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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은 결손기업입니다. 2018년말 현재 결손금이 약 3000억원 정도 됩니다. 자본총계가 자본금 아래로 떨어져 부분 자본잠식 상태입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든, 장사는 잘 되는데 옆으로 새는 돈이 많아서 그렇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 동안 경영이 부실했습니다. 2014년에 자율협약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상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부에서는 마치 삼일회계법인이 '한정의견'을 주는 바람에 멀쩡하던 아시아나항공이 갑자기 유동성 위기에 몰린 것으로 오해하는(또는 오해를 조장하려는?) 분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지난 편에서 보았듯이,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더 이상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유동성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지난해 대주주에게 책임을 물었더라면 어땠을까?
산업은행과 맺은 재무구조개선 약정 때문에 돈이 될 만한 자산을 죄다 팔아 은행 빚을 갚았습니다.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들도 연장이 불가능해 족족 상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산 매각으로는 모자라 전환사채와 영구채 발행으로 부족한 걸 메웠습니다.
전환사채나 영구채 발행은 1차적인 자금조달 수단이 아닙니다. 신용등급(BBB-)이 모자라 채권 발행이 안되고, 주가가 액면가를 밑돌아 유상증자도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대안일 뿐입니다. 그나마 말이 전환사채/영구채이지, 주식으로 전환 기대는 거의 없어 보이는 전환사채에다 2년 이후에는 언제든 상환될 수 있는 영구채였으니 군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지난해 산업은행의 재무구조개선 약정이 다른 방식이었다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도 아닌 기업에 은행들이 채권을 출자전환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만기 연장이 불가능하고 유동성 위기에 민감한 시장성 차입금을 상환할 충분한 자금을 장기로 지원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공짜로는 안될 일이죠. 종국에는 대규모 신규 자본이 유입되어야 유동성 위기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실을 야기한 기존의 주인이 자리를 비워야겠지요. 대주주가 빈손으로(무상감자) 떠나면, 아시아나항공이 살아날 가능성은 수직 상승합니다.
이렇게 할 수 없어서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압박했을까요? 최근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1조6000억원이나 쏟아 부으면서까지 금호그룹의 지분을 비싸게 팔아주려고 하는 산업은행이니……
금호그룹 재건이 아시아나항공을 또 망쳤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최소한 장사가 안돼 망할 기업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항공업에서 시장지위가 하락하고 있는 와중이었지만, 비록 빚에 쪼들리는 바람에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먹고 살 만큼은 버는 기업이었습니다.
아니, 영업 면에서는 오히려 가장 실속이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저가항공사인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을 설립한 효과가 시너지로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이는 현금흐름은 자율협약 졸업 이후 빠르게 늘고 있었습니다. 노후화된 항공기 교체로 창사 이래 가장 많은 수준인 3000억원 이상의 자본적 지출을 영업에서 벌어들이는 현금흐름으로 충분히 충당하고 남았습니다.
문제는 재무적인 부분에 있었죠. 지난해까지는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에 비해 부채비율이 낮아야 정상입니다. 대한항공은 대부분의 항공기를 금융리스로 들여오기 때문에 전부 부채로 잡혔지만, 아시아나항공은 70% 가량을 운용리스로 쓰고 있기 때문에 그 만큼이 부채비율에서 빠졌습니다(올해부터는 운용리스도 금융리스처럼 부채로 잡히기 때문에 차이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2015년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무려 1000%에 육박하게 됩니다. 이 때가 언제냐 하면, 바로 산업은행의 자율협약에서 졸업한 다음 해죠. 그렇습니다. 박삼구 회장이 아들 박세창 사장과 금호기업(지금의 금호고속)이라는 SPC를 설립해 금호산업과 금호터미널을 인수하던 시점이죠. 당시 금호터미널은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였고요. 1조원이 넘는다는 금호터미널을 고작 2700억원에 금호기업에 넘기던 바로 그 때입니다.
짜 자산은 헐값 매각하고 빚만 늘어납니다.
그럭저럭 안정된 수준을 보이던 순차입금(총차입금–현금성자산)이 2015년에 크게 증가하는데,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차입금들이 대부분 만기가 짧은 것이어서 이후로 매년 엄청난 상환부담에 시달려야 했다는 겁니다.
2015년에 증가한 차입금들은 대부분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기관에서 빌려 온 것입니다. 은행에서는 1년 이상의 장기로, 증권사에서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주식을 담보로 단기 차입을 합니다.
그리고 이때 특별한 차입금 하나가 생깁니다. 칸서스케이에이치비㈜라는 곳에서 무려 8%의 이자를 주기로 하고 빌려 온 3900억원입니다. 이 차입금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박삼구 회장의 금호그룹 재건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2015년에 아시아나항공의 100% 자회사인 금호터미널은 당시 KoHC PEF가 보유하고 있던 금호고속(지금의 금호고속에 흡수합병된 예전 금호고속)을 4150억원에 매입했다가 같은 해 칸서스케이에이치비㈜로 3900억원에 매도합니다. 매도는 했지만 금호터미널이 콜옵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잠재적 의결권이 있다고 보고, 양도금액 3900억원을 차입금으로 계상한 겁니다.
그리고 다음해 아시아나항공은 금호터미널을 박삼구 회장이 설립한 금호기업에 헐값에 팔게 되고(금호기업은 금호터미널과 합병 후 금호홀딩스로 사명 변경), 금호터미널이 갖고 있던 콜옵션을 넘겨 받은 금호홀딩스는 2017년에 칸서스케이에이치비㈜로부터 금호고속을 4375억원에 매입해 흡수합병한 뒤 사명을 다시 지금의 금호고속으로 변경합니다.
아시아나항공 개별로도 부채비율이 990%를 넘게 됩니다. 차입금이 약 4000억원 가량 증가하는데, 앞서 얘기한 증권사 등의 주식담보부대출과 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 것이었습니다.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부채비율 1000%는 공모사채 등의 기한이익상실 조건이 충족되는 트리거였습니다. 당연히 유동성에 비상이 걸리고 이때부터 아시아나항공의 자금 줄이 빠른 속도로 수축됩니다. 특히 차입금 중에는 자산 매각이 1조원 이상이면 안된다는 조항이나 일정 금액 이상을 차입하면 안된다는 조항도 있었습니다. 자산 매각이나 차입을 통한 자금조달에도 재갈이 물려 있었던 셈입니다.
산업은행이 살리려는 건 박삼구일까요, 아시아나항공일까요?
언론들은 아시아나항공이 어려워진 이유를 2009년 이전 박삼구 회장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한 데서 찾습니다. 그때로부터 질곡의 길로 접어든 게 사실이니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절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이유야 박삼구 회장의 욕심 때문이지만, 보다 현실적으로는 2014년 자율협약 이후 금호그룹 재건에서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산업은행이 박삼구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인 금호산업을 넘겨주는 바람에, 아시아나항공의 불행이 재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실 책임은 회사가 아니라 경영자와 오너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실패한 경영자에게 다시 회사를 넘겨 준 산업은행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더벨에는 눈을 씻고 다시 보게 하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아시아나항공 구주 가격이 높이 쓰는 인수 후보에게 가점을 주겠다"는 산업은행 관계자의 말입니다. 결국 금호산업이 보유한 30% 지분을 비싸게 팔아 주겠다는 얘깁니다. 아시아나항공을 살리는 게 목적이라면, 최대한 많은 자본이 회사로 유입되도록 하는 게 당연한 데 말이죠. 부실 책임을 물어 감자를 시켜도 시원치 않을 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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