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국보는 무려 12년째 적자행진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좀비 상장기업입니다. 올해도 적자로 장부를 마감할 것이 확실시됩니다. 사모펀드인 제이에스 제2호와 비상장사 카리스가 인수한 2019년 이전부터 매출 감소와 적자 누적으로 자산과 자본이 빠르게 줄고 있었고, 자산매각이나 외부자금의 수혈 없이는 연명이 어려웠습니다. 이런 기업이 M&A의 타깃이 된 건 오로지 ‘유가증권 상장사’라는 타이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카리스는 2017년까지 매출이 전혀 없었고, 2018년 광주에서 신설된 중원건설이라는 회사를 합병합니다. 그해 처음으로 약 9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1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2019년 이 회사에 큰 변화가 생깁니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25억원의 증자가 이루어지면서 뭉칫돈이 들어왔고, 새로운 주주들이 생겼습니다. 그 돈을 종자돈으로 상장사 국보에 두 차례 출자해 최대주주가 되고 국보의 상호를 카리스국보로 바꿉니다. 어쩌면 역합병을 통해 우회상장하려고 했으나 실패한 것을 아닐까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뭉칫돈이 들어왔는데, 이렇다할 주주는 2019년말 현재 없었습니다. 5% 이상 주주는 유철 대표(50.91%) 뿐이었고 소액주주가 1397명에 달했습니다. 직전 매출 9억원짜리 회사의 유상증자에 이렇게 많은 주주가 모였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국보를 인수한 후 비상장주식이 유통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카리스의 총괄사장으로 국보의 대표이사에 취임한 하현씨는 주요 주주 명단에도, 임원 명단에도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카리스의 매출은 2019년 16억원으로 늘었지만 매출원가만 40억원에 달했고 누적 결손금이 87억원인 완전 자본잠식에 빠졌습니다. 자산총액이 213억원인데, 갚아야 할 차입금이 254억원에 달했습니다. 감사증거를 제출하지 않아 감사의견이 거절됐고, 현금흐름표조차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차입금을 국보 인수(69억원) 외에 어디에 썼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차입금의 대부분은 대표이사인 유철씨로부터 빌렸습니다. 2019년 212억원을 차입했고 2020년에 100억원의 채무를 면제받았습니다. 그리고 유철 대표 지분에 이상한 변동이 포착됩니다. 국보 인수 직전 25억원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유철 대표의 납입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철 대표는 연말까지 4개월동안 새로 받은 500만주의 대부분인 약 410만주를 매도합니다. 2020년에도 9월말까지 약 108만주를 추가 처분합니다. 그런데 이 거래를 회사가 사업보고서 중 ‘이해관계자와의 거래내용’에 기재합니다. 회사와 유철 대표가 거래했다는 뜻인데요. 회사가 샀으면 자기주식이니 의결권이 없는데, 연말에 의결권 없는 주식은 없었고 소액주주가 1397명에 달했단 말이죠. 유철 대표가 소액주주들에게 직접 팔았거나, 회사가 매입했다가 재매각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유철 대표는 130만주를 추가로 처분해 2021년 9월말에는 지분율이 24.48%까지 낮아지는데요. 130만주 처분 거래는 사업보고서에 대주주와의 거래로 보고되지 않습니다. 유철 대표는 한편으로 회사에 자금을 대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주식을 처분해 투자를 회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보의 최대주주가 사모펀드로 바뀐 이후부터 이상하다싶을만큼 꾸준히 지분을 취득한 회사가 있습니다. ‘보그너’라는 골프의류 브랜드를 갖고 있는 보그인터내셔날입니다. 국보는 2019년 5월에 78억원을 골든타임 1호조합에, 8월에는 20억원을 나비스피델리스 5호조합에 각각 출자했습니다. 모회사였던 흥아해운 인수에 나섰다가 실패한 12월에는 보그인터내셔날 지분 45.74%를 78억원에 취득했다고 공시합니다. 골든타임 1호조합에서 탈퇴하면서 받아온 보그인터내셔날 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보그인터내셔날 대표가 바로 국보 대표이사 하현씨였습니다. 이듬해인 2020년 3월에는 나비스피델리스 5호조합 지분을 유동성확보 차원에서 처분했는데요. 같은 날 20억원어치의 보그인터내셔날 지분을 취득합니다.
국보는 이후에도 2020년 12월에 28억4000만원어치의 전환사채를 발행해 보그인터내셔날 지분을 추가 취득했고 2022년 3월에는 60억원의 대여금을 출자전환해 지분율을 94.7%까지 끌어올립니다. 보그인터내셔날 대표는 여전히 하현씨였습니다. 사모펀드 제이에스 제2호가 국보를 인수한 후 최대주주가 카리스에서 케이비국보로 바뀌는 동안 지속적으로 보그인터내셔날에 대한 지분 취득과 자금대여가 이루어졌던 셈입니다.
2022년 11월 오창석 회장이 이끄는 무궁화신탁의 계열사 엠부동산성장1호가 최대주주가 된 국보는 사업구조 재편의 일환으로 보그인터내셔날 지분 매각에 나섭니다. 지난해 6월에 지분 52.5%를 72억원에, 지난해 12월에는 잔여주식 전부를 40억원에 각각 처분하죠. 그런데 1차 매각때 양수인이 2차전지업체 디에이테크놀로지, 2차 매각때 양수인이 사실상 오창석 회장이 지배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천지인엠파트너스였습니다. 오창석 회장과 무궁화신탁의 M&A를 실행하는 업무집행회사입니다.
