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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고속 매각과 재매각 과정을 중간 정리합니다. 금호산업이 워크아웃 졸업을 위해 자신과 산업은행이 주로 출자한 코에프씨 사모펀드에 금호고속을 3110억 원에 팔고요. 금호고속은 자기 자신을 인수하기 위해 펀드가 빌린 거액의 차입금을 떠안습니다.
금호산업은 코에프씨 사모펀드 지분을 금호터미널에 웃돈을 받고 팔고요. 금호고속에 대한 우선 매수권을 함께 넘깁니다. 금호그룹이 워크아웃에서 졸업한 2015년, 박삼구 회장은 그룹 재건 작업에 본격 착수하는데, 금호산업의 채권단 지분을 되사오는 게 영순위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금호고속 매각이 진행되자 현금 사정이 넉넉했던 금호터미널이 우선 매수권을 행사해 3940억 원에 지분 100%를 삽니다.
금호고속이 차입금을 떠안지 않았다면 100% 지분의 가치는 6000억 원을 상회했겠지만, 3940억 원 만으로도 코에프씨 사모펀드는 3.5배 이상을 받아 대박이 난 셈이고, 최대 수혜자는 당연히 펀드의 최대 출자자인 산업은행이지만 후순위 지분 30%를 보유한 금호터미널 역시 수혜를 보게 됩니다. (선순위 출자자가 펀드의 지분을 회수하고 남는 자산이 그 만큼 늘어나게 되므로……)
2015년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 인수 후보로 결정되자마자 금호터미널이 금호고속 지분을 박 회장과 고등학교 선후배 지간인 김영재 회장의 칸서스자산운용이 세운 사모펀드에 팝니다. 이 사모펀드는 금호터미널이 댄 뒷돈과 2740억 원의 차입금을 재원으로 금호고속을 3940억 원에 매입합니다. (펀드가 빌린 실제 차입금은 2770억 원으로 조금 더 많습니다.)
시장에서는 이 거래를 두고 '파킹'아니냐는 의혹이 번집니다. 당시 금호그룹의 지배 구조는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금호터미널-금호고속'으로 이어졌는데, 금호터미널이 금호고속을 팔아 그 돈으로 금호산업을 인수하면,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금호터미널-금호산업'의 순환출자 구조가 되니, 금호고속을 칸서스 펀드에 파킹 해 놓고 펀드를 활용해 금호산업을 인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었습니다.
코에프씨 사모펀드는 금호고속만 별도 관리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코에프씨 사모펀드가 금호고속을 대우건설이나 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분리해 별도로 관리했다는 것입니다. 금호고속은 금호그룹이 우선 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는 것이고, 대우건설 지분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그렇지 않은 곳이죠.
금호산업이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과 대우건설 지분을 약 6150억 원에 코에프씨 사모펀드에 팔았잖아요. 이게 2012년 8월 9일이거든요. 그런데 이날 이 지분을 받아 간 회사는 에스이비티투자 유한회사라는 곳입니다.
에스이비티투자(유)는 자본금 3800억 원과 차입금 2386억 원으로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의 경영권 지분과 대우건설 지분 12.3%를 6155억 원에 매입합니다.
이 에스이비티투자(유)는 코에프씨 사모펀드가 100% 지분을 출자해 만든 장부상 회사입니다. 금호고속 지분은 코에프씨 사모펀드가 직접 보유한 것과 달리 대우건설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은 자회사에 넘겨 장부 자체를 분리한 겁니다.
어느 회사의 공시를 뒤져봐도, 그 당시 기사를 모두 검색을 해 봐도 왜 굳이 별도의 자회사를 만들어 대우건설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을 금호고속과 분리했어야 했는지 설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금호고속이 다른 두 자산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별도로 관리한 것은 그 차이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금호고속에 대해서는 산업은행이 금호그룹에 우선 매수권을 주었습니다. 금호그룹이 '반드시 찾아오겠다'고 맹세를 거듭했습니다. 대우건설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대해서는 우선 매수권도 제공되지 않았고 '찾아오겠다'고 한 적이 없죠.
코에프씨 사모펀드는 금호그룹에 돌려줄 자산과 제3자에게 매각할 자산을 처음부터 분리해 취급했던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아니라고 하겠지만……
인수 차입금을 금호고속에게 떠넘긴 데는 다른 의도가 없었을까요?
