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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산유동화 시장의 규모는 11월 2일 현재 기준으로 무려 378조원에 달합니다. 엄청나게 큰 시장입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6월말 현재 금융회사를 제외한 국내 공기업과 민간기업 전체가 발행한 채권(기업어음과 해외채권 포함) 잔액이 590조원 정도입니다. 자산유동화 시장은 금융회사를 제외한 국내 모든 기업이 발행한 채권시장의 50%를 넘습니다. 참고로 자산유동화를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은 금융회사로 분류됩니다.


자산유동화의 기초자산은 매우 다양한데, 주택금융공사의 모기지 유동화(MBS) 시장이 142조원으로 가장 크고, 다음으로 정기예금 유동화 시장이 94조원입니다. PF대출채권을 유동화하는 시장은 47조원으로 세 번째로 큽니다. 그리고 PF대출채권 유동화는 대부분 만기가 6개월 이내(보통 3개월)로 짧은 유동화기업어음(ABCP)나 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로 이루어지는 게 약 35조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부동산PF 유동화 시장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PF대출채권의 대부분은 민간 건설사들이 시공하는 부동산개발 사업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고 부동산개발 사업의 대부분은 주택건축(주로 아파트단지)이 차지합니다. 국내외 긴축정책으로 유동성 거품이 빠르게 꺼지면서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아파트 신축현장의 분양률이 떨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PF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ABCP나 ABSTB의 차환발행이 어려워지게 되죠.


차환발행이 되지 않으면 ABCP 등을 발행한 SPC는 투자자에게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데, 발행자금은 이미 토지매입과 사업비에 사용되었을 테니 상환능력이 있을 리 없고, 실질 차주인 시행사는 대부분 소규모의 영세업자여서 재무능력이 떨어집니다. 결국 신용보강을 한 건설사에게 상환의무가 돌아가게 되죠. 또 일반적으로 ABCP 등의 차환발행이 여의치 않게 되면 증권사가 유동화증권을 대신 매입해 주는 약정(이하 매입약정) 등의 신용보강을 하고 있는데요. 이 경우 일단 차환발행에는 성공할 수 있지만 증권사에 유동성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미분양 등 부동산시장의 리스크가 금융권으로 전이되는 경로가 되는 겁니다.


부동산PF 유동화의 대부분이 만기가 짧다는 것은 약 35조원에 이르는 ABCP와 ABSTB의 만기가 단기에 집중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대규모 만기를 눈앞에 둔 35조원짜리 시장에서  레고랜드 사태처럼 예기치 않은 채무불이행의 사고가 터지거나 미분양 급증 현상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최악의 경우 차환 실패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고 그로 인해 멀쩡했던 건설사와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대규모 손실과 유동성 부족 상황에 놓일 수도 있게 됩니다.


증권예탁원의 자료를 이용해 PF대출채권 유동화로 발행된 ABCP와 ABSTB를 만기를 전수조사해 보았습니다. 발행규모가 11월초 현재 총 36조원이 되더군요. ABCP가 11조5304원이었고 ABSTB가 24조5470억원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전체 36조원 중 약 83%에 달하는 29조9782억원이 올해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3개월 안에 만기를 맞을 예정입니다.



11월에 가장 많은 약 17조원의 만기가 몰려 있고 12월에 약 5조원, 내년 1월에 약 8조원의 ABCP와 ABSTB가 만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거의 전부가 상환될 유동화증권이 아니라 차환발행이 되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아직 아파트를 짓지도 않았는데 상환이 되어 버리면 건설사는 시행사 대신 PF채무를 갚아주는 건 물론이고, 공사비를 금융기관 등에서 다시 조달해야 합니다. 유동화증권 차환이 되지 않았다는 건 이미 금융기관들이 돈줄을 죄고 있다는 것인데, 공사비를 새로 조달하는 게 쉬울 리 없죠.


앞으로 3개월은 부동산PF시장에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금리는 이미 급등했지만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3일 또 다시 0.75%포인트의 자이언트 스텝 금리인상을 단행했고 긴축기조의 지속을 분명히 밝혔죠. 이에 따라 국내 금리도 추가 상승할 여지가 높으니 레고 랜드와 같은 자금경색의 방아쇠가 언제 어디서 당겨질 지 모르는 일이고 주택가격도 당분간 불안할 수 밖에 없겠죠.


아무래도 신용등급이 낮은 유동화증권이 차환리스크에 가장 먼저 노출될 수 있습니다. 유동화증권의 신용등급은 주로 신용보강을 제공한 건설사 또는 금융회사의 신용도에 의해 좌우됩니다. 신용보강이 없거나 신용보강을 제공한 건설사의 신용이 낮으면 ABCP나 ABSTB의 신용등급도 낮겠죠.



36조원의 발행규모 중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24조원의 ABCP와 ABSTB 신용등급이 최고 등급인 A1입니다. 내년 1월까지 향후 3개월 내 만기도래하는 약 30조원만 놓고 보아도 A1등급이 22조원으로 70%에 달합니다. A2등급(A2+와 A2-포함)은 전체 약 10조원 가량이 되고 향후 3개월내 6조7000억원 가량이 만기를 맞습니다. A3등급(A3+와 A3-포함)은 총 1조5616억원이고 3개월 안에 1조1726억원이 만기가 됩니다.


A1신용등급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대부분 신용보강을 한 건설사나 금융기관(주로 증권사)의 신용등급이 높다는 걸 시사합니다. 매우 당연합니다. 현대건설 GS건설 DL이앤씨, 대우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이 가장 많은 주택건설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고 이 건설사들의 신용등급이 높기 때문이죠.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 대형 건설사들이 부동산PF시장의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어 우려됩니다. 중소 건설사 여럿 부도나는 것 보다 대형 건설사 하나 부도 나는 게 시장에는 더욱 큰 충격이 될 테니까요.


채권시장안정펀드가 가동되는 시장도 주로 A1등급의 시장입니다. 펀드의 운용대상이 AA등급 이상의 회사채와 A1등급 이상의 기업어음 등에 제한되어 있죠. 하지만 이번에 둔촌주공재개발조합의 PF대출채권을 기초로 발행된 ABSTB를 채권시장안정펀드에서 매입한 걸 보면 운용대상에 대한 지침이 철칙은 아닌 것 같습니다. 둔촌주공 ABSTB 중 롯데건설이 신용보강을 제공한 제이부르크제이차 ABSTB와 HDC현대산업개발이 신용보강을 한 위드지엠제십차 ABSTB의 신용등급은 A2등급이었거든요.


하지만 채권시장안정펀드가 A3이하 등급의 유동화증권까지 품에 안을 수는 없습니다. 신용등급이 낮은 건설사가 시공사로 있는 사업장의 경우 유동화증권의 차환 실패가 발생하더라도 외부의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분양률이 저조한 지역에 미착공 사업장이 있는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형 건설사라면 그 리스크가 더욱 높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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