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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에너지의 실적 부진에 대해 시장에서 '태양광 시장의 극심한 불황'이 근본적인 원인인 것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건 좀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풀고 가고자 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양광 관련 제품들의 가격이 급락한 것은 맞지만 시장이 불황인 것이 아니고 태양광업체들이 극심한 치킨게임을 한 것이라고 보아야 옳습니다. 웅진에너지는 결과적으로 패자로 분류될 상황에 처한 것이지요.


◇태양광 시장의 환경은 웅진에너지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지 않았습니다.


태양광시장은 2016년 이후 2차 성장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덕분에 웅진에너지도 2017년 흑자전환을 하면서 미국 썬파워(SunPower)와 결별 이후 6년 간의 밑바닥 생활을 끝내는가 싶었죠. 


지난해 크게 이슈가 된 대로 중국 정부가 5월말 태양광 발전에 대해 갑자기 예산 부족을 이유로 보조금 삭감 조치를 하면서 시장이 크게 출렁입니다. 중국의 조치는 사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셀(태양전지)와 모듈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표한 데 따른 대응이었습니다. 트럼프 정부의 세이프가드는 중국 업체들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그에 대해 역공을 한 셈이죠.


중국은 전세계 태양광 발전 신규 시설의 50%를 넘는 최대 시장입니다. 그런데 보조금을 삭감하고 신규 시설를 제한하니 태양광 발전의 가치 사슬(value chain)의 순서대로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전지-모듈-태양광발전의 모든 가격이 폭락할 수 밖에요. 특히 중국 내 태양광 관련 원재료와 소재업체들이 해외 수요처를 찾아 나서면서 경쟁이 격화돼 가격 하락을 주도합니다. 국내 한화케미칼이나 OCI같은 폴리실리콘업체가 직격탄을 맞지요.



그런데 하반기 들어 태양광 발전 시장은 오히려 살아납니다. 중국의 보조금 삭감으로 20% 이상 역성장할 것이라던 우려와 달리 신규설치 수요는 사상 처음으로 100GW를 돌파합니다. 각종 제품가격 하락이 중국 외 지역(인도나 유럽 등)에서 신규 수요의 촉매가 된 겁니다.


발전소의 신규 설치 수요가 살아났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비록 제품 가격이 하락했다고 하더라도 수요가 살아나면 출하(매출)가 가능해집니다. 매출이 가능해지면 돈이 돌게 되고 비록 이익을 내지는 못할지언정 회사는 돌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단결정 구조의 잉곳과 웨이퍼를 생산하는 웅진에너지는 제품가격 하락의 충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 있는 쪽에 있었습니다. 당연히 가격하락 압력도 덜했겠지요. 실제로 지난해 6월 한 달간 폴리실리콘 -25%, 셀 -23%, 모듈 -18% 등의 가격이 하락했는데, 웅진에너지가 주력으로 삼는 단결정 웨이퍼는 15% 하락하는데 그칩니다.


웅진에너지는 스스로 품질경쟁력과 원가경쟁력을 갖춘 선도기업으로 평가해 왔습니다. 그리고 구조적인 공급과잉이 빚어낸 치킨게임이 결과적으로 자신들에게 좋은 경영환경을 조성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거나, 투자자들을 세뇌시켜 왔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사업보고서나 투자설명서 영업보고서 등 회사의 각종 공시 자료에서 누누이 강조해 왔거든요.


웅진에너지는 자신들의 사업 영역인 단결정 잉곳과 웨이퍼 시장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 받고 있다며, 향후 10년 이내에 세계 웨이퍼 시장의 60% 이상을 단결정 제품이 점유할 것이라고 전망해 왔습니다. 특히 중국 정부의 보조금 삭감 조치가 촉발한 치킨게임에서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중국업체 중심의 다결정 웨이퍼 시장은 붕괴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회사의 판단이 맞았다면 업계 구조조정의 터널을 잘만 통과하고 나면 오롯이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판매를 늘리지 않은 걸까요, 늘리지 못한 걸까요?


그런데 웅진에너지는 지난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합니다. 2016년부터 애써서 생산설비를 증축해 놓고 스스로 가동률을 줄인 겁니다.



웅진에너지의 생산능력은 연간 2000MW 입니다. 전년의 1500MW에서 33% 늘렸지요. 그리고 3분기까지 가동률은 85% 이상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4분기에 시황악화로 가동률을 조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간으로는 55%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최근 가동률은 25% 라고 하는군요.


기업이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 생산량을 줄일 정도라면, 생산을 늘려 봐야 변동비에도 미치지 못할 경우여야 합니다. 물론 미래를 위해 전략적으로 일시적인 적자 확대를 감수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어떻게 하든 매출을 늘려서 적자를 줄이려고 하는 게 보통 아닌가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치킨게임의 법칙과도 좀 다릅니다. 공급과잉의 시장에서 중국의 다결정 웨이퍼 업체들이 붕괴될 처지에 놓였다면, 품질이 좋은 단결정 웨이퍼 시장의 선도업체를 자처하는 웅진에너지에게는 시장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일 것입니다. 다결정 업체들의 고객을 빼앗아서 매출을 늘리는 게 당장의 손실도 줄이고 향후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전략일 것 같습니다만……


고도의 경영 판단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웅진에너지는 생산시설을 늘려 놓고도 공장의 일부를 그냥 놀립니다. 가격하락으로 매출이 급감하는데 판매를 확대하지 않습니다. 5%가 넘던 단결정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지난해 4.4%로 떨어집니다.


