수로 나눈 14만6000원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SK이엔에스의 순자산에는 보통주주의 몫이 아닌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상환전환우선주의 주인인 KKR이 납입한 자본 3조1350억원과 신종자본증권 보유 채권자가 납입한 7300억원 등이죠. 이를 전부 제외한 순자산은 약 3조원에 불과합니다.
우선 상환전환우선주만 고려해 보겠습니다. SK이엔에스는 2021년에 2조4000억원, 2023년에 7350억원의 상환전환우선주를 발행했습니다. 보통주로 전환될 수도 있지만, 상환될 수도 있는 자본입니다. 만약 상환가능성이 매우 높은 우선주라면 순자산에서 빼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순자산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 옳을까요?
게다가 SK이엔에스가 조기상환기간이 되자마자 상환을 해도 그 금액이 4조6183억원(이전 기사 참고)이 됩니다. 상환시기를 늦추면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습니다. 사실상 상환이 확정되었다면, 상환전환우선주는 자본이 아닌 차입금입니다. 상환우선주를 차입금으로 본다면 최소 3조1350억원(실제로는 그 동안 늘어난 원금 때문에 더 큰 값이지만)을 순자산에서 차감해야 합니다.
상환전환우선주의 납입금을 자본으로 볼 것이냐, 차입금으로 볼 것이냐는 건 SK이엔에스의 순자산가치에 매우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또 차입금으로 본다면 상환시점이 늦어질수록 영향이 더욱 커지게 됩니다. SK이엔에스의 기업가치를 결정하는데, 상환전환우선주가 조기상환될 지 전환될지, 된다면 그 시기가 언제일지에 대한 전제 또는 가정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반영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결국 합병비율의 윤곽을 결정짓게 될 것입니다.
우선주를 들고 있는 KKR이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없으니 회계상으로는 차입금으로 분류하고 있지 않지만, 과연 SK이엔에스가 우선배당률 인상(3.99%→8.99%) 등 가혹한 조건을 감수하면서 상환전환우선주를 그대로 둘지 의문입니다. 그대로 두면 그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될 지도 모르는데요.
하지만 SK이엔에스는 자산가치를 평가할 때 상환전환우선주를 차입금으로 보지는 않을 것으로예상됩니다. 상환되기 전에는 엄연히 회계상 주식으로 분류가 되는데 자산가치에서 뺀다면 스스로 회계처리를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마치 당연한 것처럼 가정이나 전제를 두지도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SK이엔에스의 주당 순자산은 얼마가 될까요?
SK이엔에스 발행주식은 보통주 4640만1990주와 우선주 5,344,293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KKR이 전환권을 행사하면 우선주 1주는 보통주 2주로 전환되거든요. 우선주의 수를 보통주로 환산하면 1068만8586주가 됩니다. 보통주 가치는 약 11만9000원이 되고, 우선주 가치는 그 두배인 23만8000원이 되는 셈이죠.
그런데 우선주의 주당 가치에 주식 수를 곱하면 2조5439억원이 나옵니다. 우선주주가 납입한 3조1350억원에 미치지 못하죠. 그 차이는 보통주의 가치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현재의 장부상 순자산 수준에서는 보통주의 가치가 과대평가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신종자본증권을 알아보죠. SK이엔에스는 2019년과 2020년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이 각각 3300억원과 4000억원어치 있습니다. 발행금리가 각각 3.30%와 3.60%인 이 신종자본증권 발행액이 자본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 만큼 순자산을 늘리는 효과가 생기죠. 이 신종자본증권들은 발행 후 5년, 그러니까 올해 10월과 내년 7월이후 조기상환이 가능합니다. 합병 전에 상환이 되면 더 이상 변수가 되지 않겠지만, 상환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합병이 이루어진다면, 회사가 벌어들인 유보이익이 아니고, 채권자가 보유하고 있는 순자산인 셈인데, 이걸 주식가치에 포함하는 게 맞느냐는 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SK이엔에스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의 일부는 자산유동화를 거쳐 3개월짜리 단기사채로 변신해 시장에 유통 중입니다. 단기사채는 3개월마다 차환발행되는데, 그 최종 만기는 신종자본증권의 만기인 30년이 아니라, 조기상환이 가능해지는 시점인 5년입니다. 예로 미래에셋증권이 엠디프라임제삼차㈜라는 장부상회사에 SK이엔에스 신종자본증권 300억원을 양도한 후 유동화했는데, 그 최종 만기가 올해 10월입니다.
올해 10월이 되면 더 이상 단기사채는 발행되지 않고 장부상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데, 그 상환재원은 SK이엔에스가 신종자본증권을 갚아서 제공해야 마련됩니다. SK이엔에스가 신종자본증권을 올해 10월에 상환하지 않으면, 미래에셋증권이 장부상회사가 발행한 단기사채를 인수하는 부담을 떠안게 되죠. 미래에셋증권이 그걸 원할 리는 만무합니다.
신종자본증권을 회계에서 그렇든 자본으로 인정한다면, 보통주 1주의 가치를 1만2787원, 우선주의 가치를 2만5573원 증가시키는 효과를 냅니다. 그런데 이 신종자본증권은 합병을 한다고 해서 주인이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채권 보유자가 합병법인의 신종자본증권으로 바꾸어 가겠죠. 자본으로 인정을 해준다고는 해도 그게 보통주주의 것도, 우선주주의 것도 아니지 않나요? 그렇다면 합병비율에서도 제외하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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