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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재벌그룹 회장님들은 웬만하면 자기 돈으로 투자를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박삼구 회장만 보더라도 금호산업을 인수할 때도, 금호터미널과 금호고속을 흡수 합병할 때도 대부분 자금을 외부 차입금이나 계열사 자금을 동원해 조성하고, 외부 차입금은 기업에 넘겨 채무 상환의 부담을 다른 주주와 나누어 왔습니다. '경영권은 혼자의 것, 빚은 모두의 것'인 셈입니다. 그러니 기업이 망가져도 오너는 영원할 수 있겠죠. 물론 기업 실패의 책임이 있는 오너에게 경영권을 보장하는 산업은행 같은 조력자가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금호홀딩스에는 금호고속 인수에 쓸 자체자금 1885억원이 없었습니다.


금호그룹은 금호고속 인수 자금을 금호홀딩스의 자체자금 1885억원과 인수금융 1850억원으로 조달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금고가 텅텅 빈 금호홀딩스가 1885억원을 자체 자금으로 댔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죠.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은 금호고속 인수자금을 사실상 전액 차입금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금호홀딩스가 1885억원을 대고, 외부 인수금융을 1850억원 조달했다고 하지만, 금호홀딩스가 댄 1885억원 역시 결국 외부에서 대부분 조달된 것이었습니다.



현금부자였던 금호터미널이 자신을 인수한 금호기업을 흡수 합병한 이후 거덜이 난 사연은 시리즈 18편에서 소개를 한 적 있습니다. 금호터미널은 2015년말까지만 해도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금융자산이 2600억원이나 있었지요. 그런데 금호기업과 합병한 후 금호홀딩스로 이름을 바꾼 2016년말에는 현금 39억원, 단기금융자산은 고작 2억원으로 금고가 텅텅 비게 됩니다. NH투자증권에서 빌려온 금호산업 인수 차입금 3300억원을 포함해 총 4500억원 이상을 부채 상환에 써야 했거든요.


금호홀딩스가 2016년에 금호고속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용도로 코에프씨 사모펀드(대우건설 지분 12.3%만 남아 있는)를 1580억원에 유동화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정승원씨가 이끄는 웰투시인베스트먼트㈜가 장부상 회사를 설립해 이 지분을 사 주었죠. 대신증권과 라임자산운용 등이 참여를 했고요.


분명히 금호고속 인수용 자금조달이긴 합니다만, 그 돈이 그대로 잘 보존되었다가 해를 넘겨 금호고속 인수에 직접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시리즈 19편에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일단 그 중 700억원은 금호고속을 잠시 맡겨둔 칸서스KHB 사모펀드에 2차 출자를 위해 썼죠.


대우건설 지분을 유동화하고도 2016년말에 현금과 단기금융자산을 합해 41억원에 불과했던 금호홀딩스입니다. 금호산업 차입금 상환하는데 금호터미널이 갖고 있던 광주신세계 보증금 잔액은 물론 대우건설 지분 유동화 잔액까지 탈탈 털어 넣었다고 봐야겠죠.


싱가포르 홍릉그룹은 왜 박삼구 회장을 도왔던 걸까요? 미스터리입니다.


당시는 박삼구 회장이 금호고속 외에도 금호타이어 인수에도 나서고 있을 때였습니다만,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은 금호타이어에 대한 박 회장의 인수 의지가 확고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2010년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시점부터 자금의 흐름을 추적해 보니, 금호타이어가 금호그룹 복구 스토리의 중심에 섰던 적이 없었거든요. 이 시리즈에 박삼구 회장의 금호타이어 인수 시도와 실패의 과정이 빠져있는 이유입니다.


아,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있습니다. 금호기업이 금호터미널과 합병 선언을 한 이후(금호석화가 금호터미널 헐값 인수에 반발해 합병이 지연되고 있었죠)인 7월에 금호기업 이름으로 사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 229억원짜리를 발행합니다. 이걸 인수한 곳이 스프링 파트너스라는 투자회사입니다.



이 거래가 참으로 미스터리입니다. 신주인수권부사채는 만기 10년에 0%의 금리(연체이자 5%)로 발행되었습니다. 게다가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이 금호기업 주식 발행가인 주당 10만원보다 높은 15만원에 달했습니다. 스프링파트너스라는 곳이 금호기업의 미래를 엄청 좋게 본 모양이지요? 이자도 받지 않고 10년을 묶일 위험을 감수하면서 229억원을 투자할 정도로 말입니다.



