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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그룹이 매각을 공식화하면서 아시아나항공 주가가 급등하고 있습니다. 삼일회계법인에게서 한정의견을 받고 3000원대 초반으로 추락했던 종목이 M&A 이슈로 거의 3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을 보유한 주주는 지옥과 천당을 오간 기분이겠습니다.
부실 기업의 주가가 바닥까지 추락했다가 M&A를 재료로 급등하는 일은 낯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여러 가지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추락하는 주가에 놀라 주식을 내던졌던 주주가 땅을 치고 후회하는가 하면 급등하는 주식을 잡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마터면 크게 물릴 뻔 했던 종목에서 손해는커녕 상당한 투자수익까지 얻으며 탈출할 기회를 잡은 세력이 있습니다. 주가가 급등할 때는 늘 그렇듯이 개미들이 몰려 들게 마련이니, 물량을 넘기고 손을 털기에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장면은 익숙합니다. 대규모 거래와 함께 주가 차트에 나타났던 장대 양봉 다음에는 장대 음봉이 뒤따르고 거짓말처럼 거래가 자취를 감춥니다. 그리곤 새로운 주주를 환영하기 위한 무상 감자와 출자전환…
아시아나항공이야 설마 그렇게 되지 않겠지요? 국내에 둘 밖에 없는 국적 항공사로서 희소성이 있고, 언론들에 따르면 SK, 한화, 애경 등 대기업들이 군침을 흘리는 매물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부디, 멋 모르고 달려드는 개미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가 급등, 탈출 기회 잡은 큐캐피탈
큐캐피탈은 주가가 고공비행하는 아시아나항공에서 낙하산을 펼칠 모양입니다. 보유하고 있는 4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한다고 합니다. 이 전환사채는 지난해 4월 13일 총 1000억원 규모로 발행되었는데 큐캐피탈(정확히는 NH투자증권과 큐캐피탈이 운영하는 사모펀드)이 가장 많은 물량을 인수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유동성 압박 해소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했는데, 약정대로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 사실상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금호그룹 전체가 망할 처지였습니다. 신규 여신은 중지되고 기존 여신은 기한이익 상실이 되니까요.
(산업은행과 금호그룹이 맺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금호그룹이 약정대로 모든 자구계획을 이행했을까요? 약정 기간은 이미 지났습니다. 자구계획을 이행한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라면 약정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지요.)
회사채 공모 시장에서는 이미 퇴출된 상태였기 때문에 돈 되는 자산을 내다 팔고 사모 투자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대우건설 지분은 2017년말에 이미 팔았고, 지난해에는 대한통운 지분을 3월(935억원)과 6월(638억원)에 모두 매각합니다. 5월에는 금호사옥㈜가 소유하던 금호아시아나 본관을 처분(4180억원)합니다. 3억 달러 규모로 외화 영구채를 발행하려다 9.5%에 달하는 금리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모집 실패로 무산됩니다. 11월에는 아시아나IDT를 상장하면서 구주 일부를 매도합니다.
전방위적으로 조달한 자금은 빚을 갚는데 쓰입니다. 지난해 전체적으로 4000억원 이상의 계열사 지분과 비영업 자산을 매각했는데 6000억원 가량의 차입금을 상환하는 데 고스란히 들어갔습니다.
매력 없는 전환사채, 무슨 생각으로 투자했을까?
이런 와중에 1000억원의 전환사채가 발행되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이 코너에 몰려 있는 상황이니 협상의 우위에 서는 쪽은 당연히 채권자가 될 수밖에요. 게다가 당시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액면가인 5000원 미만이었습니다. 액면가 미만을 전환가격으로 하는 전환사채는 발행이 불가능합니다. 사실상 당시 전환사채는 투자매력이 없었지요.
발행 후 1년이 지나면(올해 4월 13일부터) 언제라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조건이지만, 사채권자들은 주식으로의 전환보다는 원리금을 확실하게 회수하는 게 목표였을 겁니다. 그래선지 전환사채의 발행 조건은 마치 담보부사채와 닮아 있습니다.
우선 금리는 연복리 5%가 적용됩니다.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BBB-)으로 5년 만기 일반사채를 발행하면 9% 이상을 줘야 했겠지만, 전환사채와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이 전환사채는 2년이 지나면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풋옵션(put option)이 채권자에게 있습니다. 실질만기는 2년으로 봐야겠죠.
여기에 전환사채로는 이례적으로 담보까지 제공했습니다. 당시 매각이 진행 중이던 금호아시아나 본관의 명목상의 소유자인 금호사옥㈜ 지분을 담보로 잡히죠.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7일 국내 여객 카드(농협, 현대) 매출채권 1종 수익권과 예금담보(최대 120억원)로 전환사채의 담보로 다시 제공했습니다.)
아마, 전환사채 투자자들은 '여차하면 2년 후에 조기상환 받자'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담보까지 잡아 놨으니 원리금 회수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보았을 테고요. 설마하니 고작 1년 만에 사달이 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겠죠.
전환사채를 사들인 곳은 케이프투자증권(550억원)과 사모펀드들입니다. NH투자증권과 큐캐피탈이 운용하는 사모펀드가 400억원, 에이원자산운용과 아이온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사모펀드들이 각각 200억원과 300억원씩을 인수했죠.
