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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는 올해 3월초 ‘M&A 제도개선을 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및 규정 개정안’ 입법예고를 실시했습니다. 개정안의 핵심은 △공시 강화 △외부평가제도 개선 △합병가액 산정규제 개선 등이었습니다. 기업합병이 지배주주 중심으로 진행되는 폐해를 막고 일반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며, 합병제도의 글로벌 정합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습니다. M&A 뿐 아니라 중요한 영업 또는 자산의 양수∙양도,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분할 및 분할합병도 포함됩니다.
개정안은 이사회 의견서 작성과 공시를 의무화했습니다. 합병의 목적과 기대효과, 합병가액 및 합병비율 등 거래조건의 적정성 뿐 아니라 합병에 반대하는 이사가 있는 경우 그 사유 등에 대한 이사회 의견이 포함된 ‘이사회 의견서’를 적성해 공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죠.
또 외부평가기관이 품질관리규정을 마련하도록 의무화하고, 합병가액 산정과 평가를 동시에 할 수 없도록 금지합니다. 또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에는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감사위원회의 의결이나 감사의 동의를 거쳐 외부평가기관을 선정하도록 했죠. 외부평가 선정이 경영진이나 지배주주 편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인데, 솔직히 실효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세번째 개정안의 핵심은 합병가액 산정 규제를 개선하는 것인데요. 비계열사 간 합병시에는 상장사의 합병가액을 현재의 기준주가 방식(최근 1개월간 평균종가, 최근 1주일간 평균종가, 최근일 종가를 거래량으로 가중평균한 후 산술평균)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애너빌리티의 분할합병 계획은 금융위원회의 제도개선 취지와 정면 충돌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8월 26일 두산로보틱스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요구를 한 첫 번째 이슈는 이사회의 결정 과정을 공개하라는 것이었죠. 개정안이 예정대로 올해 3분기 중 시행되었으면, 두산그룹은 시행령을 위반하는 사례가 되었을 겁니다. 개정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처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외부평가를 맡은 기관이 안진회계법인이라는 점도 석연치 않습니다. 2021년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한 두산밥캣 등 계열사 지분을 인적분할해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과 합병할 때 외부평가를 맡은 안진회계법인은 지난해 처음으로 두산로보틱스의 외부감사인이 되었습니다. 분할합병의 당사자인 두산로보틱스의 외부감사인이면서 동시에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의 분할합병의 외부평가인이 된 건데요. 물론 법률검토 등을 거쳤겠지만, 두산로보틱스에 유리하게 외부평가를 진행할 수 있다는 의심을 사기 좋은 상황입니다.
금융감독원의 두 번째 정정요구는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의 수익가치를 현금흐름 할인법 등 미래 수익에 발생하는 효익에 기반한 모형을 적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시행세칙’ 제6조는 수익가치 산정방법을 규정하고 있는데, 현금흐름할인모형, 배당할인모형 등 일반적으로 공정하고 타당한 것으로 인정되는 모형을 적용하여 합리적으로 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죠.
외부평가기관인 안진회계법인은 금감원의 정정요구를 두 번 연속 거절했습니다. 8월 6일 정정된 보고서에서도, 10월 21일 두 번째 정정보고서에서도 두산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의 수익가치를 두산밥캣 지분의 가치를 주식의 시가로 계산했죠.
참고로 자본시장법에서는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할 때 상장사의 합병가액은 기준주가로 산정할 것을 원칙으로 하고, 비상장사의 합병가액은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평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의 자산은 사실상 두산밥캣 지분이 전부이니 자산가치는 두산밥캣 주가에 따라 결정되는 게 당연하죠. 그런데 수익가치를 계산할 때도 두산밥캣 지분의 가치를 주가로 산정했으니, 결국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산정방법이 같았던 셈이었고, 실제로 안진회계법인이 구한 분할신설법인의 주당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는 1만219원과 1만223원으로 거의 같았습니다.
8월 6일 정정시고서의 주된 내용은 분할신설법인은 자체 사업이 없이 투자주식만 보유하고 있으므로 지주회사와 마찬가지이고, 지주회사의 수익가치는 자회사 주식가치로 구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금융감독원의 정정요구가 틀렸다는 것이죠.
8월 26일 금감원은 설명자료까지 내면서 현금흐름 할인법을 사용해 수익가치를 구하고 이를 두산그룹이 처음 제시한 기준주가를 사용한 합병가액과 비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0월 21일 정정보고서는 다시 한번 금감원의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대신 분할신설법인의 수익가치에 두산밥캣 지분을 경영권 지분으로 인정해 43.71%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했습니다.