베일에 싸인 스프링파트너스의 배경에 싱가포르 최대 부동산 재벌 홍릉그룹이 있다는 것을 처음 취재한 언론사는 자본시장 미디어 '더벨'인 것 같습니다. 스프링파트너스는 대표이사인 정동수씨가 홍릉그룹 자회사 CDL의 궈링주(Kwek Leng Joo) 부회장과 50대 50으로 지분을 출자해 설립한 곳이었습니다.


스프링 파트너스는 2011년에 설립이 되었는데, 국내에서는 펀드를 조성하거나 투자를 한 사례가 없었답니다. 하지만 금호기업이 금호터미널을 인수하기 전부터 박삼구 회장과 일종의 파트너 관계에 있었다고 더벨은 전합니다. 특히 박삼구 회장이 금호타이어 인수에 나서게 되면 스프링파트너스가 금융자문을 하거나 직접 투자에 나설 것이었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이후 언론에서 금호타이어 인수전을 다룰 때마다 스프링파트너스가 빠짐없이 거론됩니다. 박삼구 회장은 금호타이어에 대한 우선매수권도 갖고 있었는데, 금호산업과는 달리, 계열사를 동원할 수 없도록 산업은행이 못을 박고 있었죠. 박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자금을 마련해 금호타이어 지분을 사야 했던 겁니다. 있는 거라곤 금호홀딩스와 금호산업 지분뿐인 박회장으로서는 백기사가 필요할 수 밖에 없는데, 이때 백기사 후보로 오르내리던 곳이 사돈그룹인 대상그룹(박현주 부회장이 여동생, 임세령 전무는 외조카), 금호기업 설립에 60억원을 출자했던 금호전기(박명구 회장은 박삼구회장과 사촌지간), 그리고 스프링파트너스였습니다.


그럼 229억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는…… 박회장과 스프링파트너스의 도원결의 같은 것이었을까요? '금호타이어를 인수하게 되면 큰 수익을 안겨 줄 테니, 우선 동맹군으로서 성의를 보여라' 같은? 그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박삼구 회장의 금호타이어 인수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가능성이 낮은 큰 거래를 믿고 적은 돈도 아니고 229억원을 이자 한푼 못 받고 10년을 묶일 수 있는 결정을 한다는 게 여전히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금호홀딩스는 아시아나항공에 손을 벌립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스프링 파트너스가 투자한 229억원도 연말 경에는 다 쓰고 남은 게 없었다고 봐야겠죠? 한 마디로 금호홀딩스는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었던 겁니다.



금호터미널이 가진 현금 만으로는 금호산업 인수 차입금 등 4500억원의 차입금을 상환하는데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대신증권, 케이프투자증권에서 각각 800억원과 900억원을 단기 차입해 돌려 막기를 합니다.


그리고 금호홀딩스를 구하기 위해 다시 계열사들이 동원됩니다. 위 표에 있는 특수관계자로부터의 단기차입 459억원이 그 흔적이죠.



2016년말 잔액은 459억원이지만, 계열사를 통해 융통한 자금의 총액은 966억원입니다. 금호산업을 비롯해 아시아나항공의 6개 자회사가 총 출동합니다. 심지어 설립한지 1년밖에 안된 에어서울㈜에게도 손을 벌렸네요. 에어서울은 2015년말에 항공운송 사업면허를 따고 2016년에 영업을 시작했는데, 매출(169억원)보다 당기순손실(218억원)이 훨씬 컸습니다. 아시아나항공에서 받은 자본금 350억원 중에 237억원을 까먹고 있었죠.


이 차입금은 아시아나항공 계열사들에게는 매우 큰 돈이었습니다. 아시아나개발과 에어서울의 금호기업 대여금은 2016년말 기준 순자산의 30%에 육박했고, 아시아나에어포트가 빌려준 170억원은 순자산의 40%에 달했습니다. 아시아나IDT도 순자산의 18% 가량을 덜어내 금호기업을 도운 겁니다.


금호홀딩스의 계열사 단기차입과 상환은 전부 4분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걸 암시하지요. 그리고 아주 싼 이자를 줍니다. 같은 단기차입이지만 대신증권과 케이프투자증권에게는 5~7%의 금리가 적용(심지어 대신증권에겐 담보가 제공되었음)된 반면 계열사들에게는 2~3.7%의 이자만 줍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기타'에게 빌린 241억원에는 1.5~2%로 더 싼 이자를 주고요. '기타'의 정체가 박삼구회장과 아주 가까운, 계열사가 아닌 존재라는 뜻이겠지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금호그룹이 계열사 간의 이 대차 거래를 숨기려 했다는 것이죠. 공정거래법에서는 대규모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회사가 특수관계인에게 자본총액 또는 자본금 중 큰 금액의 5% 이상이거나 50억원 이상의 거래를 하는 경우 이사회의 의결을 거친 후 이를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에어부산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규정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금호그룹은 공정거래법을 교묘하게 피해 갑니다. 공정거래법이 거래 총액이나 잔액에 대한 것이 아니라 건 별 거래금액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을 악용해 한 번에 빌리지 않고 조금씩 여러 차례 나누어 빌립니다. 그렇게 해서 계열사들은 이사회 결의도 하지 않고 금호기업에 돈을 빌려 주었고, 그에 대해 어떤 공시도 하지 않은 것이죠.


