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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 형제(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은 분석대상에 포함하지 않음)의 실적이 좋아진 것은 분명합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이하 헬스케어)의 외부 매출이 증가했고 셀트리온의 현금흐름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도 헬스케어 현금흐름이 개선되었으니까요. 다만 충분한 실적인지 여부는 또 다른 판단이 필요합니다.
헬스케어의 독박을 덜어주기로 한 모양입니다.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은 올 들어 나타난 가장 큰 특징으로 셀트리온 계열 최고경영진이 헬스케어 독박 전략을 더 이상 고수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을 꼽습니다. 셀트리온에 실적과 현금흐름을 제공하고 헬스케어에는 자금조달의 책무와 막대한 재고부담을 안기는 극단적인 편애가 더는 투자자들의 눈을 가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셀트리온 편애가 완화된 증거는 헬스케어가 홀로 지던 재고 부담을 셀트리온이 나눠 지게 됐다는 것인데요. 단지 셀트리온의 재고가 늘었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좀 성급한 면이 있습니다. 셀트리온이 헬스케어에 넘기는 재고는 완제품 그리고 포장만 남겨둔 반제품인데 셀트리온의 재고 증가가 원재료나 가공중인 제품이라면 재읽사의 판단은 잘못된 것입니다.
셀트리온은 연결 기준으로만 재고자산의 구성을 반기보고서에 공시하고 있는데, 바이오의약품 사업부문과 케미컬 의약품 사업부문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바이오의약품 부문은 셀트리온이고, 케미컬 의약품 부문은 자회사인 셀트리온제약이겠죠? 바이오의약품 사업부문의 6월말 재고는 2213억원, 셀트리온(개별)의 재고는 2206억원. 얼추 맞네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바이오의약품 부문을 셀트리온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바이오의약품 사업부문의 재고는 2018년말 1264억원에서 6월말 2213억원으로 950억원가량 급증합니다. 그런데 이중 제품 및 상품의 재고 증가가 700억원이 약간 넘습니다 재고 증가의 대부분을 제품 및 상품이 차지한 것이죠? 셀트리온은 공장이고 헬스케어는 매장이니 헬스케어에 넘기는 재고는 재공품도 재료도 아닌 완제품이겠죠? (물론, 헬스케어는 포장이 되지 않은 채로 재고를 넘겨 받아 반제품이라고 분류를 하지만, 실제로 추가 가공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셀트리온 재고 증가는 헬스케어 분기 매출 물량입니다.
셀트리온이 재고를 늘리는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700억원의 완제품 재고는 헬스케어로 넘어갔을 겁니다. 제조원가에 마진을 붙여서 말이죠. 그럼 셀트리온의 매출이 또 그 만큼 커졌을 테고, 헬스케어의 재고자산 역시 그 만큼 커지겠죠.
셀트리온의 매출원가율은 약 36%. 셀트리온의 매출에는 제품 및 상품 말고도 약간의 용역매출과 기타 매출 등이 있어서 제품 및 상품 만의 원가율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만, 셀트리온이 매출 구성을 공시하고 있지 않아 정확한 원가율을 구할 수 없는 데다, 설사 구한다고 해도 전체 매출원가율과 거의 차이가 없을 테니, 제품 및 상품의 원가율을 36%라고 해도 대세에 지장이 없습니다.
700억원이 원가인 완제품을 헬스케어에 넘긴다면, 이전가격은 대략 1940억원이 됩니다. 와우! 상당한 규모네요. 셀트리온의 2분기 총 매출이 1960억원이거든요. 700억원의 재고는 셀트리온에게 분기 매출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700억원이 원가인 완제품을 장부상으로 헬스케어로 넘기면, 셀트리온의 매출은 상반기 3883억원이 아니라 5823억원이 되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셀트리온의 상반기 매출 실적은 공시된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가 아니라 29% 급증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게 되었겠네요.
