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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할 때 비상장사 주식의 가치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평균해 평가하는데, 수익가치의 가중치가 1.5배입니다. 수익가치가 높을수록 비상장사 주식의 가치는 높게 평가됩니다. SK이엔에스는 SK그룹 안에서 현재 수익이 잘 나고 있는 몇 안되는 알짜회사로 통하죠. 자산가치보다 수익가치에 대한 기대가 높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언론들은 SK이엔에스가 지난해 11조원의 매출에 1조원의 순이익을 올린 회사라고 강조합니다.


기업의 수익창출능력을 의미하는 지표로 널리 쓰이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보면 SK이엔에스의 수익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1.8배인 1조8627억원(연결기준, 이하 같음), 2022년에는 무려 2조2251억원에 달합니다. 올들어서도 1분기에만 4500억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수익가치를 평가할 때 EBITDA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앞으로 창출할 잉여현금흐름을 추정하고, 그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를 구해 냅니다. 그 현재가치가 회사의 수익가치(주식의 수익가치가 아닙니다)가 됩니다. 여기에도 여러 가정과 변수가 존재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매년의 잉여현금흐름이 얼마나 되느냐일 것입니다.


미래 잉여현금흐름을 추정하는 일은 신용평가사나 회계법인 등의 외부 전문가가 하게 될 텐데요. 사실 추정을 위한 대부분 중요한 정보들은 회사측에서 제공하게 됩니다. 추정의 결과를 회사에서 어느 정도 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지금까지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미래 잉여현금흐름의 추정치가 그 회사의 과거 현금흐름에 비해 크게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추정이 낙관적인 시나리오로 이루어진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잉여현금흐름을 가장 간단하게 계산하는 방법은 영업활동 현금흐름에서 기업의 수익창출능력을유지하는데 필요한 자본적지출을 차감하는 것인데요. 이렇게 구한 SK이엔에스의 과거 잉여현금흐름은 우리의 기대를 크게 벗어납니다. . 매년 잉여(+)와 부족(-)를 오가는 것은 현금흐름의 특성상 그다지 이상할 게 없지만, 그 규모가 훨씬 적습니다.



지난 5년간 SK이엔에스의 연평균 잉여현금흐름은 (-)271억원 정도입니다. 평균적으로 매년 그 정도의 현금부족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입니다. 연평균 1조원가량의 영업활동 현금흐름을 창출했지만, 자본적지출 역시 1조원을 약간 상회했기 때문이죠. 자본적 지출은 최근 3년간 총 4조원에 달해 특히 많은 편에 속합니다. 2011~2022년 10년간 평균은 약 7500억원 수준이었죠.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이는 현금에 비해 설비투자 등에 들어가는 현금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최근 3년간은 특히 많았다는 걸 알 수 있죠. SK이엔에스가 최근 수년간 설비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왔던 모양입니다.


설비투자를 공격적으로 해 온 건 미래의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일텐데요.SK이엔에스의 지난 2년간 매출은 2017년 이전에 비해 100% 증가한 수준이거든요. 그간의 투자가 약발을 발휘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표한 성장에 도달하면 자본적 지출을 좀 줄일 수 있으려나요? 그럴 수 있다면 잉여현금흐름이 앞으로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네요. 이는 기업가치 상승에 큰 도움이 됩니다.


잉여현금흐름이 왜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일까요? 회사가 꼭 필요한 투자를 하고도 현금이 남아야 배당도 하고 이자도 줄 거잖아요. 잉여현금흐름이야 말로 주주와 채권자에게 돌아가는 몫입니다. 잉여현금이 사내에 쌓일수록 기업가치는 올라가고 어떤 이유로든 빠져나가면 그 만큼 기업의 가치는 낮아지게 되죠.


SK이엔에스는 설비투자 말고도 상당한 규모의 현금유출을 발생시키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주주에게 지급하는 배당금입니다. 2022년에는 4192억원, 지난해에는 7385억원의 배당이 이루어졌습니다. 연결 기준이 아닌 별도 기준, SK이엔에스만의 배당금 지급은 2022년 3858억원, 2023년에 6455억원(중간배당 146억원 포함)에 이릅니다.



SK이엔에스는 올해에도 최소 5270억원의 배당금 지급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주 1주당 8347원(총 3873억원), 우선주 1주당 2만6149원(총 1397억원)의 결산배당 결정이 이루어졌거든요. 10% 주주와의 TRS계약에 의해 보통주 배당금은 전액 SK㈜에 귀속되고, 우선주 배당금은 KKR이 가져갑니다.


 그런데 SK이엔에스는 현금흐름이 잉여(+)가 아닌 부족(-)이잖아요.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이는 현금으로는 배당금을 지급할 수가 없습니다. 배당금을 지급하면 그 만큼 회사의 현금 잔고가 줄게 되고 이를 채워 넣으려면 자산을 매각하거나 유상증자, 또는 차입을 해야 합니다. 게다가 설비투자뿐 아니라 지분투자도 꾸준히 하고 있어서 영업활동에서 생기는 현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죠.


