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슈넬생명과학이 청계제약을 판 돈으로 동양텔레콤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하고, 동양텔레콤은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한 자금으로 줄기세포 회사인 미래생명공학연구소를 인수하는 거래가 추진되던 2012년 2월, 김재섭 회장 부부는 제넥셀세인의 경영권 지분을 한국기술산업에 220억원에 매각한 거래와 관련해 약 98억원의 증여세 부과 처분을 받습니다. 김회장 부부는 국세심판원에 증여세 부과처분에 대한 취소청구신청을 제기하는 한편 김회장 소유 슈넬생명과학 주식 400만주를 담보로 설정하고 징수유예를 승인 받습니다. 마침 김회장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받은 보통주 약 280만주의 보호예수가 만료되죠.
그해 6월 슈넬생명과학은 100% 무상증자를 결정합니다. 자본잉여금 중 주식발행초과금 265억원을 자본금에 편입하고 주주들에게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 529민주를 나눠 주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무상증자 결정 1주일 후 슈넬생명과학의 최대주주 지분과 자회사 매각이 추진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슈넬생명과학이 매각 추진이 사실이라고 인정합니다.
매각하는 자회사는 에이프로젠이었습니다. 보유 주식을 전부 파는 것은 아니었고, 약 1200만주(지분율 33%) 중 약 800만주(22%)를 160억원에 팔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매각 후 지분율이 11%로 떨어지게 되었죠. 게다가 김재섭 대표가 슈넬생명과학 지분을 매각한다고 하니 투자자들이 크게 놀랐을 겁니다.
핵심 자회사 매각 소식에 슈넬생명과학 주가가 며칠 연속으로 급락합니다. 김재섭 회장도 지분 매각을 한다고 했으니, 슈넬생명과학 일반주주 입장에서는 선장도 잃고 엔진도 잃는 것처럼 느껴졌을 지도 모릅니다. 김재섭 회장 부부는 실제로 지분 매각을 단행합니다. 무상증자로 부부가 보유한 주식은 약 2340만주(지분율 23%)에 달했는데 그 대부분인 1600만주를 박웅기외 6인에게 주당 1000원씩 쳐서 160억원에 처분합니다. 김재섭 부부의 지분율은 6.84%로 크게 떨어집니다.
김재섭 부부의 지분 매각 거래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습니다. 슈넬생명과학 주가는 무상증자와 주가하락으로 600원대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재섭회장 부부는 주당 1000원씩 받고 팔았습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어 비싸게 팔았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지분 매각이 다수를 상대로 이루어지면서 김재섭 대표는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매수인들은 경영권이 없는 주식을 장내에서 600원대에 사지 않고, 김재섭 회장 부부에게서 1000원에 산 겁니다. 단지 주식을 사고 파는 거래라면 그럴 이유가 없었겠죠?
김재섭 회장 부부가 주식을 처분한 건 개인적인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서라고 회사측은 밝힙니다. 슈넬생명과학 지분 취득 등을 위해 차입했던 채무였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김재섭 회장 부부가 거액의 증여서 부과처분을 받으면서 채권자들이 불안해졌을 지 모르죠.