수익가치 산정에 현금흐름할인법 등을 반영하라는 금감원의 요구를 듣지 않은 것에 대해 안진회계법인은 주식의 시가는 그 자체가 시장에서 기대하는 그 기업의 미래 창출가치를 대변하니, ‘일반적으로 공정하고 타당한 것으로 인정되는 모형’에 부합한다는 것이고, 현금흐름 할인법에는 많은 가정이 적용되기 때문에 주관적이라고 다시 한번 주장합니다. 합병가액 산정방법과 수익가치 산정방법을 정한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증권의 발행 및 공시에 대한 규정을 만들어 시행한 곳이 금융감독당국인데, 안진회계법인은 계속 ‘당신들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10월 21일 정정신고서의 가장 큰 변화는 두산에너빌리티의 분할비율입니다. 기존에는 장부상 순자산의 기준으로 분할비율이 0.247403이었는데,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의 주가를 기준으로 분할비율을 0.1157542로 정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분할신설법인이 신규 발행할 주식 수가 1억5874만여 주에서 7414만여 주로 절반 이하로 줄었고, 결국 주당 합병가액이 높아졌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입장에서는 합병가액이 높아졌지만, 기존 안에 비해 교부받을 주식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서 결과적으로 별로 개선된 게 없습니다.
실무적으로 기업의 인적분할시 분할비율은 거의 예외 없이 분할신설법인의 순자산장부가액을 분할전 회사의 순자산장부가액으로 나누어서 구해 냅니다. 분할비율에 따라 기존의 주식도 분할되기 때문에 분할되는 순자산이 클수록 신설법인이 더 많은 주식을 발행하게 되죠.
회사를 둘로 쪼개고 그에 따라 주식도 나누는데, 그 기준을 순자산의 장부가액으로 하는 건 실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죠. 당연히 쪼개지는 두 회사의 가치만큼 주식도 나누어져야 합니다. 장부가액과 공정가치가 다를수록 분할비율은 실질에서 벗어나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무에서 장부가액을 기준으로 분할비율을 정하는 것은 아마도 과세 이연 혜택 때문일 것입니다. 법인세법은 기업의 분할을 양도거래로 보고 있어서, 양도차익이 발생하면 과세를 하는 것이 원칙인데요. 합병과 분할 등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적격 분할’일 경우에는 장부가액으로 양도가 된 것으로 본다는 특례조항이 있습니다. 장부가액으로 양도되었다고 본다는 건 양도차익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는 것이니 과세가 이연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적격 분할의 조건이 장부가액으로 분할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장부가액을 기준으로 분할비율을 정하는 것은 과세이연 특례를 의식한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설명하겠지만, 분할비율이 공정가액과 괴리되어 정해지게 되면, 대주주가 지배지분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이 되곤 합니다.
두산그룹이 장부가액 기준을 분할비율을 공정가액이라고 할 수 있는 주가를 기준으로 바꾼 것은 분할의 실질을 제대로 반영하려는 노력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정정보고서에서 분할비율 정정의 이유를 전혀 밝히고 있지 않거든요. 분할신설법인의 주당 합병가액 상승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합병가액의 실질적인 증액은 경영권 프리미엄에 의해 발생됩니다. 안진회계법인은 분할신설법인의 수익가치에 두산밥캣 지분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43.70% 반영했는데, 금액으로 환산하면 1조원쯤 됩니다. 하지만 비상장법인의 합병가액에는 수익가치가 60%만 반영되기 때문에 실제로 합병가액 증액에 반영된 경영권 프리미엄은 약 6000억원인 셈입니다.
그런데, 경영권 프리미엄을 왜 수익가치에만 포함시킨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산가치에 포함된 두산밥캣 지분은 경영권이 없고 수익가치를 구할 때만 경영권 프리미엄이 발생하나요? 평가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평균한 분할신설법인의 본질가치를 먼저 결정한 뒤, 경영권 프리미엄을 추가로 반영하는 것이 순서에 맞을 것입니다.
안진회계법인이 계산한 분할신설법인의 총 자산가치는 약 1조6194억원입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하지 않았을 때 총 수익가치도 대략 그 정도입니다.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모두 두산밥캣 지분을 주가로 계산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자산가치의 40%와 수익가치의 60%로 가중평균한 분할신설법인의 본질가치도 당연히 대략 1조6100억원이 되죠.
이렇게 구한 분할신설법인의 본질가치에 약 1조원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뒤 절반 미만으로 줄어든 발행주식 수로 나누면 주당 합병가액은 3만5382원이 됩니다. 두산에너빌리티 분할비율을 장부가액이 아닌 기준주가 기준으로 바꾸고, 분할신설법인의 수익가치를 현금흐름할인법을 사용하지 않고 두산밥캣의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하더라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모두에 반영하거나, 본질가치에 가산을 했다면 분할신설법인의 주당 합병가액은 두 번째 정정보고서의 2만9965원이 아닌 3만5475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합병비율도 0.3740353이 아니라 0.4426407이 되었을 것이고, 분할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으로 두산에너빌리티 1주당 주주들이 받게 되는 두산로보틱스 주식도 0.0432962주가 아니라 0.0512375주가 되었을 테죠. 이는 두산그룹이 지난 7월 최초에 제시했던 분할신설법인의 주당 합병가액 1만221원이 1만6444원이 된 것과 같고,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주당 1594원에 해당하는 대가가 추가로 제공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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