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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의 계획은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캐시카우 두산밥캣을 현금창출능력이 없는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만드는 것입니다. 두산밥캣이 벌어들일 수익은 협동로봇 시장에서 두산로보틱스가 경쟁력을 확보할 때까지 필요한 투자재원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지속적인 손실로 부실해진 재무건전성을 가려주는 역할도 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의 지분을 현금으로 양수할 능력이 없고, 신주를 발행해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주식과 교환하는 것도 답이 아닙니다. 두산그룹은 ㈜두산을 필두로 한 지주회사 체제이고, 지주회사의 자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상호주를 보유할 수 없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을 인적분할해 회사로 만들면, 그 회사의 최대주주는 ㈜두산이 되죠. 이제 ㈜두산의 자회사인 두산로보틱스와 분할신설회사가 합병을 하게 되면, 두산밥캣은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가 됩니다. 남은 건 상장사인 두산밥캣의 일반 주주들이 보유한 지분을 거둬 들이는 일만 남게 됩니다.



지난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업분할 시 분할비율은 장부상 순자산가액을 기준으로 합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밥캣 지분을 취득원가로 회계처리해 오고 있었고, 그로 인한 장부가액이 2조1980억원이라서 분할비율은 두산밥캣의 시가나 향후 현금흐름 창출능력과는 무관하게 약 0.25로 정해지게 되죠. 현행 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으니 분할자산이 정해지면 분할비율은 기계적으로 산출되는 식입니다.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수정될 수 없는 불합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와 두산로보틱스 주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은 바로 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비율입니다. 두산로보틱스는 상장사이므로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에서 결정되는 기준주가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정하게 되죠. 두산로보틱스와 합병을 할 상대는 두산밥캣이 아니라 두산밥캣 지분 46%를 보유한 신설회사이고, 신설회사는 비상장사입니다.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의 합병인 셈입니다.


신설회사는 사실상 장부상 회사입니다. 회사에는 두산밥캣 지분 46%와 극히 일부의 다른 자산(선급비용과 이연법인세자산 73억원), 그리고 7240억원 상당의 부채가 있을 뿐이죠. 자산이 사실상 두산밥캣의 경영권 지분뿐인 장부상 회사의 가치를 어떻게 구해야 할까요?


자본시장법에서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의 합병에 대해 상장사의 합병가액은 기준주가를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으로 기준주가가 자산가치에 미달할 때는 자산가치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비상장사의 가치는 자산가치의 40%와 수익가치의 60%를 가중평균해 구하는 일명 본질가치법을 쓰도록 규정하고 있죠. 이에 따라 두산그룹이 구해 낸 합병비율은 0.1275856이 되었죠.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신설회사가 분할된 비율이 약 0.25이니, 두산에너빌리티 보통주 1주당 두산로보틱스 보통주 0.03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두산밥캣은 두산에너빌리티 연결 매출액의 약 절반을 책임지고, 영업이익의 거의 대부분을 창출하는 회사입니다. 그런 효자사업을 보유한 회사의 주식을 규모도 작고 수익도 내지 못하는 두산로보틱스 주식과 교환하는데 1주당 고작 0.03주라니,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0.03이라는 분할합병비율이 나온 이유는 두산로보틱스의 기준주가 8만144원원에 비해 신설회사의 본질가치가 1만221원으로 낮게 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설회사의 자산가치는 1만219원, 수익가치는 1만223원으로 거의 비슷하게 나와서 가중평균의 의미가 별로 없었습니다.


합병비율은 처음부터 기준주가로 합병가액을 정할 수 있는 두산로보틱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습니다. 두산로보틱스의 자산가치는 고작 6737원으로 기준주가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고, 신설법인과 비교해도 65% 수준으로 낮았죠.



또 만약 두산로보틱스가 비상장사였다면, 본질가치법에 의해 합병가액을 결정해야 했을 텐데요. 자산가치가 낮을 뿐 아니라 지난해 상장 당시 예상과 달리 올해 상반기 실적이 지난해 동기보다 오히려 악화되면서 적자를 지속하고 있어서 수익가치도 높은 수준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피합병법인인 신설법인의 합병가액인 본질가치는 불리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자산가치야 두산밥캣 지분 가치에 의해 거의 전적으로 결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별로 이슈가 없습니다. 실제로 장부가액과 주가와의 차이 정도만 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수익가치에 대해서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산정되었습니다. 신설회사는 가장 중요한 영업자산인 두산밥캣의 지분을 어떻게 수익가치로 평가할 것이냐가 관건인데요. 두산그룹은 두산밥캣이 상장주식이라는 이유로 기준주가로 평가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자산가치나 수익가치나 다를 게 없었죠.


이런 방식을 선택한 근거로 두산그룹은 분할신설법인이 지주회사의 특성을 띠고 있고, 지주회사의 가치는 보유한 자회사 주식가치를 합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자회사인 두산밥캣이 상장사이니 기준시가를 적용해 두산밥캣의 지분가치를 정했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신설회사는 장부상 회사로 포장에 불과할 뿐이고, 본질은 두산밥캣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설회사의 수익가치를 구한다는 건 곧 두산밥캣의 수익가치를 구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두산밥캣은 연결 기준으로 지난해 1조2958억원에 달하는 영업활동 현금흐름을 창출했죠. 자본적 지출을 차감한 잉여현금흐름도 약 1조원에 달합니다. 총 차입금이 6월말 현재 1조7000억원대에 달하지만 현금과 금융상품이 그보다 조금 더 많아서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상황입니다. 딱히 가산할 비영업자산은 없는 편이죠.



비영업자산이 별로 없고, 현금과 차입금의 규모가 비슷하니 두산밥캣의 수익가치는 거의 대부분 잉여현금흐름의 현재가치에 의해 결정이 될 텐데요. 지난해 수준의 잉여현금흐름이 매년 영구적으로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10%의 할인율을 적용할 경우 주주가치가 무려 10조원이 나오고, 15%의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도 대략 6조7000억원의 주주가치가 너끈히 나오죠.


신설법인이 두산밥캣 지분 46%를 보유하고 있으니, 그에 해당하는 수익가치는 10%의 할인율을 적용할 경우 4조6000억원에 달합니다. 신설법인에 있는 차입금 7240억원을 차감해도 주주가치는 3조8760억원에 이릅니다.


두산그룹이 구한 신설법인의 수익가치는 총 1조6201억원이었습니다. 두산밥캣 지분을 기준시가로 계산했을 때의 값이죠. 10%의 할인율을 적용해 두산밥캣 지분을 수익가치로 계산한 3조8760억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습니다.


만약 신설법인의 수익가치가 3조8760억원 부근에서 추정되었다면 주당 수익가치는 2만4458원 사이가 됩니다. 자산가치인 1만219원과 가중평균을 하면 합병가액은 약 1만8760원 정도가 나오죠. 실제 합병가액에 비해 80% 정도 높은 수준입니다.


물론 두산밥캣의 수익가치는 가정과 전망을 어떻게 설정하는 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고, 10% 외의 다른 할인율을 적용해도 전혀 다른 값이 나올 수 있습니다. 매우 보수적으로 평가하면 혹시 기준시가로 계산할 때보다 더 낮은 값이 나올 지도 모르죠. 하지만 신설법인의 유일한 영업자산인 두산밥캣 지분을 단지 투자주식으로 보고 기준시가로 수익가치를 산정하는 것이 그리 적절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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