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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그룹이 2009년 워크아웃을 신청할 당시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전개되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할 것 같습니다. 2015년에 시작된 금호그룹 재건 작업, 아시아나항공의 부실 등이 2009년 당시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2010년 2월 5일 작성된 1차 이면 합의서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당시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채권단을 대표(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도 몰랐으니 사실상 무자격으로)하고, 박삼구-박세창 부자가 지배주주의 자격으로 서명과 날인을 합니다.
실패한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따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던 민유성 산업은행장
1차 합의서가 작성된 이틀 후 '금호일가 경영권 보장 철회'라는 제목의 기사가 뜹니다. 내용인즉슨, 금호그룹 일부 계열사 주주가 사재출연 등 채권단의 구조조정 계획에 협조적이지 않아서 당초 3~5년간 경영권을 보장해 준다던 약속을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일부 계열주의 모럴 해저드가 심각하다", "채권단보다 후순위인 주식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너 일가가 경영권 등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등의 말로 직격탄을 날립니다.
민 행장의 공격을 받은 상대는 박삼구 회장이 아닙니다.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조준한 겁니다. 금호산업의 경영난과 대우건설의 무리한 인수로 그룹이 위기에 빠지자 박찬구 회장은 2009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형제 간의 전쟁을 치르고,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을 잡는데 성공합니다. 워크아웃을 신청한 금호산업 지분은 형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다 팔고 한 주도 없었죠. 금호타이어 역시 금호석유화학의 자회사로 있었을 뿐 박찬구 회장이 직접 보유한 지분은 없었습니다.
다음 날인 2월 8일 산업은행이 기자회견을 엽니다. 김영기 당시 수석 부행장이 "채권단 합의에 따라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을, 박삼구 회장 부자는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을, 금호산업 등 나머지 계열사는 채권단이 경영권을 행사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합니다. 이미 금호산업의 대표이사에 박삼구 회장의 추천인사를 세우기로 합의를 해 놓고 말입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 분리가 사실상 이때 공식화됩니다.
같은 달 23일, 두 번째 합의가 이루어집니다. 금호산업 외에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통운까지 박삼구 회장이 명예회장을 맡고, 대표이사도 박삼구 회장이 추천한 인사를 세운다는 내용이 추가됩니다.
당시, 시장에서는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이 정상화 후에 결국 매각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금호산업의 경우 채권단의 동의 하에 박삼구 회장 측이 경영을 맡는다고는 알려져 있었지만, 산업은행이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는 사실은 몰랐죠. 채권단의 입장은 박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박 회장에게는 나중에 금호산업 등을 재매수할 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고 봤으니까요.
금호석화에 팔렸다 다시 금호산업으로 돌아온 아시아나항공 지분의 의미는?
외부에 알려진 금호그룹의 계열 분리는 그랬습니다. 금호석유화학 계열은 박찬구 회장이, 금호타이어는 박삼구 회장이 각각 소유하는 구조. 금호타이어에 대해서는 정상화 후에 박삼구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하기로 했다고 산업은행이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 조건으로 박삼구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팔아 금호타이어에 출연하기로 했고요. 박삼구 회장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죠. 2년 후에 금호타이어 대신 금호산업 지분을 사는데 쓰게 되니까요.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는 금호석유화학이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도 금호석유화학이었죠. 아시아나항공은 대우건설과 함께 대한통운의 최대 주주였고요. 그런데 왜 산업은행과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에 대해 우선매수청구권을 주는 약속을 했을까요?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을 신청하기 전, 박삼구-박찬구 형제가 전쟁을 벌이기 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구조가 힌트가 될 것 같습니다. 박삼구/박찬구 일가가 금호석유화학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기는 하지만, 금호타이어를 제외한 대우건설,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 등 그룹의 핵심은 모두 금호산업 아래 있었습니다. 사실상의 지주회사는 금호산업이었지요. 게다가 금호산업은 과거 금호건설과 금호타이어가 합병한 그룹의 모태였습니다.