금호산업의 경우엔 좀 더 심각합니다. 우리나라 상법은 상장사의 경우에 주요 주주나 특수관계인에게 신용공여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경영상의 목적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금호산업이 금호기업에 돈을 빌려준 것이 금호산업의 어떤 경영상 목적에 해당될까요? 금호산업이 이사회 결의도 없이 이런 거래를 했으니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 같은 계열사 동원 사례들은 사실 산업은행의 허술함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산업은행은 금호산업 인수 조건으로 박삼구 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했지요. 박삼구 회장은 그 규정을 금호산업을 인수한 후에 계열사의 자금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피해간 겁니다. 조삼모사 전법이라고 하면 어울리겠습니다.


기내식 업체 변경은 금호고속 인수와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자, 그럼 도대체 금호홀딩스는 금호고속을 인수하기 위해 어떻게 자체자금 1885억원을 제이앤케이제삼차㈜에 대여했던 걸까요. 당연히 또 어디선가 빌려 온 것이죠. 그게 바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기내식업체 변경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본 시리즈에서는 기내식 업체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고 금융거래만을 다루겠습니다.



박삼구 회장은 금호고속을 인수하기에 앞선 2017년 4월 중국 하이난항공그룹(HNA)을 대상으로 16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합니다. 총 4개 회차로 나누어 발행이 되는데 560억원은 만기 1년과 2년이고 나머지 1040억원은 무려 20년의 만기로 발행이 됩니다. 아주 오~~~래 함께 할 동지를 구한 셈이죠.


게다가 이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스프링 파트너스가 인수한 것보다 조건이 더 좋습니다. 만기가 더 길 뿐만 아니라 액면 금리도 0%이고, 만기 금리도 0%, 연체 이자도 없습니다. 완전 공짜입니다.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은 15만원으로 스프링 파트너스가 인수한 것과 같은데, 신주인수권 행사기간을 따로 정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공시내용에 빠져 있더라고요. 신주인수권은 의미가 없는 둘 만의 다른 약속이 있겠죠. 단순한 금융 파트너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이난항공그룹이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한 직후 금호홀딩스는 케이에이인베스트먼트(현 금호티앤아이)에 588억원, 제이앤케이제삼차㈜에 405억원을 빌려 줍니다. 케이에이인베스트먼트는 588억원을 빌린 그날, 금호고속으로부터 금호리조트 지분을 588억원에 매입하죠. 제이앤케이제삼차㈜에게는 금호고속 인수 직전까지 순차적으로 50억원과 1300억원이 대여됩니다. 하이난항공그룹에서 받은 돈이 직접 금호고속 인수에 투입된 것이죠.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공급하던 곳은 독일 루프트한자그룹의 자회사인 엘에스지스카이셰프코리아(이하 엘에스지)였죠. 무려 15년간 안정적으로 기내식을 공급해 왔고, 승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으로 알려져 있었죠.


박삼구 회장은 엘에스지에 계약 연장의 조건으로 금호홀딩스에 1500억~2000억원가량의 투자를 요구합니다. 2016년 한창 자금이 쪼들릴 때의 일이죠. 그런데 엘에스지가 "직접 거래 대상인 아시아나항공에 투자를 하겠다"며 홀딩스에 대한 투자를 거부합니다. 결국 박 회장은 '몰래' 아시아나항공 자회사들을 총동원하는 체면 구기는 일을 벌여야 했고요.



박삼구회장은 2016년 12월 아담 탄 하이난항공그룹 최고경영자와 서울에서 만납니다. 그리고 그 해 마지막 영업일인 12월 30일 이사회를 열어 하이난항공그룹이 한국지사로 설립한 기내식업체 게이트 고메 코리아 지분 40%를 매입하는 결의를 합니다. 게이트 고메 코리아는 박회장과 아담 탄 최고경영자의 서울 회동이 있기 두 달 전에 설립된 신설 법인이죠.


박삼구회장의 금호홀딩스가 하이난항공그룹에서1600억원을 받는 대신 상장사인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업체를 교체하는 무리수를 두며 게이트 고메 코리아에 533억원을 출자했던 것입니다.


엘에스지는 현재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100억원의 손해배상 183억원의 기내식 공급대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