솔직히 말해서 리스크관리가 정상적으로 되는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라면 CRO(리스크관리 최고책임자)가 아시아나항공 전환사채 인수를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렸을 겁니다. 1st 티어는 물론 2nd 티어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들이 인수자 명단에 전혀 없고, 하다못해 BBB급 채권에 목말라 하는 하이일드펀드조차 아시아나항공 전환사채를 거들떠 보지 않은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도라도 났다면 전환사채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전환사채는 아시아나항공이 3월21일 한정의견을 받았을 때 기한이익상실(EOD) 조건이 충족된 유일한 채권이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의 EOD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쓸 예정입니다) 그리고 전환사채 투자자들이 EOD를 선언했으면, 자동적으로 모든 차입금과 모든 사채가 기한이익 상실 조건을 충족하게 되죠. 만약 그랬다면 아시아나항공은 곧바로 부도로 직행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행히(?) 아시아나항공이 삼일회계법인의 주문대로 재무제표를 수정하고, 삼일회계법인이 감사의견을 '적정'으로 바꿔주면서 한숨을 돌리게 되죠. 전환사채 투자자들은 아시아나항공과 담보 교체를 조건으로 EOD를 선언하지 않았고요.
그런데, 전환사채 투자자들이 EOD를 선언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전환사채 발행 당시 금호사옥㈜ 지분을 담보로 받기는 했지만, 금호아시아나 본관 매각 대금을 수령할 때까지 조건부로 받은 것이었습니다. 매각 대금은 이미 수령했지만, 대부분의 현금과 금융상품은 사용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최근에 카드 매출채권과 예금 120억원을 담보로 받기 전에는 담보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는 어정쩡한 상태였을지 모릅니다.
설사 공개되지 않은 담보를 잡은 상태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시아나항공의 대부분 자산은 차입금에 대한 담보로 잡혀 있습니다. 보유 주식과 금융상품, 부동산, 유형자산, 심지어 재고자산까지도 말이죠. 이 자산들은 이 차입금, 저 차입금에 중복으로 담보가 들어가 있어서 담보권을 실행한다고 해도 언제 얼마나 회수될지 불확실했을 겁니다.
그래서 만약 아시아나항공이 채무불이행(부도) 상태가 되었다면 전환사채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게 되는 건 물론이고 운용사인 큐캐피탈, 에이원자산운용, 아이온자산운용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겁니다. 특히 초소형 운용사인 에이원자산운용과 아이온자산운용의 운명은……
두 자산운용사 대표를 더벨이 취재했네요. 더벨이 취재한 시점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공식화되기 전이라서 주가가 급락해 있을 때입니다. 풋옵션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특별히 리스크가 없다고도 하네요. 설마…… 립 서비스였겠죠? 사모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 불안할까 봐 태연한 척 한 것이겠죠?
풋옵션은 내년 4월에나 행사가 가능합니다. 아직 1년이 남았죠. 비록 한정의견이 적정의견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아시아나항공은 더 이상 자금조달이 불가능한 상태였고, 언제라도 기한이익상실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 한 단계만 내리면 그대로 3조원이 넘는 모든 차입금(사채 포함)이 기한이익상실 조건을 충족하니까요. 풋옵션이 있어서 괜찮다니요. 농담이 심하십니다. 대표님들.
케이프투자증권은 전환사채 계속 보유하겠다는데……
어쨌든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기대도 하지 않았던 전환권 행사가 가능해졌습니다. 주식으로 전환하면 현재 주가(8000원 상회) 기준으로 무려 60%의 투자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이 분들을 투자의 귀재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공중에서 외줄타기 하는 귀재입니다. 한번이라도 떨어지면 크게 다칩니다.
큐캐피탈이 주식 전환을 결정한 건 당연히 처분을 염두에 둔 것일 겁니다. 제대로 물릴 뻔한 투자인데, 갑자기 대박으로 돌변했으니 당연히 서둘러 처분해 현금화하는 게 순서일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처분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외부에서는 모르는 제약이 있을 수도 있고요. M&A 이슈를 타고 앞으로 주가가 더 오르지 않을까 기대를 할 지도 모르죠. 혹시라도 금호그룹이 경영권 지분을 매각할 때 전환사채가 전환한 주식을 묶어서 팔아주겠다고 약속했을 지도요(인수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래도 기회가 왔을 때 탈출하는 게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답입니다.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큐캐피탈이나 두 자산운용사는 주식으로 전환 후 서둘러 매각하고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이익금을 반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모펀드들은 3년 만기로 설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환사채 발행 후 2년이 되는 시점부터 조기상환을 고려해 정한 만기였을 겁니다.
아시아나항공 전환사채를 가장 많이 사들인 곳이 케이프투자증권이었지요. 놀랍게도 고객에게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유계정에서 투자목적으로 인수한 모양입니다. 언론에 따르면, 임태순 케이프투자증권 사장이 "아직은 평가이익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더 길게 보고 가겠다"고 했다는 군요. 증권사가 고유계정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소리지요. 게다가 안 팔겠다니, 임태순 사장 배짱(?)이 정말 두둑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식으로 전환은 하겠죠? 언제라도 팔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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