그룹의 지배구조는 워크아웃 신청을 전후해 미묘하게 변합니다. 우선 형제의 전쟁 중에 박삼구-박찬구 형제 모두 금호산업의 지분을 팔아 금호석유화학 지분 늘리기 경쟁을 합니다. 특히 박찬구 회장은 금호산업 지분이 0%가 되고요. 박삼구 회장 부자의 금호산업 지분율도 6.14%에서 3.59%로 낮아집니다.
두 번째로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가 금호석유화학으로 바뀝니다. 금호산업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이행한다며, 워크아웃 신청 직전인 2009년 12월 21일 주당 4275원(당일 마감가), 총 947억원을 받고 약 12.7%의 지분을 금호석유화학에 팝니다. 이로써 그룹의 지배구조는 금호석유화학-금호타이어/아시아나항공-대한통운의 형태가 됩니다.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판 것은 산업은행과의 협의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또 산업은행의 입김이 있었습니다. 당시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매각한 것에 대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산업은행이 팔라고 했다는 거죠. 워크아웃 신청 직전에 말입니다. 워크아웃을 신청할 줄 몰랐을까요? 그럴 리는 전혀 없습니다. 워크아웃 신청도 산업은행과 상의한 결정일 테니까요.
그 후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을 신청하자 금호산업의 주채권은행이던 우리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난리가 납니다. 워크아웃 신청 직전에, 그것도 경영권에 대한 프리미엄도 받지 않고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판 것은 박씨 일가가 우량 계열사를 지키기 위해 빼돌리기 한 거라고 말입니다. 금융감독원에서도 불공정거래가 아닌지 검토하겠다고 나섭니다.
우리은행 등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원위치 시키든지, 금호산업에 남아 있는 나머지 20%의 지분을 마저 사가되,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서 가격을 다시 매길 것을 요구합니다. 결국 아시아나항공 지분은 팔았던 원래 가격 그대로 다시 금호산업에게로 돌아옵니다.
박삼구 회장이 금호타이어 대신 금호산업 지분을 매입한 까닭은?
아마도 산업은행과 박삼구 회장은 워크아웃 이전부터 긴밀한 협의를 해 왔을 것 같습니다.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고 있었으니까요.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금호석유화학에 넘긴 것도 단순히 재무구조 개선용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를 위한 포석이었을 지 모르죠.
당시 상황의 전개로 보아 박삼구/박찬구 형제의 동거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테고, 아시아나항공을 넘긴 후에 계열 분리를 할 생각이었나 봅니다. 금호석유화학을 분리해 박찬구 회장에게 주고, 박삼구 회장은 아시아나항공-대한통운을 가져가게 됐겠죠.
박삼구 회장은 산업은행과 합의에서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팔아 매입하기로 했던 것은 원래 금호타이어 지분이었다는 걸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2년이 경과한 시점에야 금호석유화학을 팔아 2200억원 가량을 금호산업 지분을 사는데 쓰고, 금호타이어에는 1100억원만 투입하게 됩니다. 산업은행은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하죠.
2010년에 아시아나항공 지분이 다시 금호산업에게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금호석유화학 지분 판 돈을 전부 금호타이어 지분을 사는데 쓰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박삼구 회장의 금호그룹 재건 작업도 사뭇 달랐겠지요.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서 졸업하기를 기다려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했을 테고, 대한통운을 재 매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금호타이어-아시아나항공-대한통운의 소유 구조라면, 금호산업을 다시 사오는 것도 훨씬 수월했을 것 같습니다.
2016년 뉴스커뮤니케이션이라는 홍보 대행사 박수환 전 대표가 대우조선해양 경영 비리 의혹으로 구속됩니다. 이른바 박수환 커넥션 사건인데요. 조사 과정에 박수환 전 대표가 금호그룹에도 관여한 것이 밝혀집니다. 2009년 5월에 박수환 전 대표가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지 않도록 해주겠다"며 금호그룹에 30억원을 요구해 선금 10억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결국 한달 뒤 금호그룹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게 됩니다. 금호그룹은 이에 대해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진술했답니다. 그런데 금호그룹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고도 선금 10억원을 돌려 받기는커녕 두 달 뒤인 8월에 박수환 전 대표에게 증빙처리를 위한 별도의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박 전 대표가 돈 받은 대가로 일을 하기는 한 모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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