금호산업이 금호고속과 대우건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묶어 코에프씨 사모펀드에 매각한 것 기억하시죠? 그때 금호산업이 30%(1500억 원)를 펀드에 출자했는데, 그게 열후주라고 했잖아요. 열후주는 우선주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배당이나 잔여재산 처분에서 보통주보다 후순위인 주식을 말합니다. 펀드가 청산할 때 보통주로 출자한 산업은행 등에 먼저 배분을 하고 남는 게 있으면 금호산업이 가져가고 그렇지 않으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죠.
사실 이해가 잘 안됩니다. 부실 자산을 매각할 때는 매각자가 후순위 출자를 하는 게 보통입니다. 손실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 같은 역할을 하죠. 그런데 금호고속이나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부실 자산이 아니었고, 외부에 의뢰해 가치 평가를 하고 제 가격에 사온 것이에요. 대우건설은 당시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에 사 왔고요.
언뜻 갑의 위치에 있는 산업은행이 을의 처지인 금호산업에게 좀 억울할 수 있는 구조를 짠 것으로 보이는데……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닐 수 있죠.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코에프씨 사모펀드는 최종 매수자가 아니라 잠시 거쳐가는 정거장일 뿐이죠. 코에프씨 사모펀드의 자금은 4500억 원 정도가 차입금이고 자기자본을 출자한 곳은 산업은행 외에 새마을금고, 한국증권금융, 행정공제회 같은 기관들인데요. 이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운용상 특성은 대박을 노리는 곳이 아니라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곳들입니다. 수익률이 높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보다는 빠른 투자 자금 회수와 내부수익률(IRR) 확보가 우선인 곳입니다.
코에프씨 사모펀드가 금호고속을 금호터미널에 재매각할 때, 펀드와 금호그룹이 각각 원하는 매도가격과 매수가격이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고 했습니다. 이거야 전혀 이상할 건 없습니다. 특히 펀드를 운용하는 주체인 업무집행사원(IBK투자증권과 케이스톤파트너스)에게는 중요한 문제죠.
하지만 펀드에 돈을 댄 주주들은 더 높은 가격을 받는데 악착같이 굴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겁니다. 금호그룹 덕분에 돈도 벌었겠다, 혹시 손해 볼지 몰라 보험료도 넣어 주었겠다, 앞으로 더 짭짤한 딜(deal)이 나올 수도 있는 그룹이겠다, 좋게 좋게 마무리할 유인이 더 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요? 아무래도 그 합병형 차입인수(LBO)가 마음에 걸려서 말입니다. 다른 목적(금호그룹이 나중에 싸게 되사게 하기 위한)으로 인수 차입금을 금호고속에 떠넘겼다는 증거는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금호그룹이 2000억 원 이상 싸게 사 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금호고속을 6000억 원에 팔아서 인수 차입금을 갚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물론, 매각을 성사시키는데 좀 더 부담이 될 수는 있겠지만, 사는 쪽의 입장에서도 차입금을 끌어들여 6000억 원에 매입한 뒤 2000억 원을 금호고속에 넘길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업어치나 둘러치나 메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시가가 1조 원이 넘는데 현재가치는 5000억 원대?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정말 황당한 가격에 매각됩니다. 회계법인 등 전문가들의 영역인 기업가치평가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 세계에서 역대급 밸류에이션으로 길이 길이 유산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서울고속 터미널은 일찌감치 새 주인을 만납니다. 터미널 옆 호남선이 있는 센트럴시티㈜가 2013년 4월에 코에프씨 사모펀드가 보유한 지분 38.74%를 2200억 원에 사들입니다. 센트럴시티㈜의 대주주는 다름 아닌 신세계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요. 이것도 신세계와 롯데의 백화점 부지 경쟁 영향을 받습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2009년과 2012년 매물로 나왔을 때 롯데쇼핑이 군침을 흘렸던 곳입니다. 그리고 센트럴시티에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입주해 있었고요.
신세계는 2012년 10월에 센트럴시티㈜ 지분 60%를 매입합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서울고속 터미널 인수에 나섭니다. 센트럴시티와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묶어 잠실에 주둔한 롯데그룹과 맞설 수 있는 신세계 진영을 구축하기로 한 것이죠.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부지의 공시지가가 이 당시에 얼마인지 아세요? 자그마치 9060억 원, 1조 원에 육박합니다. 게다가 이 회사는 차입금이 전혀 없는 무차입 기업이었습니다. 기업가치가 곧 지분가치인 회사였죠. 공시지가로만 따져도 38.74% 면 3500억 원이 넘습니다. 게다가 경영권 지분입니다. 통상 붙는 30%의 프리미엄을 얹는다면 5000억 원이 넘을 수도 있습니다. 신세계 입장에서는 굉장히 싸게 산 거죠.
