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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회장의 금호그룹 복원 과정에서 금호터미널 인수는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 된 사건입니다. 박회장 입장에서는 금호산업을 인수하느라 크게 늘어난 차입금을 줄이고 금호고속 인수를 준비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고, 동생인 박찬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의 금호터미널 매각이 헐값에 이루어졌다고 반발하는 바람에 금호그룹 판 형제의 난이 재발하게 됐지요.


부동산 가치만 1조원이 넘는(금호석유화학의 주장) 기업이 2700억원이라는 헐값에 팔렸다는 것 때문에 크게 이슈화가 되기는 했지만,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의 관점에서는 별 다를 것도 없는 거래입니다. 지난 시리즈를 꾸준히 읽으신 독자라면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금호고속을 팔았다 다시 사는 과정에서 여러 번 보여 준 '박삼구 식 거래법'이 금호터미널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날 테니까요.


우선, 금호터미널의 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룹의 원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금호터미널이 어떤 연유로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가 되었는지 알아야 헐값 매각을 이해하는 비밀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금호그룹 내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거래는 과거의 어떤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본 시리즈를 통해 아셨을 겁니다. 금호터미널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금호터미널 매각은 정상적인 흥정이 오고 간 후 사자와 팔자가 모두 만족하는 가격이 매겨진 그런 거래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대우건설 인수를 앞두고 금호산업은 부동산의 80%를 떼냅니다.


금호터미널은 2006년 9월 금호산업의 여객버스터미널 사업부문이 물적 분할되어 설립됩니다. 분할된 대부분 자산은 현재의 광주종합터미널(당시 광천터미널)을 비롯한 전국 19개 터미널 부지와 건물이었는데, 토지의 장부가액은 3500억원 정도, 건물의 장부가액은 1300억원 가량 되었습니다. 금호산업이 제출한 분할신고서에 적힌 공정가액은 토지와 건물을 포함해 3600억원이었습니다. 금호산업은 외부의 감정평가법인과 회계법인의 검토를 거쳐 최종 분할가액을 확정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해 11월에 제출한 분할종료보고서에는 그 가액이 토지와 건물 포함 3736억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공정가액의 기준이 무엇인지 적시하지 않아 알 수 없고, 감정과 검토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설명하지 않아 적정성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좀 찜찜하기는 합니다. 2006년이면 전 세계가 장기적인 저금리로 유동성이 넘치는 바람에 부동산 광풍이 불 때였지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판교신도시의 아파트 당첨권이 로또로 불리던 시절이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서브 프라임 위기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요. 그런데 금호그룹이 보유한 터미널 부지들은 모두 그 광풍이 피해가는 소외지역에 있었나 봅니다. 장부가액보다도 낮게 평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전문가들의 평가를 거친 것이라고 하니 믿어주기로 하지요.


금호터미널과 함께 분리된 또 다른 기업이 있었는데, 바로 금호리조트입니다. 금호산업이 레저사업부문을 분리해 금호리조트를 신규 설립한 겁니다. 금호터미널과 마찬가지로 충무마리나리조트 등 전국에 있는 5개 리조트의 대부분 토지와 건물 등 유형자산으로 이루어진 회사입니다. 대략 1300억원에 평가됩니다.



금호터미널과 금호리조트 공히 유형자산 외에 이렇다 할 자산이 없었습니다. 분할 전 7750억원이던 금호산업의 유형자산은 분할 후 1534억원으로 크게 줄어듭니다. 5000억원이 넘는 토지와 건물을 떼내었기 때문이죠. 금호산업 유형자산의 80%에 해당합니다.


여객버스터미널사업이 분할 전 금호산업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77%로 미미했고, 레저사업의 매출 비중 역시 2.38%에 불과했습니다. 사업부문을 분할했다기 보다는 부동산을 분할했다고 보는 게 실질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금호산업이 밝힌 분할의 이유는 사업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만, 그건 그냥 좋은 말로 치장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분할 이후 두 회사가 걷게 되는 여정을 보면 그렇습니다. 100% 금호산업의 비상금을 마련하기 위한 포석으로 이해됩니다.


2006년 금호그룹은 전방위적 자금조달 중이었습니다.