이 지점에서 의심을 한번 해 봅니다. 혹시 판매를 늘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늘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산을 늘려 봐야 팔 곳이 없으니 공장을 놀린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웅진에너지는 주로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해 매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위 표는 웅진에너지의 주요 계약 중에서 매출 부분만 추려서 정리한 것입니다. 계약기간이 모두 지난해 말로 종료되었습니다. 연간 단위로 계약을 하더라도 연말이 다가오면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야 할 텐데, 1년 가까이 신규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2017년의 경우에는 월간 생산능력의 약 40% 정도를 고정 거래처에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60%는 월별로 들어오는 주문으로 소화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 간의 고정 거래처들과도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때 그때의 주문에 따라 그 만큼만 생산하고 판매하겠다는 뜻인 모양인데, 이와 같은 극단적인 축소경영이 치킨게임의 승자가 되기 위함일까요,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일까요.



웅진에너지의 대부분 매출은 이제 웨이퍼에서 발생하고, 웨이퍼 매출의 대부분은 내수시장에서 나옵니다. 내수 시장의 주요 고객은 신성이엔지, 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 한화큐셀 같은 곳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내수 고객들이 매입한 웅진에너지 웨이퍼는 총 600억원 정도로 전년 1200억원의 절반입니다. 웨이퍼 가격이 하락했다고 하더라도 매출 감소의 폭이 지나치게 큽니다.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습니다. 한영회계법인이 외부감사에서 유형자산에 대해 대규모 손상차손을 떨어야 한다고 한 것과 혹시 관련이 있을까요? 웅진에너지의 고객 기반에는 이상이 없는 걸까요?


2012년의 데자뷰?


웅진에너지는 웅진그룹이 미국의 태양광 업체인 썬파워(Sun Power)와 조인트벤처로 설립한 회사입니다. 2010년 상장되기 전에 썬파워 지분율이 40%를 넘었습니다.


두 회사 사이에는 합작에 대한 계약과 장기공급계약이 체결되어 있었습니다. 합작에 대한 계약은 웅진에너지가 상장을 하면 종료되는 것이었죠. 실제로 썬파워는 2010년 웅진에너지가 상장을 하자 보호예수기간이 끝난 2011년 보유 지분을 모조리 장내 매도해 버립니다.


당연히 주가가 급락하고, 시장에서 '썬파워와 결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집니다. 그러자 웅진에너지는 물론이고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언론들이 나서서 진화에 나서는데 '썬파워와 장기공급계약은 2016년까지 되어 있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장기공급계약은 웅진에너지가 썬파워에서 폴리실리콘을 공급받고, 이걸 원재료로 잉곳을 생산해 썬파워에 공급하는 두 가지 계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약에는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계약기간인데, 당초 계약기간은 2011년 끝나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분명히 2016년까지라고 여러 차례 공시도 했었는데, 2011년 계약을 연장했다고 한 걸 보면 계약 기간에 대해 쌍방 간에 유동적인 조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출에는 전혀 이상이 없을 것이라던 장담은 1년 뒤 거짓말로 드러납니다. 2011년에 2200억원에 달하던 잉곳 매출이 2012년에 650억원으로 거의 4분의 1토막이 나는데 결정적인 원인은 썬파워로의 매출 감소였습니다.


당시 웅진에너지의 잉곳 매출처는 썬파워가 사실상 유일했습니다. 2012년 1430억원의 매출 중 잉곳 매출이 45%, 웨이퍼가 55%인데, 잉곳 매출 650억원 중 648억원이 썬파워를 향한 것이었으니 다른 매출처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썬파워와 계약 조건이었습니다. 웅진에너지와 썬파워는 폴리실리콘 매입단가와 잉곳 공급단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약을 맺었지만, 수량에 대해서는 어떤 보장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썬파워가 웅진에너지보다 5% 이상 낮은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 생기면 협의를 거쳐 거래처를 바꿔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또 썬파워는 자신들이 공급한 폴리실리콘으로 생산한 웅진에너지의 잉곳을 매입해야 하는 의무는 있었지만 그 외에 썬파워가 계약을 위반하더라도 그로 인한 웅진에너지의 손해는 배상 받을 수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썬파워가 거래처를 바꾸어 버려도 웅진에너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당해야 하는 처지였던 겁니다. 이런 것도 계약이라고 할 수 있나 모르겠습니다.



웅진에너지는 이에 더해 장기 공급계약을 맺었던 다수의 고객들(신성홀딩스, 삼성SDI 등)과 2012년 일제히 계약 종료가 됩니다. 몇 개의 대규모 공급계약은 중도 해지됩니다. 고정 거래처를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당시에도 웅진에너지는 공급과잉에 따른 시황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장기계약보다는 월별 구매 주문(Purchase Order) 형태의 거래를 늘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 다음해인 2013년 산업은행으로부터 부실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됩니다.


썬파워의 지분 매각과 관련해서 당시 어떤 언론도 주목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회사 측에서도 당연히 입을 다물고 있었고요.


웅진에너지는 웅진그룹과 썬파워의 조인트벤처였으니 어느 일방이 자기 마음대로 지분을 매각할 수는 없습니다. 썬파워가 지분을 매각할 것에 대비해 웅진그룹은 우선매수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웅진에너지 상장 후 보호예수기간이 종료되자 썬파워는 웅진그룹에 지분을 매입할 것인지 타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보유 물량 전부를 장내에서 매도합니다. 웅진그룹이 지분 매입을 거부한 것이죠.


웅진그룹이 돈이 없었던 겁니다. 극동건설 인수에 거액을 썼는데, 대규모 차입금에 발목이 잡히고, 윤석금 회장은 개인 돈으로 서울저축은행을 인수해 단단히 물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결국은 애지중지하던 웅진코웨이까지 팔아야 하는 유동성위기에 몰려 있었던 것이죠.


지금은 웅진코웨이를 되사느라 여력이 없고 말이죠……


(지난 편에 공지한 것과 달리 한편을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기한이익 상실 등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