김재섭 회장은 지분 매각으로 약화된 경영권을 보완하기 위해 에이프로젠을 동원했습니다. 에이프로젠이 약 40억원을 들여 슈넬생명과학 주식 약 400만주를 매입해 지분율을 4.03%까지 끌어올렸죠. 이로 인해 김재섭 회장측의 지분율은 10.78%까지 높아졌습니다.
슈넬생명과학이 보유 지분의 67%를 팔았지만 에이프로젠에 대한 김재섭회장의 지배력은 여전했습니다. 김회장과 특수관계자가 22.1%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전략적 파트너 관계에 있던 일본의 닛코제약이 44.9%의 지분율로 뒤를 받치고 있었거든요. 슈넬생명과학의 지분을 사간 곳은 CDMO회사인 바이넥스였으니,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협력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슈넬생명과학은 에이프로젠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160억원 중 90억원을 청계제약 영업양수 자금으로 사용합니다. 동양텔레콤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하기 위해 팔았다가 담보권 행사로 되찾아온 후 영업양수를 한 것이었습니다.
에이프로젠은 2011년에 닛코제약을 주주로 받아들이고 슈넬생명과학의 추가 출자가 이루어지면서 약 400억원의 증자가 이루어졌고, 2012년에는 단·장기 차입으로 117억원을 조달했습니다. 토지 등 유형자산 취득에 200억원 정도 들어간 걸 제외하면 그런데 딱히 이렇다하게 쓴 게 없습니다. 단기금융상품이 103억가량 늘었고, 대여금(임원)으로 83억원이 나갔습니다. 그 밖에 슈넬생명과학 지분 등 유가증권 매입에 52억원 정도 썼습니다. 매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연구개발업체이니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대규모 자금조달의 명분으로는 좀 약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에이프로젠이 매입한 주식 중에는 슈넬생명과학 외에 눈에 띄는 회사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였습니다. 자본금 1000만원짜리 100% 자회사로 설립되었죠. 바로 한국슈넬제약의 신주인수권부사채 170억원어치를 인수한 팝인베스트먼트를 흡수합병한 회사입니다. 팝인베스트먼트가 아이벤트러스로 이름을 바꾸었고,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가 아이벤트러스를 흡수합병했는데, 합병 후 아이벤트러스를 새 이름으로 쓰고 있죠.
개인채무 상환을 위해 일부 지분을 매각한 후에도 김재섭 회장 부부의 지분매각은 여전히 추진 중이었습니다. 실제로 2012년 12월에 김재섭 회장은 슈넬생명과학 보통주 700만주와 경영권을 180억원에 자원재생업체 케이앤텍코리아로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합니다. 하지만 얼마 못가 계약해지가 됩니다. 케이앤텍코리아는 전체 자산규모가 40억원인 회사였습니다. 계약 체결 당시부터 인수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컸습니다. 결국 중도금이 정해진 날짜에 치러지지 않았고, 매도자인 김재섭 회장이 계약해지를 통보합니다.

케이앤텍코리아는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지낸 탁병오씨가 대표이자 최대주주인 회사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 대표인 이상기 대표와 친인척이 90%의 지분을 보유하던 회사인데, 이상기 대표와 호형호제한는 사이였던 탁병오씨가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에 등극했죠.
김재섭 회장의 지분 매각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슈넬생명과학은 2010년 경매를 통해 104억원에 취득했던 경기도 안산 공장을 154억원에 처분하고 화성시 양감면에 있는 청계제약 공장을 약 74억원에 취득합니다. 화성 공장 부지는 안산 공장의 부지보다 넓었지만, 공장 자체의 면적은 훨씬 좁았습니다.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던 슈넬생명과학의 유동성 확보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김재섭 회장의 지분 매각도 지체 없이 다시 추진됩니다. 2013년 2월 보유주식 700만주와 경영권을 220억원에 지와이엠1호조합으로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하죠. 그런데 이 계약도 중도 해지됩니다. 지와이엠1호조합이 계약금과 잔금을 지급할 의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죠.

김재섭 회장의 지분매각 소식이 들려오면 슈넬생명과학의 주가는 급등했습니다. 매각이 불발됐다는 소식에는 주가가 급락했죠. 그걸 불과 3개월만에 두 번이나 반복한 겁니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최대주주가 경영권 지분을 매각하는데, 상대가 매수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걸까요? 그것도 두번이나? 당시 보도에 따르면 김재섭 회장은 지와이엠1호조합에 대해 “국내 굴지의 대기업 오너가 지분을 출자한 투자조합”이라며 “지분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이후 주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합니다. 액면가 500원을 밑돌게 됩니다. 슈넬생명과학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한 팝인베스트먼트는 신주인수권을 김재섭 회장 부부에게 팔았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그 신주인수권의 행사가격도 시가하락에 따라 액면가인 500원까지 낮아졌죠. 김재섭 회장 부부는 신주인수권 중 일부는 지분 취득에 사용했고 나머지는 처분했는데, 그 신주인수권을 사들인 투자자 중 최소한 일부는 가장 낮은 가격에 주식을 취득할 기회를 갖게 되었죠.
슈넬생명과학의 최대주주는 결국 바뀝니다. 그런데 김재섭 회장의 지분 매각 때문이 아닙니다. 김재섭 회장이 실질적인 소유자인 에이프로젠이 주당 500원에 1000만주를 제3자배정 유상증자로 출자하면서 2013년 10월 최대주주에 올라섭니다.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에 쓰여야 할 에이프로젠의 자금이 슈넬생명과학 지분 취득에 사용됐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김재섭 회장은 대표 자리에서도 물러납니다. 형인 김정출씨가 그 자리를 이어받죠. 하지만 지분매각을 추진하던 김재섭 회장의 실질 지분율은 에이프로젠의 유상증자로 더 높아졌습니다. 특수관계자 포함 지분율이 10.16%에서 16.58%가 되거든요. 슈넬생명과학의 실적은 전년에 이어 대규모 적자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이 제작하는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DRCR(주)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