아시다시피 디에이테크놀로지는 라임사태에 연루된 회사입니다. 이인광씨의 에스모, 최기보씨의 오아시스홀딩스가 공동 경영하면서 회사가 나락으로 떨어져 회생절차(법정관리)가 진행 중입니다.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이 작성한 시리즈 스마트모빌리티기업 위즈돔의 과거 6편에 디에이테크놀로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오아시스홀딩스는 스마트모빌리티 기업 위즈돔을 디에이테크놀로지에 매각했고, 디에이테크놀로지 지분을 상상인저축은행 차입금 담보, 서울리거 인수 차입금 담보, 협진(전 에이씨티) 인수 차입금 담보, 인터불스(스타모빌리티, 현 참존글로벌) 인수 차입금 담보 등으로 사용했죠.
보그인터내셔날 지분을 매입할 당시 디에이테크놀로지 최대주주는 대표이사 이종욱씨였습니다. 에스모에서 사내이사를 지낸 분인데 2020년에 디에이테크놀로지 대표에 취임했고, 지투지프라이빗에쿼티 제1호라는 사모펀드를 만들어 유상증자에 참여해 11.9%이 지분을 취득한 뒤, 조합 해산 후 9.8%의 지분으로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올해 2월에 부동산개발업체 ㈜오하에 지분 대부분을 매각하고 퇴임했죠.
디에이테크놀로지는 보그인터내셔날을 인수할만한 재정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거액의 적자를 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본금도 일부 잠식된 상태였습니다. 과거 회계처리기준 위반이 적발되어 회사와 전 대표이사에게는 7억원가량의 과징금과 부사장임 해임권고조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디에이테크놀로지는 13억원은 현금으로, 59억원은 같은 규모의 13회차 전환사채를 발행해 보그인터내셔날 지분 양수대가로 지급합니다. 그런데 국보는 약 열흘만에 디에이테크놀로지에 조기상환을 청구합니다. 52억3000만원은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기존 차입금과 상계처리합니다. 국보가 디에이테크놀로지에 빌린 돈이 있었군요. 이상하네요. 국보 사업보고서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보그인터내셔날의 잔여주식 매각은 좀 더 복잡합니다. 디에이테크놀로지에 55만여주를 매각한 후 남은 주식이 44만여주(42.24%)였습니다. 여기에 대여금 20억원을 출자전환해 약 15만주를 추가 취득한 뒤 지분 전량(49.59%)을 천지인엠파트너스에게 약 78억원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합니다. 지난해 6월말의 일입니다.
양도계약과 함께 보그인터내셔날 주식의 소유권을 천지인엠파트너스에 넘겼지만 양도대금은 지난해말까지 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연말이 오기 전 국보는 보그인터내셔날에 대한 대여금 30억원을 추가로 출자전환했고 그로 인해 취득한 주식은 75만여주로 늘었죠. 보그인터내셔날의 자본금은 60억원에서 136억원으로 크게 늘었고, 국보가 보유한 보그인터내셔날 지분의 장부가액은 약 108억원에 달했습니다. 국보는 보그인터내셔날 지분 전량을 천지인엠파트너스에 매각했습니다.
양도할 주식이 약 60만주에서 약 119만주로 거의 2배가 됐으니 양도가액도 높였어야 했겠죠? 반대로 앞서 계약한 60만주의 양도가액을 40억원으로 낮춰주고, 지난해말 지분 전량을 양도하는 대가로 국보가 발행했던 14회차 전환사채 150억원 중 70억원을 받았습니다. 천지인엠파트너스가 사채권자로부터 국보 전환사채를 취득한 뒤 이를 보그인터내셔날 지분과 맞바꾼 셈입니다.
국보는 14회차 전환사채를 올해 1월 4일 곧바로 재매각하기로 합니다. 1주일 후 주식으로의 전환청구가 가능한 전환사채였습니다. 매수자는 에이치씨에너지조합과 칼다비드투자조합이었습니다. 두 조합이 각각 35억원씩 인수하고 지난 2월 15일까지 잔금을 납입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결손으로 국보의 자본금이 50% 이상 잠식되고 감사의견 거절까지 받으면서 상장폐지 위기에 놓이게 되었죠. 결국 15억원의 중도금만큼은 조합으로 넘어가 이미 주식으로 전환되었지만, 나머지 55억원의 잔금은 내년 4월로 지급일이 연기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그인터내셔날 지분 매각대금을 현금화하기가 막막해진 것과 다름없습니다.
지난해말 현재 보그인터내셔날의 최대주주는 천지인엠파트너스(41.9%)입니다. 국보와 천지인엠파트너스 대표이자 케이리츠투자운용 이사회의장, 무궁화캐피탈 사외이사까지 맡고 있는 박찬하씨가 공동 대표로 있습니다. 천지인엠파트너스 외에 디에이테크놀로지(23.97%), 유바이오파트너스(17.49%), 에머슨케이홀딩스(14.69%)이 주요 주주로 있습니다. 모두 지난해 새로 주주가 된 곳입니다.
보그인터내셔날은 지난해 약 102억원의 대여금 출자전환을 받았습니다. 국보 외에도 출자전환한 곳이 더 있었던 것인데, 그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다른 주주들이 등장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천지인엠파트너스는 국보를 인수한 뒤, 사업구조 재편을 위해서라며 보그인터내셔날 지분을 매각케 하고, 대여금 50억원을 출자전환해 빚을 탕감해 준 뒤 스스로 보그인터내셔날 지분을 매입해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출자전환한 지분 값을 사실상 받지 않아 장부가액보다 훨씬 싸게 말입니다. 그렇게 국보는 큰 손실을 보게 되었고, 헐값에 팔린 보그인터내셔날은 무궁화신탁의 특수관계회사가 되었습니다.
*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이 제작하는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DRCR(주)에 있습니다.