헬스케어의 재고자산은 6월말 현재 1조6288억원입니다. 그런데 셀트리온이 700억원만큼 완제품 재고를 늘리지 않고, 그 재고를 헬스케어에 넘겼다면 헬스케어의 재고자산은 1조8228억원이 됩니다. 역대 최고 수준이고요. 연간 기준 최대를 기록했던 2017년(9209억원)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해도 2배 수준이 됩니다. 언론들이 집중 보도하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겠죠?
진정한 이슈는 헬스케어 독박이 아니라 재고자산입니다.
셀트리온 형제의 진정한 이슈는, 셀트리온이 혜택을 보고 헬스케어가 독박을 쓰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두 회사 각각의 주주들의 이슈인 것이고요. 두 회사가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회사라는 전제에서만 의미가 있는 이슈입니다. 막말로 헬스케어가 독박을 쓰다 망해도 셀트리온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 있어야 이슈가 되는 겁니다.
두 회사가 완전히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상당한 정도로 공동 운명체라면, 관점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가령, 셀트리온과 헬스케어가 지금 상태 그대로 합병을 했다고 치면, 회계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셀트리온과 헬스케어는 서로 연결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실상 하나의 사업을 두 회사가 나누어 하고 있습니다. 셀트리온은 만들고, 헬스케어는 팔고 있죠. 셀트리온은 공장이고, 헬스케어는 매장입니다. 사업의 측면으로 보면 두 회사가 합쳐야 하나의 실체가 됩니다.
두 회사를 묶은 하나의 실체를 상상해 보면 위 그림과 같습니다. 큰 원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외부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외부 고객에게 매출이 일어나지 않는 한 큰 원으로 표현된 하나의 실체는 어떤 수익도 얻지 못하는 것이죠. 그 실체를 '셀트리온 합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700억원의 재고자산을 셀트리온에서 보유하고 있으나, 마진을 더해 1940억원에 헬스케어로 이관하나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회계적으로는 사상 최대 매출이 될 수 있었던 셀트리온 매출을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바꾸어 놓았고, 연간 매출의 2배에 달할 뻔한 헬스케어의 재고자산 숫자를 낮춰 놓는 상당한 효과를 만들어 냈지만, '셀트리온 합체'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효과가 됩니다.
셀트리온의 매출은 의미가 없습니다. 외부 매출이 아니기 때문이죠. 셀트리온의 매출채권 역시 의미가 사라집니다. 헬스케어에 대한 채권이니까요. 셀트리온 합체의 매출은 헬스케어의 매출이 됩니다. 매출채권도 헬스케어의 것만이 인정됩니다.
셀트리온 '합체'의 재고는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그리고 재고자산은, 외부로 팔리지 않는 한 셀트리온에 있으나, 헬스케어에 있으나 차이가 없습니다. 셀트리온의 700억원과 헬스케어의 1940억원은 같은 의미를 갖는 숫자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재고자산이 매출에 비해 적은 지 많은 지의 여부는 헬스케어의 매출과 헬스케어의 재고자산을 비교할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셀트리온의 재고를 포함시켜야 합니다.
비교를 위해 셀트리온의 매출원가율을 적용해 셀트리온의 재고자산을 헬스케어에 이전됐을 경우의 금액으로 바꾸어 봅니다.
셀트리온의 6월말 재고자산 2206억원은 헬스케어 재고자산 6072억원과 맞먹는 가치를 가집니다. 이 정도면 헬스케어의 반년치 매출을 1000억원가량 웃도는 분량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게 아주 정확한 수치는 아닙니다. 매출원가율을 제품 및 상품만의 매출과 원가를 비교해서 산출한 것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이제 이 금액을 헬스케어 재고자산과 더한 뒤 매출액과 비교해 봅니다. '셀트리온 합체'의 6월말 재고자산은 약 2조2000억원에 이릅니다(이 수치는 두 기업을 연결했을 경우 재고자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헬스케어의 재고부담을 가늠하기 위해 헬스케어 입장에서의 재고 수준으로 변환한 것입니다). 2분기 연속으로 증가하고 있고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헬스케어의 올해 매출이 상반기의 두배인 1조원이라고 가정하면 2.2년을 조금 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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