그래서 2021년과 2023년 3조원이 넘는 우선주를 발행한 것은 물론이고 차입금도 많이 늘었습니다. 2020년부터 올해 3월말까지 순수하게 늘어난 차입금이 2조5000억원에 달합니다. 우선주와 차입금이 늘어나면, 우선주주와 채권자의 몫이 늘어나겠죠. 보통주의 가치가 증가하려면 회사의 가치가 늘어난 우선주주와 채권자의 몫 이상으로 커져야 하는 셈이죠.



SK이엔에스의 경우 우선주 발행과 차입금 증가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과도한 배당금 지급입니다. 잉여현금흐름이 발생하지 않는데 배당금이 대규모로 지급된다면 회사의 가치는 오히려 감소합니다. 배당금으로 빠진 현금을 차입금으로 대체한다면 회사의 가치는 회복될 수 있지만, 회복된 가치는 주주의 몫이 아닌 채권자의 몫이 됩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만으로 본다면 SK이엔에스는 잉여현금흐름이 부족하기 때문에 높은 수익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기 위해서는 현금흐름 창출능력이 훨씬 더 커지거나, 필요한 설비투자가 크게 줄어들 것이란 믿음이 필요하죠. 그럴 여지가 없다고 보지 않습니다.


잉여현금흐름을 과도한 배당금으로 전부 써버린다면, 기업가치 상승에는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차입금이 늘어날테고, 그로 인해 이자비용도 증가하겠죠. 이자비용으로 현금이 새게 되면 그 만큼 잉여현금흐름이 줄어들게 되죠.


그런데 SK이엔에스의 이자비용은 과소 측정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영업활동 현금흐름과 잉여현금흐름이 과대포장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3조1350억원 규모의 우선주와 73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때문이죠. 우선주는 그 형태가 주식이라서, 신종자본증권은 자본은 아니지만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고 있어서 SK이엔에스의 자본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선주에 대한 배당금과 신종자본증권 이자는 비용이 아닌 이익의 처분으로 처리되고 있죠.


SK이엔에스의 자본변동표에서는 매년 신종자본증권 이자가 253억원씩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주주의 몫이 사라지고 있죠. 신종자본증권이 자본으로 인정을 받아도, 그에 대한 이자는 주주가 아닌 신종자본증권 보유자에게 갑니다. 자본, 즉 주주의 몫이 줄죠.


KKR이 인수한 상환전환우선주는 우선배당률 3.99%를 매년 챙겨가고, 역시 그 만큼 자본이 줄어듭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배당이니 사실상 이자와 같습니다. 게다가 이 상환전환우선주는 원금에 가산되는 배당까지 포함하면 실제 금리는 7.5%와 9.5%에 달합니다. 진정한 보통주의 가치를 계산하고자 한다면, 이 상환전환우선주를 금리 7.5%와 9.5%짜리 차입금으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SK㈜가 갖고 있는 보통주의 가치가 과대평가되니까요.


신종자본증권 이자와 상환전환우선주에 대한 배당이 보통주의 가치를 높이지 않게 하려면, 잉여현금흐름에서 차감하면 됩니다. 신종자본증권과 상환전환우선주는 이자지급이나 상환순위에서 보통주주에 비해 선순위이기 때문에, 회사가 자본으로 분류를 했더라도 보통주주 입장에서는 차입금과 마찬가지거든요.



신종자본증권과 우선주를 차입금으로 보면, SK이엔에스 보통주의 가치가 훨씬 간단하게 계산이 되죠. 신종자본증권 연간 이자는 253억원이라고 했고, 상환전환우선주는 2조4000억원에 대해 7.5%, 나머지 7350억원에 대해 9.5%를 적용하면  대략 2500억원이 됩니다. 우선배당률 이외에 원금에 가산되는 배당이 매년의 현금흐름을 감소시키지 않지만, 어차피 조기상환시점에 뭉터기로 빠져나갈 테니 매년의 현금흐름에서 차감해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신종자본증권 이자와 상환전환우선주에 대한 배당, 연환산 약 2750억원을 잉여현금흐름에서 차감하고 안하고는 SK이엔에스 기업가치에 무시할 수 없는 차이를 만듭니다. 매년 2750억원의 잉여현금흐름이 영구적으로 발생하는 기업의 수익가치는 할인율 5%를 적용하면 5조5000억원이고, 할인율 10%를 적용하면 2조7500억원에 달합니다.


SK이엔에스의 향후 잉여현금흐름이 연간 2750억원 미만이면, 사실상 보통주주에게 귀속될 잉여현금은 없는 셈이죠. 그렇게 되면 보통주의 가치 역시 높게 평가받기 어렵고, SK이노베이션과 합병을 할 경우 합병비율이 SK㈜에게 유리하게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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