그런데 서울고속 터미널은 금호산업에서 코에프씨 사모펀드에 팔릴 때부터 말도 안 되는 헐값이 매겨집니다. 고작 1999억 원에 팔렸거든요. 신세계에 2200억 원으로 팔린 건 금호에서 1999억 원에 팔린 것의 연장선에 있었던 겁니다.
금호산업이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팔기 2년 전인 2010년 1월 1일 기준으로 감정평가를 받은 적이 있더군요. 감정평가액이 1조 1237억 원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공시지가보다는 감정평가액이 시가에 더 가깝습니다. 2년 후 매각 시점의 감정평가액은 더 높았겠죠? 그 당시 서울 땅값이 하락하지 않았다면 말이죠.
그러니까 최소한 시가 1조 1237억 원인 땅이 있는 무차입기업의 지분 38.74%를 금호산업은 코에프씨 사모펀드에 1999억 원에 넘긴 것이죠. 땅값만 쳐도 4353억 원(1조 1237억 원×38.74%)이나 되는데 말입니다.
이 황당한 거래가 이루어진 배경에는 동서 회계법인의 기업가치평가가 있습니다. 동서 회계법인은 2012년 금호산업이 코에프씨 사모펀드에 금호고속,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대우건설 지분을 매각할 때 기업가치 평가를 담당합니다. 동서 회계법인이 평가한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의 자산 가치는 3552억 원~4395억 원입니다. 공시지가 기준으로 최저가를, 감정평가액 기준으로 최고가를 구합니다.
동서 회계법인은 현재가치 할인 법(DCF)으로도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의 지분가치를 평가합니다. 이게 압권입니다. 기업가치 평가의 역사에서 DCF의 마술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보여주는 역대급 사례입니다.
동서 회계법인은 토지 가격이 매년 4.1% 상승한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이 땅을 2017년에 처분한다고 가정하고, 그 처분액을 매각 당시인 2012년의 현재가치로 역산합니다. 이때 적용한 할인율이 11.97%입니다. 그 당시 주식시장의 시장수익률 14.25%와 그 당시 부동산 개발업을 영위하는 상장회사의 베타(ß)와 가중평균자본비용(WACC)을 적용해 구한 할인율입니다.
그 결과 2017년에 이 땅을 팔아서 세금을 빼고 나면 공시지가 기준으로 8814억 원, 감정평가액 기준으로 1조 1786억 원을 받을 것 같은데, 그걸 2012년 시점의 현재가치로 하면 4473억 원, 감정평가액 기준으로 5980억 원이 된다고 계산합니다. 그때 당장 팔면 1조 원이 넘게 받을 땅을 그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평가하는 기가 막힌 방법입니다.
동서 회계법인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이 경영권 지분이라 자산 가치 평가 법이 아니라 DCF를 사용했답니다. 하…… 이거 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요. 금호산업이 38.7%를 한방에 팔지 않고 두 번이나 세 번에 나눠 팔았다면 땅값을 제대로 매겨서 4000억 원~5000억 원을 받았을 텐데, 한 방에 파는 바람에 2000억 원도 못 받는다는 소리잖아요?
이게 뭔지…… 덕분에 신세계는 강남의 금싸라기 땅을 거저먹다시피 했네요. 금호산업은 워크아웃을 더 빠르고 쉽게 졸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요.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 인수에 더 많은 돈이 들 뻔했었네요. 박 회장에겐 행운이고 금호산업에겐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렇게 선 그어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도식적인 결과는 그렇네요.
아, 전에 다른 글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재읽사는 회계법인의 기업가치 평가를 믿지 않습니다. 회계법인이 기업가치 평가를 못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누구보다 잘 하겠죠. 하지만 기업가치 평가에 가장 결정적인 건 어떤 평가 방법을 적용할지, 어떤 추정치를 쓸지를 정하는 건데, 그걸 회계법인이 전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결정권을 쥐고 있는 자가 평가대상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죠.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의 경우에는 그게 누구였을까요? 동서 회계법인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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