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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고속이 2012년 금호산업을 떠나 금호홀딩스에 인수되기까지 5년간의 여정은 대략 정리가 끝난 것 같습니다. 예상보다 많이 길어졌습니다. 쓰다 보니 점점 쓸 게 늘었고, 전편을 읽지 않아도 후편이 이해되도록 하려다 보니 장황해진 면도 있습니다. 이제 중요도에서 밀려 있던 자잘한 것들만 정리하고 금호터미널과 금호산업으로 넘어가야겠습니다.
우선 금호고속과 함께 패키지로 팔려 나갔던 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대우건설에 대한 못다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자산 매각의 용도(?)가 다르다고 했죠. 용도는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고, 결이 다르다고 해 두겠습니다.
11편에 써먹었던 그림입니다. 매도인과 매물 중심에서 그렸던 것을 인수인 중심으로 바꿔 봤습니다. 금호산업은 워크아웃 3년차인 2012년에 유동성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금호고속(100%), 대우건설(12.3%), 서울고속버스터미널(38.7%)를 패키지 매각 하지요. 이걸 사가는 곳은 최종 수요자가 아니라 언젠가는 재매각이 불가피한 사모펀드였고요.
코에프씨 사모펀드는 5000억원의 출자(금호산업 1500억원 포함)로 조성되었고 차입금 4500억원을 조달해 두 개의 장부상 회사(SPC)로 금호산업의 자산을 사들입니다. 금호고속을 인수하는 KH고속투자㈜, 대우건설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을 인수하는 에스이비티투자(SEBT투자) 유한회사가 그것이지요.
(편집자 註) 그림을 그릴 때마다 수치가 조금씩 달라지고, 합(+)이나 차(-)가 딱 들어맞지 않아서 불편하신 분들도 있으실 텐데,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도록 정리된 자료가 있는 게 아니라 이리 저리 꿰어 맞출 수 밖에 없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 설명에 맞도록 단순화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치를 정확하게 맞추고 왜 그런 숫자가 나왔는지 일일이 설명하는 건 너무 소모적이고 끝이 없습니다)
2013년 만우절에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 팔립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은 2013년 4월1일 신세계그룹 계열의 센트럴시티에 팔려갑니다. 코에프씨 사모펀드가 산 가격에 10% 얹은 2200억원에 말이죠. 아래 주요 주주 명단에 신선호씨도 보이는군요. 70년대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유성처럼 사라진 율산그룹의 회장, 그 분입니다.
주주 명단 아래에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이 5월2일 매각되었다고 설명이 달려 있는데, 이 날짜는 거래가 완료돼 등기가 이루어진 날일 테고요. 매매계약이 체결된 날은 4월 1일입니다.
금호산업이 코에프씨 사모펀드에 금호고속 패키지 매각을 할 때 법률 자문을 했던 곳이 법무법인 율촌입니다. 그리고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신세계그룹에 매각할 때 법률 자문을 한 곳도 율촌이죠.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패키지 매각된 금호산업의 자산 중 가장 먼저 새 주인을 찾았습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신세계그룹이 2012년부터 이 땅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거든요.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의 생각으로는 아마도 코에프씨 사모펀드에 매각될 당시부터 이미 신세계그룹과 모종의 합의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야만 당시 시가 1조원이 훌쩍 넘는 땅의 40%에 달하는 지분을 고작 2000억원에 넘긴 것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광주신세계의 5000억원 투척은 정말 '통 큰' 거래였습니다.
여기서 다시 신세계그룹과 롯데그룹의 백화점 부지 전쟁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2012년 9월 신세계 백화점 인천점이 있는 인천터미널의 주인이 롯데그룹으로 바뀝니다. 누가 봐도 롯데그룹이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의 상권을 빼앗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을 벌인 거죠.
신세계그룹은 인천터미널의 새 주인은 당연히 자신일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먼저 인천시와 매매 협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신세계그룹이었거든요. 장기 임대차계약도 되어 있었고 거금을 들여 증축까지 했던 터라, 인천시가 배신을 할 줄을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하지만 인천시는 신세계그룹보다 무려 3000억원이나 높게 부른 롯데그룹에게 인천터미널의 땅과 건물을 모두 넘깁니다. 졸지에 라이벌그룹 건물에 세 들어 사는 꼴이 되어 버린 겁니다.
