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둘러싼 기사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중 많은 것들은 표피적으로만 상황을 보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금호그룹과 아시아나항공을 여전히 '살아있는' 기업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은 생각합니다. 산업은행에 대해서도 재무적 곤경에 처한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선 채권자라는 시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산업은행과 금호그룹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내연의 관계를 정리하고 남남으로 돌아가려는, 그래서 잇속은 잇속대로 챙겨야 하고, 별로 남아 있는 애정은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먹고 살기에는 충분한 위자료를 챙겨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남아 있는 그런 사이랄까요.


어쩌면 이것도 속임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연의 관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데,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표정으로만, 말로만 차갑고 엄격한 척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2009년 워크아웃 신청, 박삼구 회장은 경영권을 잃습니다.


이제 금호그룹이 2009년 사실상 해체된 이후 산업은행과 금호그룹 사이에 있었던 역대 급 스캔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호그룹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시점에 이런 한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좀 그렇기는 하지만, 전개상 필요할 것 같습니다.


2009년 금호산업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을 신청합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상대적으로 경영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해서 자율협약에 들어갑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빚을 왕창 내서 인수했다가 장사는 신통치 않고 마침 금융위기까지 터지면서 그룹 자체가 해체된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금호산업은 무상감자를 합니다. 최대주주인 금호석유화학(약 19%)를 포함한 금호그룹의 지분율은 의미 없는 수준으로 낮아지고, 보유 채권을 반 강제적으로 출자전환한 채권자들이 대주주에 오릅니다.



미래에셋삼호는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금호산업 채권을 매입하기 위해 만든 회사였고요, 팬지아데카, 디케이에이치 등은 박삼구회장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 뒷돈을 댄 재무적 투자자(FI)들입니다.


이때 참 말이 많았습니다. 산업은행이 50% 출자전환을 제안하는데 FI들이 펄펄 뜁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앞서서 반대했던 곳이 팬지아데카㈜라는 곳인데, 여기는 미국계 사모펀드가 대우건설에 투자하기 위해 만들었던 회사였습니다. 사실상 17개나 되는 대우건설 FI의 대표 역할을 팬지아데카가 했습니다.


산업은행은 '니들이 말을 안 들으면 금호산업을 법정관리로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그래도 FI들이 물러나지 않고 출자전환 비율을 더 올려야 한다고 버티죠. 그런데 출자전환 안건을 놓고 산업은행과 한창 대립하던 무렵, 국세청이 팬지아데카㈜를 세무조사합니다.


이유는…… 뭐, 그냥 세금 잘 내나 조사하려고 했다더군요.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는데…… 어쨌든 세무조사 이후 팬지아데카㈜가 갑자기 고분고분해집니다. 결국 대우건설 FI들이 줄줄이 출자전환에 동의하게 되지요.


2년 만에 주주로 복귀, 금호산업 인수의 교두보를 놓습니다.


이듬해인 2012년 6월 박삼구 회장이 다시 금호산업 주주명단에 이름을 올립니다. 금호산업이 박삼구-박세창 부자만을 대상으로 22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했거든요. (이때 박 부자는 금호타이어에도 유상증자 형태로 출연을 하게 됩니다.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판 4000억원으로 유상증자 대금을 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자배정 유상증자로 최대주주가 되기는 했지만, 금호산업은 워크아웃 상황이었고 산업은행과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 등의 지분율이 훨씬 높았습니다. 경영권은 산업은행이 이끄는 채권단에 있었다고 봐야 하죠.


이 유상증자는 상당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선은 시장의 여론인데요. 박삼구 부자의 유상증자 참여를 산업은행과 언론들이 '오너의 통 큰 희생'으로 치장을 합니다.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팔아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주식을 사는데 왜 희생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럴 듯해 보이기는 합니다. 당시 금호산업은 상장폐지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부채비율이 2000%에 달할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산업은행 등이 신규 자금을 지원하고 채권단이 수 차례에 걸쳐 출자전환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삼구 부자는 금호산업을 망친 장본인인데다, 출자전환한 채권단의 지분은 한 차례 감자까지 당한 뒤였습니다.


금호산업이 2014년에 워크아웃을 졸업한 다음에 박삼구 회장이 외부자금을 끌어들여 금호산업을 다시 인수한 것을 아실 겁니다. 재읽사는 2012년의 유상증자가 그 교두보가 되었다고 봅니다.


산업은행, 박삼구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줍니다.


2012년 유상증자로 다시 단일 최대주주에 오른 박삼구는 비록 전면에 나서 경영권을 행사하지는 못했지만, 사실상 산업은행과 공동 경영을 한 것은 아닌가 의심을 할 만한 일련의 일들이 벌어집니다. (다음 편부터 간간이 나옵니다)


산업은행과 금호그룹이 워크아웃 이후 시나리오를 미리 짜놓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정황이 실제로 포착됩니다. 산업은행이 박삼구 부자에게 써줬다는, 그 유명한 밀실 합의서입니다.



산업은행은 금호그룹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직후인 2010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박삼구-박세창 부자와 합의서를 작성합니다. 골자는 (1)박 회장이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의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3년간 협조한다는 것과 (2)채권단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주식을 매각할 때 박 회장 부자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명백한 특혜입니다. 더구나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채권금융기관 출자전환 주식 관리 및 매각준칙'에 우선매수청구권의 부여 조건이 있습니다. (1)부실 책임이 있는 구(舊) 사주는 우선협상대상자에서 제외한다는 것과 (2)부실책임의 정도와 사재 출연 등 경영정상화를 위한 노력의 사후평가를 통해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박 회장 부자가 사재 출연을 한 것은 2012년 6월이지요. 밀실 합의문은 2년도 더 전의 일이고요. 산업은행은 부실책임이 있는 박 회장 부자를 제외시키기는커녕, 사재 출연을 하기도 전에 처음부터 우선협상 대상자로 정해 준 겁니다.


게다가 그 사실을 숨기기까지 합니다. 합의문에 대한 소문이 시장에 퍼지자, 합의문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기죠. 심지어 금호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에게도 비밀로 합니다. 채권단의 이름으로 합의문을 써주지만, 다른 채권자들 모르게 산업은행이 독단적으로 저지른 일입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워크아웃을 졸업한 금호산업 인수전이 2015년 벌어졌을 때 우선매수청구권을 확보한 박삼구 회장은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금호산업만 인수하면 아시아나항공까지 갖게 되는 빅딜(Big Deal)에 사실상 금호그룹 말고는 다른 후보가 나서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도록 하죠).


박삼구 회장의 인맥, 특히 산업은행과 많이 얽힙니다.


재벌그룹 총수답게 박삼구 회장의 인맥은 화려합니다. 특히 당시 정권의 실세 및 산업은행과 얽힌 인연이 많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부인인 박화자씨 오빠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임원을 지낸 인연으로 김 전 비서실장과 친분이 두텁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고요. 산업은행 총재와 재무부장관을 지낸 이정환씨는 박삼구 회장의 장인입니다. 이정환 전 장관은 금호석유화학 회장이었던 적도 있답니다.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아시아나항공 사외이사였고요. 정영의 전 산업은행 총재는 아시아나항공의 고문으로 활동했습니다.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도 아시아나항공 사외이사를 지냈죠.


또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는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이홍구 전 총리,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사를 지낸 적이 있는데, 이 양반들이 이사였던 때가 금호그룹이 산업은행에서 워크아웃 중이던 시기와 상당히 겹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