2006년은 금호그룹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바로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해가 그때이고요. 대한통운 인수 준비도 사실상 이미 시작됐으니까요. 국내 대표 재벌의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박삼구 회장의 야심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때였으니까요. 그룹 입장에서는 유례없는 자금이 필요했을 테니,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자금을 끌어 모아야 했을 것입니다.



위 차트에서 보다시피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장사해서 번 돈으로 대규모 M&A를 할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하고는 영업활동에서 꾸준히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곳이 없었거든요. 그러니 차입금이든 유상증자든 자산매각이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현찰을 확보해야 했죠.


그렇다고 금호리조트와 금호터미널이 대우건설 인수자금 확보에 직접적으로 쓰인 것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대우건설은 대규모의 외부 차입금과 재무적 투자자를 동원해 인수했었죠. (차라리 이때 보다 적극적으로 자산을 매각해 대우건설을 인수했더라면……)


대우건설 인수 후 금호리조트를, 대한통운 인수 후 금호터미널을 현금화합니다.


그리고 같은 날 분할을 했지만 금호리조트와 금호터미널의 쓰임은 좀 달랐습니다. 박삼구 회장은 대우건설을 인수한 직후인 2007년에 금호리조트의 지분 일부를 아시아나항공과 대우건설에 넘겼다가 2008년에 다시 금호산업으로 되돌려 놓았다가 2009년에는 50% 지분을 대한통운에 넘깁니다. 나머지 50% 지분은 고속버스사업을 분할해 설립된 금호고속에 2011년 11월 넘기게 됩니다. 이후 과정은 지난 시리즈에서 수도 없이 써서 거의 외우실 듯. 그러니까 금호리조트는 대우건설 인수 이후 금호산업의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새로운 부모를 찾아 이삿짐을 싸야 했던 겁니다. 다른 계열사의 자금을 활용하기 위한 도구인 셈이죠.


금호터미널도 같은 신세이기는 한데, 금호산업의 자금조달을 위해 쓰이는 시기는 2009년입니다. 금호터미널을 대한통운에 넘기는 대신 2190억원의 현금을 가져옵니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한 후 금호산업의 자금문제를 진화하기 위해 금호터미널이라는 카드를 꺼내게 되는 것이죠. 금호리조트와 마찬가지로 금호터미널 역시 다른 계열사에 있는 현금을 돌려 쓰는 구실이 됩니다.



대한통운 인수전은 이미 2005년 시작되었습니다.


대한통운 인수에 대해 그냥 지나가기는 조금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전 과정을 중계하려면 너무 긴데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니 가능한 한 맥락에서 덜 벗어나는 정도로만 구경 잠깐 하겠습니다. 짚고 넘어가고 싶은 대목이 있어서요.


모기업인 동아건설의 부도로 덩달아 법정관리에 들어간 대한통운은 법원이 본격적인 매각에 나서기 전부터 국내 여러 재벌 그룹들이 눈독을 들였지요. 그 중에서도 금호그룹과 STX그룹의 인수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먼저 선빵(?)을 날린 건 금호그룹입니다. 박삼구 회장이 대한통운 인수에 그룹의 명운을 걸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그랬나 봅니다. 무려(?) 대우건설 인수보다 빠른 2005년 8월에 대한통운 지분 매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금호그룹이 직접 취득한 것이 아니고요. 펀드를 통해 사들입니다.



CFAG10호라는 구조조정펀드는 금호산업이 대한통운 지분을 사기 위해 조성된 것입니다. 500억원 규모의 자본 중 약 95%를 금호산업이 출자했고, 조성자금 전부를 대한통운 지분 매입에 쓰니까요.


그러자 STX그룹이 곧바로 추격합니다. 두 달 후인 2005년 10월 STX팬오션이 느닷없이(당시 언론의 표현으로) 무려 21.3% 지분을 확보하며 단숨에 최대주주로 올라섭니다. 법정관리 중인 기업이니 최대주주라도 당연히 경영권은 없고요. 법원의 매각으로 출자전환과 신주발행이 이루어지면 희석될 지분율이긴 하지만요. 미리 미리 사모아 두면 아무래도 나중에 큰돈이 덜 들어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