신세계그룹은 이 사건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백화점이 입점해 있는 부지에 대해 총 점검을 하는 동시에 반격을 준비하죠. 신세계그룹 입장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첫 번째가 광주신세계㈜ 부지였을 겁니다. 광주신세계는 신세계백화점의 지점이 아니라 정용진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별도 법인이죠. 정 부회장의 지분율이 52%나 되니 거의 개인회사 급(?)입니다. ㈜신세계의 지분율은 10%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분율은 그대로입니다.
신세계그룹은 2012년부터 광주신세계가 입점한 유스퀘어의 주인인 금호터미널과 새로운 임대차 계약을 맺기 위한 협상에 들어갑니다. 금호터미널은 아시아나항공의 100% 자회사였고요. 협상의 결과 신세계는 월세였던 임대차계약을 20년 전세로 바꾸고 무려~~~ 50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보증금을 금호터미널에 투척합니다. 270억원의 월세 보증금을 5270억원의 전세보증금으로 바꿔서 늘려줍니다.
5000억원이라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정용진 부회장이 좋아하는 '통 큰' 거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 금호터미널의 자산총액이 4300억원, 순자산(자산-부채)은 2000억원이 채 되지 않았어요. 금호터미널 자산의 전부나 다름없는 유스퀘어 부지와 건물의 장부가액이 4000억원 조금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금호터미널 전체 토지의 공시지가는 장부가액보다도 낮은 2300억원에 불과했고, 심지어 하락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말이죠. 실제 그 땅의 시세가 얼마인지는 몰라도 5000억원은 어쩌면 금호터미널㈜ 지분 100%를 다 살 수도 있는 정도의 돈이라는 겁니다. 광주신세계가 유스퀘어 부지를 다 쓰는 것도 아니고, 터미널 옆 백화점 부지만 임대하는 것인데, 5000억원이라니요. 이면에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거래 아닙니까?
금호터미널이 현금 부자로 화려하게 변신합니다.
뭉칫돈이 들어오면서 금호터미널은 하루아침에 현금 부자가 됩니다. 2013년말 자산총액은 9300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커지고 땅과 건물 밖에 없던 회사가 막대한 현금과 1700억원에 이르는 투자자산까지 보유한 회사로 변모합니다.
금호터미널이 현금 부자가 됐다는 것은 곧 박삼구 회장에게 전에는 없었던 수단이 생겼다는 뜻이 됩니다. 금호터미널을 활용할 수 있다면, 금호산업과 금호고속을 되찾는데 엄청난 자원이 될 수 있겠죠.
실제로 박삼구 회장은 금호터미널을 곧바로 이용합니다. 곶감 빼먹듯 금호터미널의 현금을 빼먹습니다. 금호산업이 코에프씨 사모펀드 지분 30%를 금호터미널에 1780억원을 받고 넘긴 것을 기억하시죠? 그게 2013년 11월입니다.
또 금호터미널은 2014년에 코에프씨 사모펀드로부터 금호고속을 4150억원에 인수하죠. 물론 그 돈을 다 준 것은 아니고(그래도 현찰이 3700억원 이상 들어간 거래입니다) 몇 달 후에 다시 칸서스KHB 펀드로 3900억원에 넘기지만요.
이런 거래를 통해 금호산업은 현금을 챙기고, 박삼구 회장은 나중에 금호산업과 금호고속을 되찾아 오기 위해 필요한 수순을 하나 하나 밟아 나갈 수 있게 된 것이죠. 정용진 부회장이 통 크게 쏜 5000억원의 전세 보증금 덕분에요.
광주신세계 5000억원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2200억원은 별개 거래일까요?
그런데 광주신세계가 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무슨 관계냐고요? 금호산업이 서울고속터미널을 코에프씨 사모펀드에 매각한 게 2012년 8월말입니다. 신세계 백화점 인천점의 부지와 건물은 그 해 9월에 롯데그룹에 팔립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2013년 4월 1일 신세계그룹에 팔립니다. 같은 달 광주신세계는 금호터미널과 월세를 전세로 바꾸고 보증금 5000억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합니다.
