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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7월 17일 계열 내 비상장사인 에스케이이엔에스의 흡수합병을 결정했습니다. 에스케이온은 도시가스업 지주회사로 출범해 전력 및 집단에너지, LNG, 수소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한 ㈜SK의 자회사였죠. 중간지주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출범한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막대한 투자자금 소요로 재무적인 측면의 압박이 심한 상황이었습니다.
SK온의 출범은 SK이노베이션 소그룹의 많은 재무지표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무엇보다 차입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2020년말에 15조원 미만이던 것이 2023년에는 이미 30조원을 돌파했고, 지난해 6월말에는 34조원에 달했습니다. 배터리 제조설비에 대한 막대한 투자 때문이었습니다.

SK이노베이션 소그룹이 2023년에 집행한 유∙무형자산 투자(이하 설비투자)가 약 11조5000억원에 달합니다. SK온이 물적분할되던 2021년의 3배에 육박하는 규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 SK온과 그 자회사들의 설비투자가 9조8000억원으로 85%를 차지했습니다.
SK온의 설비투자는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배터리 매출은 매년 빠르게 늘었지만, 규모의 경제에는 도달하지 못해 영업이익이 적자를 지속하고 있었고 배터리 영업으로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았습니다.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하면서 약 3조원의 현금을 쥐고 독립했지만 설비투자를 감안하지 않고도 2년 만에 전부 소진되고 말았죠.

대규모 자금조달이 불가피했던 SK온은 2022년에 6조원가량을 순차입하고 2조9000억원가량의 유상증자를 단행했습니다. 2023년에도 5조7000억원의 순차입과 6조4000억원가량 유상증자가 이루어졌습니다. 2024년 상반기에도 2조8000억원이 넘는 순차입과 1조7600억원 정도의 증자가 이루어졌습니다.
SK온의 2024년 6월말 현재 차입금은 약 20조원. SK이노베이션 소그룹의 총 차입금 34조원의 거의 3분의 2에 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SK온의 채무 중에는 모회사에 대한 것도 2조2000억원가량 있었습니다. 대부분 유상증자는 Pre-IPO 성격으로 이루어져 재무적 투자자가 참여했지만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 역시 SK온에 2023년 1월에 2조원의 출자에 참여해야 했고, 이를 위해 스스로도 1조1000억원 상당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공모 방식의 유상증자에 나섰죠. 2024년에 이루어진 유상증자는 투자자와 SK이노베이션 사이에 주가수익스왑(PRS) 계약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SK이노베이션이 실질적인 부담을 지는 것이었습니다.
SK온의 2024년 상반기 실적은 최악이었습니다. 매출은 전년의 연간 매출액 약 13조원의 4분의 1이 되지 않는 3조2000억원대에 머물렀고 공장 가동률은 50%를 밑돌았습니다. SK온은 배터리 매출이 급격히 줄자 공장을 돌리는 대신 재고를 소진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연말 결산시 대규모 적자는 불가피해 보였고 재무구조는 악화일로일 것이 뻔했습니다. 그 영향은 상장사인 모기업 SK이노베이션의 연결 재무제표에도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었습니다.