시가로 1조2000억원은 족히 넘었을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부지. 그 땅의 지분 40% 가까이를 2200억원이라는 헐값에 사온 신세계그룹. 보유 토지 전부의 공시지가가 2300억원인 금호터미널에 점포 임대보증금 5000억원을 쏴 준 광주신세계. 아무 관계 없는 전혀 별개의 거래로 보이시나요? 재읽사의 눈에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신세계에 2200억원만 받고 팔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재읽사는 광주신세계가 그냥 임대보증금만 준 게 아니라 광주신세계 부지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광주신세계나 금호터미널의 재무제표에는 그런 기록이 없네요. 재읽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이 5000억원은 또 박삼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반드시 금호터미널을 사와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대규모 차입금을 동원해 금호산업을 인수했고, 거기에 금호고속까지 다시 찾아 와야 하는 박삼구 회장 입장에서는 현금부자 금호터미널이 꼭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인수차입금을 갚을 길이 막막할 테니까요.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금호터미널 인수 스토리에 다시 등장할 수 밖에 없겠군요. 여기서는 이쯤 하지요.
조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면(그러니까 이건 그냥 소설입니다), 신세계그룹은 어쩌면 인천시가 롯데그룹과 계약을 하기 이전에 인천터미널을 롯데그룹에 빼앗길 수 있다는 낌새를 알아챘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광주신세계 부지를 지키기 위해 정용진 부회장이 박삼구 회장과 협의를 했고, 서울고속터미널을 싸게 받는 대신 금호터미널에 5000억원을 융통해 주어 박 회장의 그룹 되찾기를 도왔던 것은 아닐까요. 그냥 소설입니다. 재읽사의 주체 못할 상상일 뿐입니다.
◇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의 3배 가격에 센트럴시티를 삽니다.
흥미로운 게 또 있습니다. 신세계 그룹이 서울고속버스터미널(경부선) 보다 먼저 사들인 호남선과 센트럴시티에 대한 겁니다. 그 땅의 원 주인은 율산그룹 신선호 회장이었습니다. 율산그룹은 허무하게 망했지만 그 땅만큼은 운 좋게 챙길 수 있었죠. (이건 또 다른 스토리라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신선호 회장은 롯데 백화점을 견제하기 위해 강남 진출을 모색하던 신세계그룹에게서 거액의 보증금을 받은 것을 계기로 센트럴시티를 건립하며 재기를 노립니다. 그러나 결국 신 회장은 2000년 부도를 맞고 센트럴시티는 애경그룹을 거쳐 통일교로 넘어가는데, 2012년 문선명 교주가 죽고 통일교가 어수선할 때 신세계그룹이 센트럴시티 지분 60%를 통일교에서 사들입니다.
2012년 10월입니다. 신세계그룹이 인천터미널을 롯데그룹에 빼앗긴 직후입니다. 광주신세계가 금호터미널에 5000억원을 투척하기 이전입니다. 신세계그룹이 센트럴시티 지분을 사는데 쓴 돈이 얼마인가 하면 말이죠. 무려 1조250억원입니다. 10월과 11월 두 차례에 거쳐 현찰을 주고 삽니다.
신세계는 자금 관리를 매우 타이트하게 하는 회사로 유명했습니다. 외부 차입을 잘 하지 않고 현금도 딱 필요한 만큼만 유지하는 곳이었죠. 차입을 하더라도 장기 차입보다는 기업어음 같은 단기 채무를 선호했습니다.
그런 회사가 센트럴시티를 매입하기 위해 1조250억원 전액을 부채로 조달합니다. 그 중 1조원이 장기 차입금이었습니다. 2011년말에 7400억원 가량이던 신세계의 차입금은 2012년말 2조2260억원으로 급팽창합니다. 대부분 센트럴시티 지분을 사느라 쓴 빚입니다.
호남선과 센트럴시티 부지는 약 2만평 정도 됩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부지 전체는 대략 5만평 정도라고 합니다. 나머지 3만평은…… 그렇죠. 바로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부지가 되겠죠. 2만평의 땅을 가진 센트럴시티 지분 60%를 1조원 넘게 주고 산 신세계는 불과 반년 후에 3만평의 땅을 가진 바로 옆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38.7%를 2200억원에 사게 되는 겁니다.
신세계그룹은 센트럴시티를 사고 보니 그 옆에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부지가 눈에 들어왔고, 강남에 신세계 타운을 꾸밀 수 있겠다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게 됐다는 것이죠. 재읽사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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