SK온은 재무적 투자자들과 약속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적격 기업공개(Qualified IPO)라고 하는 것인데, 2026년 내에 약속한 시장가치로 IPO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재무적 투자자들이 SK이노베이션의 보유주식까지 함께 매각(drag-along)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고, 최악이 경우 SK온에 주식을 되사달라는 풋옵션을 행사할 수도 있었습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7월 17일 SK이노베이션과 SK온 모자 회사에서 각각 이사회가 열리고, SK이노베이션은 SK이엔에스의 흡수합병을, SK온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의 흡수방병을 결정합니다. SK엔텀은 3개월 전 SK이노베이션의 또 다른 자회사 SK에너지에서 인적분할한 회사였죠. SK이엔에스는 기술한 바와 같이 발전과 도시가스를 주업으로 하는 회사로 SK이노베이션의 어떤 자회사와도 사업적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은 각각 석유와 석유화학제품의 입출하 관리와 탱크터미널을 운영하는 회사로 역시 사업적인 측면에서 SK온과 결합의 이유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재무적으로는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죠. SK엔텀을 흡수합병하면 SK온의 순자산이 약 9000억원가량(2024년 1분기말 별도 재무제표 기준) 증가할 것이었고, 영업이익은 119억원, 순이익은 95억원(2024년 1분기 별도 재무제표 기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합병으로는 순자산 6700억원(2023년말 별도 재무제표 기준)과 영업이익 3800억원, 순이익 4011억원(이상 2023년 별도 재무제표 기준)의 증가 효과가 있었습니다. 재무구조나 손익 측면에서 SK온에게는 긴급 수혈이 이루어지는 셈이었죠.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은 SK이노베이션이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였습니다. SK온 역시 자회사이니 자회사끼리 합병을 한다고 해서 연결 재무제표상 SK이노베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SK엔무브와 함께 SK이노베이션의 소중한 배당금 보따리였거든요.
순수 지주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현금흐름은 주로 자회사가 지급하는 배당금에서 나왔는데, 2023년 기준으로 연간 약 1조2000억원이었습니다. 이 중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이 지급한 배당금이 무려 8000억원에 달했습니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이 배당 지급을 하지 않았던 2022년에는 SK이노베이션의 배당금수입이 2794억원에 그쳤습니다. 2019~2021년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이 지급한 배당금은 총 9500억원이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필요할 때마다 배당금으로 현금을 가져올 수 있었던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아픈 손가락인 SK온에 통째로 주었던 셈입니다.
그룹의 지주회사 ㈜SK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잃은 SK이노베이션을 위해 보상을 준비했습니다. 사실상 100% 지분을 보유한(10%는 TRS 계약) 자회사 SK이엔에스를 SK이노베이션에 흡수합병시키기로 한 것입니다. 캐시카우인 도시가스 자회사들을 거느린 SK이엔에스는 연간 매출액이 11조원에 이르고, 1조원대의 순이익(2023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고금리 차입금인 상환전환우선주와 신종자본증권 때문에 상당한 이자와 배당금 지출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의 빈 자리를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SK이엔에스를 SK이노베이션에 주고 나면 이번에는 ㈜SK에게 문제가 생기게 되죠.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이 SK이노베이션에 그렇듯이, SK이엔에스는 ㈜SK에게 중요한 수입원이었거든요. SK이엔에스는 브랜드사용료와 경영자문 등으로 연간 200억원가량을 ㈜SK에게 지급했고, 배당금으로 2023년 기준 4816억원의 현금을 제공했습니다. 상환전환우선주가 없었다면 연간 6000억원 이상의 배당금을 가져올 수 있는 자금줄이었습니다. ㈜SK가 2023년에 자회사 등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1조3000억원 정도였고, SK이엔에스에 대한 배당의존도는 37%에 달했습니다. SK온을 구하기 위해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준 SK인베이션의 구멍을 SK이엔에스로 막았더니, 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 ㈜SK에 큰 구멍이 생긴 꼴입니다.
㈜SK는 지난해 12월 특수가스 세계 1위 업체인 100% 자회사 SK스페셜티의 지분 85%를 사모펀드 회사 한앤컴퍼니에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매각 목적이 재무구조 개선과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투자재원 확보라고 했죠. 올해 6월 처분이 이루어지면 2조 7000억원의 현금이 ㈜SK에 유입될 예정입니다. 추가로 언 아웃(Earn Out) 조항에 따라 올해 SK스페셜티의 실적과 신사업 매출여부에 따라 최대 1500억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SK이엔에스에서 5~6년동안 받을 수 있는 배당금 총액에 해당하는 현금이 ㈜SK에 들어오게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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